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
미국의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이곳은 영화 와 , 의 주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기억하는 팬이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마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시조격인 역시도 평행 우주에서 클리블랜드로 떨어져 지구에서의 방랑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우리가 잘 아는 뉴욕, ...
2013-09-05
이규원
미국의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이곳은 영화 <스파이더맨 3>와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 <어벤저스>의 주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기억하는 팬이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마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시조격인 <하워드 덕> 역시도 평행 우주에서 클리블랜드로 떨어져 지구에서의 방랑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우리가 잘 아는 뉴욕, 로스엔젤레스도 아니고 왜 하필 클리블랜드일까?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미국 만화의 중심 도시가 ‘뉴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회사 자체가 뉴욕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마블은 대놓고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DC의 메트로폴리스와 고담시도 따지고 보면 뉴욕의 낮과 밤을 나눠놓은 도시다. 하지만 그 유명한 메트로폴리스의 모델은 실은 뉴욕이 아니라 클리블랜드다. 클리블랜드는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가 슈퍼맨을 창작한 도시다. 2013년 4월 18일. 클리블랜드 시 시장인 프랭크 잭슨은 슈퍼맨 탄생 75주년을 맞아 이 날을 ‘슈퍼맨의 날’로 선포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가 의미 있는 것은 비단 슈퍼맨의 탄생지인 때문만은 아니다. 클리블랜드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계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하비 피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아메리칸 스플랜더>는 하비 피카가 나고 자란 클리블랜드의 동네와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50년대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미국 만화들이 어린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불태워지고 많은 규제를 받는 일을 당해야 했다면, 하비 피카가 재즈 뮤직에 대한 관심으로 친구가 된 로버트 크럼과 함께 그린 <아메리칸 스플렌더>는 만화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진실에 관한 문학적인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며 60년대 만화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그래서 클리블랜드 사람이라면 만화계에 있어선 나름 자부심이 크다. 최근에는 클리블랜드 출신의 브라이언 삼총사라고 불리는 세 작가들이 미국 만화계의 주역으로 활약중이다. 맏형은 브라이언 아자렐로 그의 책으로는 <슈퍼맨 : 포 투모로우>와 <렉스 루터 : 맨 오브 스틸> 등이 있는데, 올해 개봉한 영화 <맨 오브 스틸>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다. 둘째는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기존 어벤저스를 해체시키고 새 시대로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어벤저스 디스어셈블드>와 엑스맨 스토리의 획기적인 전환점 역할을 한 <하우스 오브 엠> 등의 작가이며, 21세기 들어 마블이 추진한 얼티미츠 라인과 마블 유니버스의 리부팅의 성공에 누구보다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셋째는 브라이언 K 본. 앞의 두 형들보다는 10살 정도 어리지만, 경력과 활약상에 있어서는 두 형들과의 10년의 내공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작가다. 브라이언 K 본의 대표작으로 말하자면 , <엑스 마키나>, <런어웨이즈>,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 등이 있는데, 이중 <런어웨이즈>를 제외한 세 만화 모두가 한국어판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그는 스티븐 킹 원작의 2013년 신작 미드 <언더 더 돔>의 제작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서두가 약간 길긴 했지만 여기서 소개하려는 작품은 이 클리블랜드 출신의 재능 있는 작가 브라이언 K 본의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다. 배경은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멀고먼 중동의 바그다드. 등장인물은 사람들이 아닌 밀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들이다. 프라이드는 자부심이나 긍지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 제목에서 프라이드라는 원어 제목을 그대로 살린 이유는 프라이드가 자부심이나 긍지 외에도 동물의 무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동물원에 살던 네 마리 사자가 자유와 긍지를 찾아 우리 밖으로 나오면서 겪는 일들이 이야기의 주요 줄기다. 브라이언 K 본의 다른 장편들과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짧고 얇지만,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실화에 바탕을 하고 있는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다고 그림이 강하고 거친 것도 아니다. 니코 헨리촌의 그림은 본의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빛내준다. 그냥 동물 이야기도 아니고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직접 말을 하는 만화라는 것은 표현이 만만하지가 않다. 그래서 처음에 이 이야기를 그릴 작가를 물색할 당시에 브라이언 K 본은 동물을 디즈니 만화들처럼 의인화된 형태가 아니라 실화에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맞춰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작가를 찾았다. 버티고 측에서는 니코 헨리촌을 추천하며 그의 그림을 본에게 보여주었다. 헨리촌의 그림에 만족한 본은 그와 함께 작업하기로 결정했고, 이로써 멋진 스토리와 그림을 가진 이 만화가 탄생한다. 바그다드 동물원. ‘하늘이 무너진다’며 짖어대는 작은 새에게 잡아먹겠다며 으르렁대던 수사자 질은 하늘을 날아가는 전투기들을 보고는 ‘내 왕국을 바치겠으니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귀를 싸매고 드러누워 버린다. 그에게 자유와 치안 따위는 관심 밖이며, 하루의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외눈박이 암사자 사파는 곧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때가 올 거라며 불안한 예언을 한다. 그러나 사파에겐 야생의 기억은 다르다. 파리만도 못한 야비한 동료 수사자들에게 유린당하던 끔찍한 기억은 야생의 언덕 위에서 보던 지평선과 석양에 대한 추억으로는 상쇄되지 않는다. 자유를 찾아 나서는 순간 이 평화도 사라지리라. 그래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먹고 살기 위해서 곧장 우리 밖으로 뛰쳐나온 질과 달리 사파는 선뜻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녀는 비록 자유를 볼모로 잡히더라도 치안이 제대로 이뤄지는 사회를 원한다. 어린 사자 알리는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신기한 물체에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알리에겐 동물원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다. 마치 후세인이 없는 세상이 잘 상상되지 않는 당시의 어린 세대들처럼 어린 알리도 그저 질에게서 들은 아름다운 석양에 관한 이야기에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무리를 따라나선다. 젊은 암사자 누어는 자유가 코앞에 다가왔다며 다른 동물들과 힘을 합쳐 달아날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야생에 살던 사자의 긍지를 잊지 않고 있는 그녀에겐 사육사들이 갖다 바치는 먹이가 지겹기만 하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하고 싶다. 자유는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들이닥친다.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하는 사파. 먹을 것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동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질. 자유를 쟁취하려 계획중이던 누어는 자신이 쟁취한 것이 아닌 느닷없이 주어진 이 자유에 불안해한다. 길거리로 나온 사자들은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헤메다가 길거리에 죽어있는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 순간 사자들은 이 시체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질은 시체를 먹어서 배를 채워야 한다고 하고,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 사자로서의 긍지를 지키라고 한다. 탈출한 사자들은 화려한 건물 안에서 사자들의 먹이를 빼앗아먹고 힘을 기른 거대한 불곰 한 마리와 만난다. 공격해 온 불곰은 사자들의 협력과 그들이 불러온 흰 말들의 말발굽에 의해 처참히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곧이어 탈출의 날이 저물고, 사자들은 하늘 저편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석양을 바라본다. 이 모든 것들이 이라크 자유 작전에서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던 이라크 사람들, 부패한 권력자들, 그리고 이라크에 자유를 주겠다며 들이닥친 미군들과 대칭을 이룬다. 하지만 결말은 과연 이렇게 갑자기 주어지고 정권의 전복으로 마무리 된 이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석양을 보던 사자들은 ‘탕’하는 소리와 함께 차례차례 온몸이 총알에 찢기어지며 쓰러진다. 아기사자를 지키려고 울부짖는 어미사자. 그러나 기관총 앞에 그들은 자유를 동경하던 긍지 높은 사자들이 아니라, 그저 위협이 되는 맹수일 뿐이다. 한 미군 병사가 사자들의 시체 곁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쏴 죽일 의도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그러자 그의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그 어깨를 감싸며 위로한다. ‘이해해...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자네가 당했을 거야.’ 불시에 들이닥친 자유라는 이름의 공습은 결국은 꿈처럼 스쳐갔다가 죽음만을 남긴다. 누어가 느꼈던 불안감처럼 전쟁을 수단으로 삼아 주어진 자유는 곧 허무한 끝을 맞이한다. 브라이언 K 본은 최근 개봉한 영화 <더 울버린>에서 등장하는 2차 세계대전 말에 일본군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다가 원자폭탄을 맞아 온 몸이 불타는 장면이나 심장을 뽑아 한 손에 쥐고 죽음을 맞는 예언 등과 관련된 <로건>의 스토리를 쓴 적도 있다. 만화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면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인 만큼 그의 다른 작품을 곁들여서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비슷한 동물 주인공 그래픽 노블인 그랜트 모리슨의 도 추천한다. 또 실화인 만큼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 실제 이라크로 뛰어들어갔던 환경보호 운동가 로렌스 앤서니의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라는 책을 같이 읽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