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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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즈 봉봉 클럽 (서울편)

중화요리 마니아들이 펼치는 이 보다 더 친절할 수 없는 중화요리 식신로드 요리나 음식,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다루는 식도락만화의 유형은 요리나 음식의 종류만큼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치중한 경우도 있고 음식에 관련된 등장...

2013-09-27 황민호
중화요리 마니아들이 펼치는 이 보다 더 친절할 수 없는 중화요리 식신로드 요리나 음식,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다루는 식도락만화의 유형은 요리나 음식의 종류만큼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치중한 경우도 있고 음식에 관련된 등장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일련하는 경우도 있으며, 요리로 경연을 벌리는 요리인들의 세계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때론 드물게 식도락만화가 미슐랭가이드나 밀레가이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경규의 <차이니즈봉봉클럽(이하 차봉클럽)>이 바로 그런 만화인테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차봉클럽>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청송고등학교의 27년 전통을 자랑하는 비밀 결사 조직이다. 표면적으론 바둑반의 명패를 붙이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바둑과는 무관하게 중화요리(중국음식, 중국요리라는 보편적 정서대신 작가가 이 만화에서 중화요리라는 용어로 일관하고 있으므로 작가의 창작에 대한 경의의 일환으로 역시 중화요리로 표기한다)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비밀동아리이다. 부원인 쇼타, 해리, 아롱이와 신입생 은영이는 고등학생임에 불구하고 맛있는 중화요리에 남다른 미각과 철학을 가진 중화요리 마니아들이다. 음식을 향한 이들의 열망은 거의 구도자 수준이다. 차봉클럽의 룰을 보면, 배달 시켜먹지 않기(음식이 식으니까) 하루에 한 끼는 중화풍으로 해결하기(하다못해 짜파게티라도) 주문한 음식은 남기지 않기(모든 음식은 다 맛있고 나름 가치가 있다) 요리를 먹을 땐 혼자 가지 않기(같이 가야 더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 같은 실천강령 까지 만들어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음식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바탕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신로드를 펼치는 것이 이들의 사명이다. <차봉클럽>은 픽션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서울 여러 지역에 실제하고 있는 중화요리집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중화요리를 섭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만화에 소개된 23군데 중화요리집은 아무래도 작가가 오랜 세월 발품을 팔고 열심히 음미한 결과의 산물인 듯한데 서대문 연남동 연희동일대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을지로, 동대문, 여의도, 영등포, 명동, 한남동, 이태원 등 지역도 다양하다. 매 화마다 설정된 내용에 맞는 중화요리점으로 주인공들이 찾아가는 전개방식을 유지하고 있어서 어느 음식점엘 가야 제대로 된 중화요리를 먹을 수 있는지, 그 집에 가면 어떤 요리를 먹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인지 등등 중화요리를 제대로 즐기도록 해주는 실용서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차봉클럽>은 식도락만화이지만 중화요리 100배 즐기기 가이드북을 겸한 셈이다. 심지어 <차봉클럽>이 만화잡지 팝툰에 연재될 당시 만화에 등장하는 중화요리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먹어보고 작가가 만화에서 다룬 내용과 실제 맛을 검증할 정도로 열성적인 독자들이 있었다는 레전드가 전해지고 있다. 식도락만화로서 <차봉클럽>의 존재 가치는 만화를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중화요리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다는 실용성에 있다. 일테면 북경오리는 먹는 부위에 따라 어떻게 이름이 달라지는지, 우리가 흔히 왕만두라고만 알고 있는 포자는 교자와 어떻게 다른지, 볶음밥은 어떻게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아무 생각없이 먹기만 했다면 이 만화를 읽은 후에는 아는 만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다양한 중화요리에 대한 해설이나 평가도 전문적인 지식을 안겨준다. 한국사람이 즐겨먹는 중화요리 삼총사 가운데 하나인 탕수육의 경우를 보자. 탕수육이 사실은 고로육으로 불리는 음식이며 청나라 말기에 중국 광주의 외국인들이 돼지갈비를 좋아했는데 젓가락질이 서툴고 먹는게 불편해서 살만 발라 만든게 시초라는 것, 또 친 겐민이라는 요리사가 일본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사천식 민물새우 요리를 너무 맵지 않게 토마토 케첩을 넣어 만든 요리가 깐소새우라는 것, 맛있는 돼지고기를 부자들은 싸다고 먹으려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먹는 법을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소동파가 개발한 것이 동파육이라는 것 등등 다양한 중화요리의 생성 배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중화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고등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전문적이고 구체적이다. 물론 이 만화가 그저 중화요리를 소개하는 데만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화적 재미도 쏠쏠하다. 요즘말로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뉴욕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작가의 그림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 없어 보인다. 남다른 연출능력도 만화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잡지 연재만화의 특성상 다음 화의 내용에 조바심 내는 독자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활용할 줄 알아서, 매 화의 엔딩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막을 내리지만 정작 다음 화에서도 독자들에게 쉽게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않으며 긴장감을 갖고 만화에 몰두하게 만든다. 심지어 주인공 스스로 ‘이번 화가 이렇게 끝이 난다면 지난 화랑 엔딩이 완전히 똑같은 거’라고 말할 정도로 독자들은 지난 화의 엔딩에 연연하며 만화에 끌려 다닌다. 또 한 가지 탁월한 이 만화의 재미 포인트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이다. 무난한 만화체의 얼굴이 갑자기 극한의 극화체로 돌변하기도 하는데 특히 귀여운 여학생이 돌연 19금 그라비아모델로 변신하기는 씬들은 이 만화의 압권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이런 의뭉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런 19금 씬들을 보면 작가는 소년만화에다 태연하게 19금 설정을 어프로치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비기를 전수한 듯 하다. <차봉클럽>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만 한 번도 의미를 두고 음미해볼 기회가 없었던 중화요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 만화이다. 중화요리는 중국의 넓은 땅에 56개 민족의 생활이 축적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맛은 기본이고 영양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은영의 아빠(아무래도 작가 자신인듯한)의 설명은 중화요리의 존재의미를 새삼스럽게 해준다. 단행본 3권은 베이징편이다. 중화요리의 본고장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것이다. 다양한 중화요리를 진상하느라 만화적 완성도를 다소 희생시킨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의미부여야 말로 모든 식도락만화들의 사명이라면 <차봉클럽>은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프리미엄급 식도락만화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