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아워 : 크라이시스 인 타임
80년대 중반에 라는 거대 이벤트를 통해서 세계관의 통합을 이룬 후 DC 유니버스는 먼저 한 세대의 완전한 끝을 알리고 다음 세대로의 이전하는 새 걸음으로 30년간을 연재되어온 플래시의 주인공 배리 앨런의 이야기에 막을 내린다. 진홍의 스피드스터라고 불리며 많은 팬들의...
2013-10-22
이규원
80년대 중반에 <무한 지구의 위기>라는 거대 이벤트를 통해서 세계관의 통합을 이룬 후 DC 유니버스는 먼저 한 세대의 완전한 끝을 알리고 다음 세대로의 이전하는 새 걸음으로 30년간을 연재되어온 플래시의 주인공 배리 앨런의 이야기에 막을 내린다. 진홍의 스피드스터라고 불리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플래시의 코스튬은 그의 조카인 월리 웨스트에게로 넘어갔다. 또한 옛 원더우먼 시리즈는 아마존의 공주 원더우먼이 연인 스티브 트레버와 결혼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고, 슈퍼맨과 배트맨이 팀을 이뤄 함께 출연하던 <월드 파이니스트 코믹스>도 중단한다. 그린랜턴 시리즈에서는 과거 마이너 캐릭터에 지나지 않던 가이 가드너가 톡톡튀는 개성을 지닌 새로운 그린랜턴으로 부상한다. 이 시기에 만화계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만화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과거의 펄프 히어로인 <섀도우>가 새로운 미니 시리즈로 출판되는가하면, 프랭크 밀러는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 히어로들이 사라진 암울한 미래에 돌아온 배트맨의 이야기를 그리며 만화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작업들이 진행되는 즈음에 나온 것이 바로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본스의 12이슈짜리 미니시리즈인 <왓치맨>이었다. 원래 이 시리즈는 찰튼 코믹스의 옛 캐릭터들을 되살려보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던 것으로 <무한 지구의 위기>를 통한 세계관의 리부팅의 연장선상에 있던 작품이었다. 이후에 DC 유니버스의 여러 타이틀을 동시에 아우르는 새 크로스오버로 <레전드>라는 미니시리즈가 등장했고, 그와 함께 존 번이 <맨 오브 스틸>이라는 이름으로 슈퍼맨의 새로운 탄생기를 쓰게 된다. 이 탄생기는 슈퍼맨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에 큰 비중을 두며 큰 호응을 얻었다. 배트맨의 탄생기는 프랭크 밀러와 데이비드 마주켈리가 맡았다. 그것이 <배트맨 : 이어원>. DC 최고 히어로 3인방의 마지막인 원더우먼 역시 새로운 탄생기로 리부트한다. 슈퍼맨이 크립톤에 비중을 두었듯 원더우먼의 새 이야기 역시 그리스 신화의 판테온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다. 엄청난 인기를 거두며 원더우먼을 되살린 주인공은 그렉 포터와 조지 페레즈.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히어로물이 대세인 가운데,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는 <저스티스 리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히려 밝고 코믹한 분위기로 인기몰이를 했고, 그 반면 슈퍼 악당 출신들로 구성된 <수사이드 스쿼드>, 마이크 그렐의 <그린 애로우 : 롱 보우 헌터> 등은 성인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좀 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줄거리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옛 히어로들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히어로들이 좀 더 현대적으로 잘 정비된 새 탄생기를 가지고 태어난 가운데, DC는 배트맨의 숙적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앨런 무어와 브라이언 볼랜드의 <배트맨 킬링 조크>다. 이 이야기는 조커의 탄생기를 정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트맨의 동료인 배트걸의 운명까지도 뒤바꾸어 놓았다. 배트맨을 통한 새로운 혁신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킬링조크 이후 배트맨과 치명적인 여인 탈리아 알굴의 관계를 다룬 <배트맨 : 악마의 아들>이라는 그래픽 노블이 출판된다. 짐 스탈린과 마이크 미뇰라는 전설적인 만화가 잭 커비가 창조한 <포스 월드(Fouth World)>의 신화를 재정비하는 <코스믹 오딧세이>를 내놓는다. 곧이어 배트맨의 사이드킥인 로빈으로 활동하던 제이슨 토드가 조커의 손에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을 다룬 책이 <배트맨 : 패밀리의 죽음>이다. 로빈의 자리는 곧이어 팀 드레이크라고하는 소년에게 넘어간다. 곧이어 팀 버튼 감독, 마이클 키튼 주연의 영화 <배트맨>이 극장가를 강타하고, 그랜트 모리슨과 데이브 맥킨은 배트맨과 그 악당들의 광기를 묘사한 <아캄 어사일럼>을 내놓는다. 브라이언 어거스틴과 마이크 미뇰라는 <배트맨 : 고담 바이 개스라이트>라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배트맨 이야기를 내놓으면서 엘스월드 임프린트의 시초가 되었다. 얼마 후 더그 먼치와 켈리 존스도 기존 배트맨과 다른 드라큘라 배트맨의 이야기를 그린 <레드 레인>이라는 엘스월드 타이틀을 내놓으면서 배트맨 타이틀들은 새 시대 새로운 스타일의 슈퍼히어로 만화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됐다. 이 즈음에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플래시 배리 앨런의 이야기를 다룬 TV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했고, DC 최강의 악동으로 불리는 궁극의 안티 히어로 <로보> 미니시리즈도 출판되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그린랜턴 할 조던의 탄생기도 <에메랄드 새벽>을 통해 다시 쓰여진다. 1992년을 넘어서면서 리부팅된 DC 히어로 타이틀들의 발행 이슈 수도 어느덧 70호를 넘고 있었다. DC는 <슈퍼맨의 죽음>, <배트맨 : 부러쥔 박쥐> 등을 통해서 그들의 대표 히어로들을 죽이고 부상시키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수십년간 큰 인기를 누려오던 슈퍼히어로들의 죽음은 상업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먼 옛날 같지만은 만화계의 이 대 사건이 터진 바로 이때에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 슈퍼맨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처절한 몰락을 겪은 또 한 사람의 히어로는 바로 그린 랜턴 할 조던이었다. <슈퍼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악당들과 이 사건의 여파는 할 조던의 고향 도시인 코스트 시를 파멸시켰고, 할 조던은 이로 인해 이성을 잃고 슈퍼 악당으로 변모한다. 그 이야기가 바로 <에메랄드의 황혼>이다. 폭주한 할 조던을 인해 <그린랜턴 군단>은 괴멸하고, 하나 남은 초록 반지는 얼마 뒤 카일 레이너라는 젊은이의 손에 들어간다. 브루스 웨인이 부러진 허리를 치료하는 사이에 배트맨의 역할 역시 아즈라엘이라는 다른 젊은이에게 너어간다. 악당들이 활개치는 세상은 곧 회복된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각각 되살아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 무렵에 그 유명한 <로이스와 클라크> TV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조커의 여친인 할리퀸은 <배트맨 : 매드 러브>를 통해서 TV 애니메이션에서 출판 만화로 옮겨온다. 이렇게 보면 <무한 지구의 위기>이후 DC 유니버스의 세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 메인 캐릭터와 메인 팀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톱니바퀴가 맞아 떨어지도록 통일성을 갖추어 갔고, 단순히 세계의 교류만이 아니라 큰 사건의 연이은 연계를 통해 히어로들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히어로들은 여전히 세계관의 통일에서 동떨어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DC는 <제로 아워 : 크라이시스 인 타임>이라는 새로운 크로스오버 미니시리즈를 내놓게 된다. 제로아워의 이야기는 공간의 한계 너머, 시간의 흐름 너머에 존재하는 배니싱 포인트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시간 여행자인 립 헌터와 웨이브라이더가 시간 흐름의 불안을 감지하고 DC 유니버스는 다시 한 번 뿌리까지 뒤흔들리며 다시 한 번 말끔하게 세계관을 정리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의 플래시인 제이 게릭, <무한 지구의 위기>에서 가슴아픈 희생을 보여주었던 배리 앨런, 배리 앨런이 플래시로 활동하던 당시 키드 플래시로 활약하다가 배리의 죽음과 함께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성인으로서 세상을 책임지는 진홍의 스피드스터가 된 월리 웨스트, 그리고 신세대답게 똑부러지면서도 무모한 도전도 서슴지 않는 바트 앨런까지 역대 플래시들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린랜턴도 마찬가지다. 원조 그린랜턴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앨런 스콧과 실버에이지의 새 그린랜턴 할 조던, 그의 뒤를 이은 가이 가드너와 카일 레이너가 모두 등장한다. 옛 JSA의 히어로들은 그들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리며 우주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고, 과거 사회적인 주제로 주목을 받았던 <그린랜턴과 그린애로우>의 두 주인공의 우정도 변화를 맞는다. 재미있게도 이런 이벤트 이후에 DC는 마블과 함께 라는 양대 출판사의 세계관을 크로스오버 시켰다. 클라크 켄트와 로이스 레인은 드라마 <로이스와 클라크>의 스토리에 맞춰서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으며, 그랜트 모리슨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을 필두로 DC 최고의 슈퍼히어로들을 다시 모아 새로운 타이틀을 시작한다. <에메랄드의 황혼>과 <제로 아워>를 통해서 모든 히어로들의 적으로 돌아섰던 할 조던은 <파이널 나이트>를 통해 영웅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한다. 이런 스토리들이 근래의 <그린랜턴 리버스>, <인피닛 크라이시스>, <파이널 크라이시스>, <블랙키스트 나이트>, <플래시포인트> 등으로 꼬리를 물면서 이어진 것이다. <제로 아워>의 리뷰를 핑계로 이렇게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거의 10년에 걸친 DC 코믹스의 역사를 정리했다. <제로 아워>가 비록 팬들에 따라 혹평을 받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적어도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 책의 재미있는 또 한 가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이 자신들이 가상의 만화 주인공인 줄 아는 듯하다는 점인데, 그래서 이들의 죽음이 그저 이야기 속에서의 일만은 아닌 듯 다가온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하얀 페이지 너머로 사라져 은퇴해야 하는 옛 캐릭터들의 애환이 애달파 여운도 길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