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500점 만점을 받은 모범생이 수능날 지하철에서 쓰러진 할머니를 돕느라 수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수능 0점을 맞았다. 만점만큼이나 힘든 0점을 매번 받았던 문제아는 늘 그렇듯이 수능 0점을 맞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재수학원에서 만난다. 문제아가 모범생에게 말한다. “내년 수학능력시험, 열심히 커닝해볼까 생각중이야. 그것도 500점 만점으로.”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에 모범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빵점동맹>은 ‘커닝’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고드는 웹툰이다. 교내 중간고사도 아닌 전국 수능에서 10~20점도 아닌 500점 만점을 목표로 1년 동안 커닝을 준비한다는 설정부터 흥미롭다. 전형적인 수험생의 모습을 한 백희지와 모든 문제에 의문을 품는 임수영은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리고 <빵점동맹>은 상반된 두 수험생의 입을 빌어 현 교육 실태의 문제를 꼬집는다.
재수학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마치 백분토론을 하듯 대화를 나눈다.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일지 몰라도, 독자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과 경쟁 구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대화다. 그들은 공부에 대해 생각하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백희지에게 공부란 “내 미래를 보장받는 수단”이자 “미래를 대비하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남들에 비해 특별할 것 없기에 공부만이 유일한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척도가 고득점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점수가 높을수록 나는 고난에 잘 훈련되고 미래는 덜 불안하고 겁에 질릴 필요 없이 인생은 분명해진다”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한 백희지. 여느 10대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임수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둠의 1등’이라 불리는 임수영은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공부를 못해서 0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0점을 받는 것이다. 임수영은 “공부는 기회를 확보하는 간편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백희지를 향해 “그것은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이유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백희지. 성실한 모범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임수영. 출세를 위해 공부한다는 임수영. “공부가 단지 출세의 도구면 무슨 짓을 하든 점수만 높으면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는 백희지. 임수영이 염세적이라면, 백희지는 다분히 이상적인 인물이다. 출발선부터 굉장히 다른 두 사람은 서로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듣게 되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초반부터 임수영은 “커닝은 죄가 아니다”, “현 시스템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 확신한다. 궤변이자 헛소리로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임수영의 논리에 설득되는 건, 우리도 임수영의 의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수영은 어릴 때부터 줄곧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왔다. 그러나 정성껏 대답해주기는커녕 질문 자체를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돌아오는 대답들은 “학교 공부가 어디에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점수 얻고 좋은 대학 가고 취직해서 먹고 살아라” 정도였다.
그렇다면 대입을 경험한 선배들은 임수영에게 확신에 찬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좋은 점수를 얻는 방법만을 고민했지, 근본적으로 내가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학교에서 그럴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왜 알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억지로 머리에 쑤셔 넣는 황금 같은 12년. 그렇게까지 해서도 매년 60만 명 중 정해진 소수만 넘을 수 있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벽을 비웃듯이 비껴가는 것이 커닝이라는 행위”라는 임수영의 주장을 쉽사리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수험생들은 ‘남들도 하니까 나도 따라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12년 동안 남들 따라 공부를 해 온 현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입에서 요구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스토리다. 하교 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학원을 몇 개씩 다닌 아이들에게 무슨 특별한 스토리가 있겠는가. 수험생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 내키지 않는 봉사활동을 하고, 무리해서라도 경시대외에 나간다. 겨우 자기소개서에 쓸 ‘한 줄’을 만들기 위해. 명문대 입학사정관이 만점이 아닌 0점을 맞은 임수영에게 입학 제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학사정관들은 애매하게 70~80점 맞느니 0점이 더 인상 깊지 않느냐는 임수영의 말에 “발상에 대한 확신이 마음에 든다”고 호감을 표했다.
백희지가 대부분의 수험생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임수영을 통해서는 우리나라 입시의 아이러니한 문제를 지적한다. 명문대 입학을 제의받은 임수영은 “대학 입시 전형을 다양하게 만든다는 건 결국 학교에서 주입해주지 않는 다른 돈 드는 짓을 주입받아 오란 소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름 아닌 사교육의 문제를 꼬집는 것이다. <빵점동맹>은 에둘러 얘기하는 법이 없다. 임수영의 입을 빌어 정곡을 찌르기 바쁜 웹툰이다. “대학도 결국 고등학교의 ‘공부’를 더 오래 시키는 것 뿐”이라며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역사의식이란 건 얼마나 많이 암기하느냐보다 해석과 실천의 문제”라는 주장은 최근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과 연관되는 얘기다.
<빵점동맹>의 부제는 ‘수능이라는 한 판 승부,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다. 그만큼 고3 당시에는 수능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 수능이라는 인생 최대의 고개만 넘으면 모든 인생이 잘 풀릴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고3 때는 미처 몰랐다. 그것??? 그저 작은 첫 번째 고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대입을 지나 다시 취업이라는 고개에 당도해, 취업만 되면 무조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던 취준생 시절에도 미처 몰랐다. 그것 역시 작은 두 번째 고개였다는 사실을. 대입, 취업보다 더 끔찍한 사회생활이라는 벽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의고사 1점, 2점에 일희일비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이제 우리는 안다.
그래서 <빵점동맹>의 메시지는 비단 고3 수험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탐구하는 것은 연령 불문하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고민이다. 매 회 임수영은 공부하는 이유를 묻고, 그 때마다 백희지가, 선배가, 교사가 나름의 답을 던져준다. 굳이 공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지금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글을 쓰고 있는지,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것이 뚜렷한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삶을 살아가는 의욕이 될 순 있다. 백희지처럼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사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답을 찾겠다고 나선 순간, 당신은 변할 것이다. 임수영을 만난 백희지가 용감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강하게 주장을 내세우지 못했던 백희지가 스스로 성추행범을 잡고, 왕따 당하는 학생을 구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불과 1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곁에서 끊임없이 ‘이유’를 따져 물었던 임수영 덕분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기회니 확신이니 번지르르한 단어를 늘어놓던 백희지는 결국 “낙오될까봐 무서워서 공부해”라는 본심을 털어놓는다. 행동의 변화는 성적의 상승보다 더 값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임수영이다. 50회가 넘었지만 여전히 임수영은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어쩌면 임수영은 누구보다 공부하고 싶은 수험생인지도 모른다. 단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커닝이라는 수단에 집착하고 있는 것뿐이다. 임수영이 답을 찾는 동안,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빵점동맹>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