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프리즘 솔라카
“그의 이름은 카네다 쇼타, 10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쇼타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여관에서 입주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쇼타는 교통 유아(遺兒)를 지원하는...육영회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작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철공소에 취직...
2013-09-12
석재정
“그의 이름은 카네다 쇼타, 10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쇼타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여관에서 입주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쇼타는 교통 유아(遺兒)를 지원하는...육영회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작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철공소에 취직해서 동네 변두리에 있는 회사 창고 2층 방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대학 진학은 경제적인 이유로 단념, 하지만 쇼타는 철공소에서 일해서 번 돈을 모아 언젠가 학비가 생기면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일에는 경비원 아르바이트, 또래 학생들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걸 곁눈으로 훔쳐보며 그는 연일 노동 삼매경.”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드라마틱한 건 바로 현실이다.”라는 시구를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영화 같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해도, 현실만이 주는 강렬한 리얼리티를 이길 수 없을 때가 있고 그래서 때론 현실이 가장 드라마틱할 수 있다는 생경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흐린 하늘, 프리즘, 솔라카”는 “아이실드 21”의 작가 무라타 유스케가 오오타카키 야스오의 원작을 받아 작업한 2권 분량의 짧은 만화로,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자동차 ‘솔라카’를 소재삼아 자신들이 만든 솔라카를 타고 “솔라카 스즈카 레이스”에 참가하려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런 그의 유일한 낙은 자전거입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걸 무척 좋아하죠. 중고등학교 모두 학교가 멀었기 때문에 쇼타는 매일 왕복 3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습니다. 교통비 절약...도 큰 이유였지만 쇼타는 아버지를 잃은 교통사고 이후 자동차라면 질색하게 되어 엔진 소리나 브레이크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자꾸만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쇼타의 귀에는 늘 헤드폰이, 쇼타는 과묵하고 무뚝뚝하고 눈매도 사나워서 친구도 없습니다. 하지만 굉장한 노력가죠.” 「주위에서 흔히 돌아다닐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다”라는 전작 “아이실드”와는 정반대의 컨셉을 요구받은 작품이라 익숙지 않은 작업 때문에 무던히 고생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고 작화가인 무라타 유스케가 작품 후기에 밝히고 있는데, 작가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허구의 느낌을 최대한 배제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같은 느낌이라서 작가의 전작인 “아이실드 21”을 재미있게 본 독자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소재로 삼은 “솔라카(solar car)”는 일반적인 연료 대신에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 자동차로, 태양 빛을 자동차에 부착한 집열판(集熱板)을 사용하여 만든 열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시켜 주행하는 자동차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지구에 남아 있는 한정된 에너지원을 대체할 목적과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작품의 스토리 완성도를 높여주며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모두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자동차 경주 레이스, “Dream Cup 솔라카 레이스 스즈카 2010”은 일본에 실제로 있는 자동차 경주로, 원작자인 오오타카키 야스오가 담당자와 함께 “Dream Cup 솔라카 레이스 스즈카 2009”를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에 구현되어 있어서, 이야기 속에 다큐멘터리의 힘이 강하게 부각되어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토요 공과대학 솔라카 프로젝트를 위해 이 창고를 베이스캠프로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학교의 솔라카 프로젝트는 8년 전에 한 번 중단되어...그걸 부활시키기 위해 대학 측과 교섭해서 올해부터 적지만 활동 예산을 받아냈어요. 그런데 작업장까지는 교내에 확보하지 못해서... 그래서...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우리는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국내 솔라카 레이스 중에서는 최고봉인... Dream Cup 스즈카에 출전하는 게 목표예요. 부원도 아직 이 정도가 다고 실적도, 경험도, 기술도, 한참 부족하기만 한 팀이지만 열심히 노력할 테니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작품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어 힘든 삶을 살았고, 현재는 작은 아버지의 철공소에 취직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학비를 모으고 있는 청년 카네다 쇼타와 ‘솔라카 프로젝트’를 통해 스즈카 레이스에 참가하려는 토요 공과대학의 젊은이 네 명이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캠퍼스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부러운 감정을 지니고 있던 쇼타는 그들과 엮이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대학과 협력해서 기술력도 알리고 좋은 선전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경영자로서의 판단이었기에, 그들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용접 및 부품제조 같은 것을 가르쳐주며 ‘기술협력’을 해주라는 작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결국 쇼타가 살고 있던 철공소의 창고는 하루아침에 ‘솔라카 제작소’로 바뀌게 된다. “우리 동아리의 목표는 보디부터 부품까지 최대한 자신들의 수작업으로 솔라카를 조립하는 거야, 이...선배가 남겨준 낡은 차체는 우선 움직일 수 있게끔 수리해서...데이터 수집, 부품이나 모터의 구동 실험, 드라이버의 운전 연습용으로 쓸 거고, 내년 여름까지는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솔라카가 이 차고에 나란히 서있겠죠.” 작품 설정만으로는 너무나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강해서 상업적인 경쟁력이 다소 떨어진다 싶었는지, 작가는 인물간의 갈등구조를 하나 엮어 넣는다. 쇼타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가 프로젝트의 실질적 리더인 야자키 준코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토요 공과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누구보다도 솔라카 연구에 열심이었던 준코의 아버지는 그 사고를 계기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죄 값을 치른 후, 동네에서 조그만 전기제품 대리점을 하며 속죄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자신 때문에 꺾인 아버지의 꿈을 기어코 실현하겠다는 준코의 의지로 ‘솔라카 프로젝트’가 8년 만에 부활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준코의 아버지가 가해자임을 밝히지 않고 작품을 진행시키다가, 쇼타와 준코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을 때 마치 폭탄을 터트리듯 악연의 고리를 드러낸다. 쇼타와 준코가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프로젝트는 무너질 지경에 이르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에야 둘은 화해의 계기를 맞게 되어 솔라카를 완성, 드디어 스즈카 레이스에 참가하게 된다. 언뜻 보기엔 심심해 보이지만, 스토리와 구성이 치밀하고 작화도 아주 좋다.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두 권이라 읽기도 좋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