디스트로이 앤드 레볼루션
“생명과 지구환경보다 권력의 유지나 경제 활동을 우선시한다. 세습제로 권력을 물려받거나 유명한 스포츠 선수 아니면 탤런트거나 잘 모르는 단체로부터 비호를 받거나 범죄의 냄새가 풍겨도, 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한동안 쉬었다가 돌아오면 된다. 자격시험도 물론 없다....
2014-03-05
김현수
“생명과 지구환경보다 권력의 유지나 경제 활동을 우선시한다. 세습제로 권력을 물려받거나 유명한 스포츠 선수 아니면 탤런트거나 잘 모르는 단체로부터 비호를 받거나 범죄의 냄새가 풍겨도, 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한동안 쉬었다가 돌아오면 된다. 자격시험도 물론 없다.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 아직은 그럭저럭 풍요롭다. 그래서 아직 ‘테러리스트’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아 준다.” -작가의 말 “홀리랜드”와 “아일랜드”라는 작품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만화가 코우지 모리의 신작이 정식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무겁고 예민한 사회적 주제와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한 소재를 능숙하게 결합시켜서 ‘매우 강렬한 만화’를 만드는 코우지 모리의 능력은 이미 앞의 두 작품을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며 ‘상업 작가’로서의 본인의 가치를 훌륭하게 증명하였다. (코우지 모리가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무겁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식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깊이를 볼 때, 만화가로서의 상업적 가치가 증명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홀리랜드”의 경우,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반향을 일으키며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에 인용한 권두의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코우지 모리가 발표한 신작은 앞선 두 작품보다 ‘더더욱 현실적이고 무거우며, 어둡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신세계로의 혁명’과 ‘혁명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테러’다. 작품의 제목은 “디스트로이 and 레볼루션(Destroy and Revolution)”, 직역하면 “파괴와 혁명”이라는, 마치 전문적인 학술서처럼 느껴지는 제목이다. 현재(2013.12.) 정식 한국어판으로는 서울문화사를 통해 1권만 나와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시작하고 말았다. 어리석고 순수한 파괴라는 이름의 혁명을.” -제 1화 ‘분개한 우리 中에서 1권의 첫 도입부부터 이 작품의 시작은 강렬하다. 작품의 주인공인 두 명의 소년이 어떤 건물의 옥상에서 건너편에 신축 중인 국회의원 기숙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독백처럼 나직하게 깔리는 ‘부서진다.’라는 한 소년의 대사와 함께 멀쩡하던 국회의원 기숙사가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국회의원 기숙사를 무너뜨린 테러리스트의 정체는 두 소년 중 한 명인 타나카 마코토로, 그는 놀랍게도 ‘초능력자’다. 전작인 “홀리랜드”에서 왕따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에게 격투기를 결합시켜주면서 변혁을 이루어 내고, 현재 진행 중인 “아일랜드”에서는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던 유약한 주인공에게 ‘활’을 쥐어주며 대자연으로 내보냈듯이, 이번에도 작품의 주인공은 매우 불행하고, 답답하고, 가난하며, 유약하기까지 한, 소심한 외톨이다. 어찌 보면 매우 “전형적”이기까지 한 주인공에게 작가가 이번에 내려준 능력은 “어떤 물질도 자신의 손 안에서 한순간에 나무 조각으로 변환시켜버리는 초능력”으로,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의 사일로를 무너트리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소년이다. “디스트로이 and 레볼루션”의 1권은 매우 강렬하고 진지하다. 긴 이야기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유키와 마코토, 이 두 소년이 타락의 극단으로 치달은 자본주의 세상을 향해 어떤 ‘벽돌’을 던질 것인가...앞으로의 전개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빨리 후속권이 나오길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정말 오랜만의 수작(秀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