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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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파트너

동물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자, 인간의 생각을 읽는 남자 한 여자가 있다. 제부 소유의 오피스텔 관리인 노릇을 해가며 살고 있는 그녀는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드라마 작가. 다시 한 번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인 그녀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

2013-10-04 원은주
동물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자, 인간의 생각을 읽는 남자 한 여자가 있다. 제부 소유의 오피스텔 관리인 노릇을 해가며 살고 있는 그녀는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드라마 작가. 다시 한 번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인 그녀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 바로, 동물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 한 남자가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란 직업으로 승승장구하며 TV에도 출연할 정도인 그 남자에게도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이란 다름 아닌, 동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세상에 알려진 바와 달리 그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동물이 아닌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 아! 한 가지 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자신이 보는 장면을 타인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두 사람은 같은 오피스텔 1003호와 1004호에 살고 있다. 듣는 귀, 읽는 마음. 듣는 마음, 읽는 마음. 두 사람의 악연 아닌 악연은 그 여자, 한우물이 그 남자 김태희의 집에 고장 난 전구를 고쳐주러 가면서 시작된다. 호기심에 틀어본 남자의 대형 TV에서 우물은 마침 방송 중인 프로그램에 출연한 태희가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리포터의 설명과 달리 동물의 마음과 전혀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물며 미혼남이라는 그에게 빨간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딸이 있음을 알게 되고 더욱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데. 사실 그녀가 본 빨간 원피스의 귀여운 여자아이는 남자에게 실연당한 ‘세실리아’라는 여자가 놓고 간 새끼고양이였던 것. 그렇다. 한우물은 단순히 동물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혹 동물이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던 한우물과 김태희의 관계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으로 우물의 비밀을 알아차린 태희로 인해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동물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던 태희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던 조수가 까다로운 그의 성격을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두게 되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태희에게 우물의 능력은 놓칠 수 없는 것.태희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가 막힐 정도로 동물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는 태희 때문에 혼란스러운 우물은, 사실 그가 듣는 것이 동물의 말이 아니라 동물과 대화하는 자신의 생각임을 알지 못한 채 어영부영 그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이렇게 동물의 말을 듣는 우물과 그녀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는 태희는 누가 뭐래도 완벽에 가까운 환상의 파트너다. 동물의 말을 듣는 여자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남자라는 조합 이상으로 서로 성격도 성향도 문제 해결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은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다그치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고 버려진 동물들을 보듬어준다. 두 사람이 환상의 파트너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다. 두 사람은 악연 아닌 악연으로 늘 티격태격하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품은 여러 애완동물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면서 서서히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귀로 듣는 것 이상의 것. 즉, 마음으로 듣고 읽는 법을 배워간다. 내 곁의 친구 혹은 가족, 애완동물 이 만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각 화의 주인공은 한우물과 김태희가 아니라 그들이 마주치게 되는 동물들이다.태희에게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한 잘나가는 미용실 원장 세실리아 정이 홧김에 친구에게 입양 보낸 새끼고양이 ‘백일’이를 시작으로 우물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고양이 ‘다지’ 잘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유기견 ‘아롱이’ 습관성 동물 유기범에게 버려지고도 그를 잊지 못하는 강아지 ‘보리’ 주인의 임신으로 버려진 길고양이 ‘나리’ 주인을 기다리며 병으로 죽어간 햄스터 ‘뽀미’ 등. 한때는 사랑받는 행복한 애완동물이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슬프게도 반려동물이 되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들. 그들이 바로 이 만화의 진짜 주인공이다. <환상의 파트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한결같이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반려동물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작가들이 마련한 일종의 장치일 수 있지만,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다. 반려동물이 반려동물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인간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을 선택해 키우는 주인에게 그들은 가족 그 자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마치 장난감처럼 애완동물을 선택하고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주인이 더 많고 행복한 반려동물도 많다. 좋은 주인을 만나 말 그대로 ‘반려’로 일생을 마치는 다른 경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서글픈 사연으로만 꽉꽉 채워진 만화는 눈물을 강요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가 없다. 좋은 주인과 가족으로서 행복하고 따스하게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삶을 통해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가 포함되었다면 훨씬 더 훈훈하고 진한 드라마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수많은 반려동물 중 강아지와 고양이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도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뽀미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버려진 고양이와 강아지에 관한 에피소드뿐이다. 소재의 단조로움을 떠나서 다른 많은 애완동물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강아지나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애완동물들은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다.인간의 친구로서, 파트너로서의 반려동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만화라면 적어도 새나 열대어, 이구아나, 토끼 등등 좀 더 많은 동물을 다루어주었으면 훨씬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환상의 파트너 그럼에도 이 만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그것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비, 바람, 태양만 있으면 흙의 정기를 받아 잘살 수 있을 것 같은 식물마저도 감정의 교류를 느끼면 더 잘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지구의 모든 생명은 상호 간의 ‘관계’가 필요하다.고독은 생명을 갉아먹는다. 특히 인간은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보다 일찍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고독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외로워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그저 좋아서. 함께 지낼 존재를 선택했다면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존재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그것이야말로 나와 함께 호흡하고 일상을 나누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존재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다.그것을 김예린, 장유라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다른 존재의 말을 듣는 여자와 인간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마음을 유추해낼 수 있는 남자의 환상적인 조합을 통해서.이 두 사람은 환상의 파트너다. 그리고 그들 곁을 머물렀다 떠나는 동물들 또한 그들에게는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특별한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