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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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배달의 왕자님

“설령 매일이 태풍처럼 바쁘다 할지라도 딱 하루. 일주일에 딱 하루, 수요일인 오늘만은 집에 빨리 가고 싶다.” 독특한 콘셉트의 요리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타카세 시호의 “주문배달의 왕자님”이다.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엄청난 가짓수를 자랑하는 일본산(産) 요...

2013-11-22 김진수
“설령 매일이 태풍처럼 바쁘다 할지라도 딱 하루. 일주일에 딱 하루, 수요일인 오늘만은 집에 빨리 가고 싶다.” 독특한 콘셉트의 요리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타카세 시호의 “주문배달의 왕자님”이다.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는 엄청난 가짓수를 자랑하는 일본산(産) 요리만화 중에서도 이 작품처럼 “주문배달 음식”만 가지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년 수십 종씩 쏟아져 나오는 일본산 요리만화는 그 내용과 소재의 다양함이 거의 극에 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시를 비롯한 다양한 일본음식은 물론이며 이탈리안, 프랑스, 스페인, 중국 등등 세계 각지의 유명 음식들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만화들부터,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레스토랑 주방의 풍경이나 요리사 세계의 뒷이야기들을 소재로 다루는 만화, 거기서 더 나아가 소재를 세분화하는 방법(가정식, 육수, 디저트, 면 요리, 술과 안주, 도시락, 등등)에 실제 역사나 무협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스토리에 도입해 요리대결을 구성하는 방법까지...일본의 요리만화가 다루지 않은 음식이야기가 과연 더 남았을까 하는 시점에서 이 만화를 발견하고, 정말 이 집요한 기획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신선함이 생명인 ‘계란비빔밥 세트’!! 줄서서 먹는 계란비빔밥 식당의 주문 배달! 명품 맛집의 참맛을 안방에서!! 항생제 없는 엄선된 사료로 키운 닭의 계란...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이 예술품...무려 마트 계란 1팩에 버금가는 금액!?” “주문배달의 왕자님”은, SE(시스템 엔지니어)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주인공 이이다가 매주 수요일 야근이 없는 날에 전국 각지의 유명한 주문배달 음식을 택배로 받아 집에서 혼자만 즐기면서 매우 행복해 한다는, 무척이나 단순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언뜻 보면 아주 단순하고 지루할 것 같은 콘셉트지만, 직접 만화를 읽어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 일단 작품의 가장 중요한 엑기스인 “주문배달 음식”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가상의 음식이나 상상의 음식이 아니라 실제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유명한 “주문배달 음식”들로만 소개하기 때문에 작품의 현실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작품의 현실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뇌를 “맛에 대한 상상력”이 매우 구체적이고 리얼하게 자극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이 자극은 실제 구매로도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이 작품을 보면서 후기에 소개된 음식 정보와 판매 사이트를 보고 실제로 주문해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일본어에 약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정말 요리만화를 읽다가 이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토록 강렬하게 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전부 다 “주문배달 음식”이 아닌가!!) “하아~~ 끝내준다~~ 추운 계절, 온몸에 쫘악 스며드는 걸? 김과 함께 폴폴 피어오르는 어패류와 참기름의 향기...도미도, 오징어도 뜨거운 물에 오그라들어 꼬들꼬들한 식감...이건 일반 생선회가 아닌 ‘차밥’이기에 가능한 거지...그리고 이 수제 매실 장아찌도 전체적인 맛을 다잡아주면서도 아주 향기로워...밥도둑이 따로 없네. 뜨겁지만 맛있어!”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전체 출연분량의 90%이상을 차지하는 이이다 요시미(26)는 이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다. 이이다 요시미는 이 작품에 설득력과 재미를 가져다주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오타쿠다. 그는 회사에서조차 타인과 엮이거나 교류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회식을 비롯한 단체 문화나 타인과의 소통의 장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업무에 있어서나 사생활에 있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철저하게 독립된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에피소드 중에 간간히 등장하는 예쁜 여자도, 오래된 친구도, 심지어 누나와 할아버지 같은 가족조차도, 그는 자신의 세계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싫어한다. 자신만의 즐거움인 “수요일의 행복감”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심지어 2권에서는 록 페스티발도 혼자 갈 정도다.) 물론 성격적으로 엄청난 결함이 있는 사회생활 부적응자나 타인과 충돌을 일삼는 트러블메이커는 절대 아니다. 그는 직장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건실한 사회인이며,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세계가 너무도 확고한 것일 뿐이다. 이런 그가 유일하게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는 SNS(특히 트위터)를 통해서 만이다. 그는 그가 맛있게 먹고 감동한 주문배달 음식의 상세한 정보와 감상 후기를 SNS에 올려 팔로워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으며 SNS상에서 “주문배달의 왕자님”이란 별명까지 얻고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하다. 회사의 책상과 조그만 자취방이 그가 가진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이다 요시미가 SNS 상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타인들과 교류의 장을 갖고 있으며 그가 소개한 음식의 인기가 치솟는다는 현상은 현대사회의 역설적인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은 이이다 요시미의 “주문배달 음식 감상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초심자일수록 ‘꾼’ 행세하는 법이라더니...나 참, 기가 막혀서. 저 ‘쇠고기 후레이크’는 항상 인터넷 판매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물건...하지만 내 지론은 ‘가장 인기 있는 건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 난 ‘살짝쿵 마이너’를 사랑하는 남자!! 그간 다양한 메이저를 등져온 나만의 소소한 저항!!...(중략)...다 귀찮아. 인간관계니 뭐니 그런 거. 사교랍시고 좋아하지도 않는 밥, 먹고 싶지도 않고 남들한테 맞춰서 관심 없는 얘기도 하기 싫고, 그래서 가급적 말을 안 해도 되는 직업을 골랐는데. 난 그냥 마이페이스로 살고 싶은 것뿐이야.” 주인공이 이런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서 이 만화가 너무 어둡거나 짜증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이이다 요시미의 세계가 가끔씩 그의 삶에 예기치 않게 끼어드는 타인들로 인해 오히려 조금씩 넓어지고 다양해지며 깊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주문배달 음식 소개”라는 “정보 전달”과 “요리만화”로서의 소소한 “재미와 감동”,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에피소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며, 딱딱한 정보전달이나 과장된 맛의 소개 위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현재(2013.10)대원 씨아이를 통해 정식 한국어판으로는 2권까지 출간되어 있으며, 무언가 “새로운 느낌의 요리 만화”를 원하는 독자라면 매우 만족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