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가와 동반자살
“킨조 씨. 일생일대의 부탁이에요. 나와 함께 죽어주지 않을래요?” 만담(漫談)은 재미있는 말솜씨로 세상을 풍자하는 소재를 다루어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간단한 의상과 소품을 사용하여 연극처럼 무대에서 이루어지며 이야기의 내용은 주로 세상에 떠도...
2013-11-18
석재정
“킨조 씨. 일생일대의 부탁이에요. 나와 함께 죽어주지 않을래요?” 만담(漫談)은 재미있는 말솜씨로 세상을 풍자하는 소재를 다루어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간단한 의상과 소품을 사용하여 연극처럼 무대에서 이루어지며 이야기의 내용은 주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나 전래되는 옛날이야기 혹은 정치, 사회적 풍자를 담은 내용이 많다. 단어의 중의적 특성이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도 많으며 미국, 중국, 일본과 한국에서 전통적인 코미디의 한 형식으로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 일본의 “만담(漫談)”은 “만자이(漫才)”이라고도 불린다. 에도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20세기 초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끌기 시작했다. 오사카 지방에서 특히 발달하였다. “라쿠고”라고 하는 재담, 떠도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우담” 등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외에도 마술인 “키주쯔”, 우산 돌리기 등의 곡예, 샤미센 연주인 “로우쿄쿠” 등 다양한 공연을 “요세”라고 불리는 극장에서 펼쳐 보였다. 만담은 현재도 인기가 많으며 많은 개그맨들이 둘이서 콤비를 짜, 바보 역인 “보케”와 보통사람 역인 “쯧코미”의 만담을 극장에서 관객들을 상대로 선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반자살은 중죄예요.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와 함께 죽어줄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이것저것 마무리할 일이 있을 테니, 사흘 후에 다시 와주겠어요? 그리고 죽는 방법 말인데요, 칼은 안 돼요. 반입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여기서도 보이는 저곳에 풍덩.”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 만화, 오노즈카 카오리의 단편집 “시나가와 동반자살”은 유명 만담을 모티브로 남녀, 부모자식, 기녀 등의 사랑을 풀어낸 에도시대의 순애보를 스토리로 삼았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나가와 동반자살”을 비롯해, “생이별”, “엇갈린 시선”, “신케이가사네가후치 괴담”, “염색집 다카오” 등 총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편집의 강점은 일본의 풍경(특히 에도시대의 분위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작화에 있다. 보통 시대극이라 하면 고루하다고 여기시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나, 작가의 그림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에도 시대”라는 몇백년 전의 옛날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지만 세련되고 유려한 느낌이 넘쳐나는, 매우 “분위기 있는 책”이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꽤 훌륭한데 유명 만담을 소재삼아 만화로 재구성하는 극적 연출이 아주 뛰어난 편이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대중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들을 만화의 원작으로 삼은 덕분일지도 모르나,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공연의 형태로 보여주는 만담과 책으로 읽는 만화는 그 장르가 명확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아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은 만화가의 연출기법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일 것이다. “서로 한 번은 죽은 몸이니까” 단편집의 첫 번째 이야기이자 작품의 표제작이기도 한 “시나가와 동반자살”은, 전성기가 지나 유곽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늙은 기녀가 순진한 책장사 남자를 꼬드겨 ‘동반자살’을 꾸민다는 내용이다. 이 시대에 “동반자살”은 매우 큰 중죄였기에 작품의 초반은 매우 어둡고 격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인 기녀 오소메가 죽으려 하는 이유가 사실 공감이 잘 안가는 부분이다. ‘몸비날’이라 불리는 기녀들이 새 의상을 마련해야 하는 특별한 날에 새 기모노를 준비하지 못한 오소메가 여자로서도, 기녀로서도 자존심에 크게 상처받아 죽음을 결심하기 때문이다. 32페이지에 걸친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편이지만,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유려하게 구성된 잘 만들어진 단편이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분명 고생은 절반, 행복은 두 배로. 아이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꺾쇠라고 하는 이 이야기. 그리고 여자는 언제나 강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생이별”은 한 때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으나 남편의 고약한 술버릇으로 인해 헤어진 부부가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매개로 하여 다시금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다는 훈훈한 가족애가 느껴지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안 되겠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부라는 사실이 들통날 테니까.” 세 번째 이야기인 “엇갈린 서신”은 남녀 사이에 서로 속고속이는 한 편의 소동극으로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다 읽고 나면 한편으로는 씁쓸한 헛헛함이 밀려드는 단편이다. 신주쿠 유곽의 기녀 오이네는 자신에게 빠져있는 손님들에게 거짓으로 속여 두 명의 남자로부터 서른 냥이라는 거금을 뜯어내는데 성공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처럼, 오이네는 자신의 정부(情夫)인 남자에게 속아 그 돈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다. 작품의 결말은 오이네가 거짓말한 것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열 냥을 뜯긴 남자와 오이네가 대판 싸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정작 스무 냥을 뜯긴 남자는 그 소동의 와중에도 자신이 속은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의 결말이 읽는 이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네 번째 이야기인 “신케이가사네가후치 괴담”은,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깊은 사이가 된 연상의 여인이 그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다가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공포감 넘치는 괴담으로 풀어낸 단편이다. 한 여자의 사랑이 무시무시한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스릴 있고 밀도 있게 보여줌으로서 “괴담”의 묘미를 맘껏 발휘한 작품이다. “전 내년 2월 25일이면 계약기간이 끝나요. 만약 당신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계약이 끝난 그날, 당신을 찾아가겠어요. 그때 저를 아내로 맞아주시겠어요?”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인 “염색집 다카오”는 책의 마무리를 해주는 이야기답게 유명한 기녀를 향한 한 남자의 3년에 걸친 지고지순한 사랑이 결국은 보답 받게 된다는 훈훈한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단편으로서, “유곽과 기녀”라는 유사한 배경과 소재를 차용해서 만들어진 세 번째 이야기 “엇갈린 시선”과 작품 주제에서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책”, 오노즈카 카오리의 “시나가와 동반자살”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