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가쿠라
“이 나라는 ‘신화 없는 나라’라고 불렸다. 신 대신 위인이 나라를 세우고 지탱했다고 전해 내려왔다. 신들은 정사(正史)에서 쫓겨나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진 신은 지금 어디에?” “아마츠키”라는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첫 선을 보인 일본 작가 타카야마 시노...
2013-08-22
석재정
“이 나라는 ‘신화 없는 나라’라고 불렸다. 신 대신 위인이 나라를 세우고 지탱했다고 전해 내려왔다. 신들은 정사(正史)에서 쫓겨나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진 신은 지금 어디에?” “아마츠키”라는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첫 선을 보인 일본 작가 타카야마 시노부의 두 번째 판타지 작품 “하이가쿠라”가 대원씨아이를 통해 한국어판으로 정식 발매되었다. 전작인 “아마츠키”에서도 현대와 과거의 에도(현 도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미스터리들을 투척하는 스타일로 작품을 이끌어나갔던 타카야마 시노부는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난해한 스토리 구조 속에 다양한 미스터리들을 가득 품고서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우리나라는 훨씬 천벌 받을 곳이라, 신사도 없고 절도 없어. 신화라는 것도 마찬가지지. 신앙의 대상은 아주 옛날에 살았던 위인들이고, ‘신’을 경외해야 할 존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아. 하지만 ‘인간 이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자들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어. 인간 주제에 세상 전부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게 더 우스꽝스러운 거지.” 한 줄로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읽기에 쉽지 않은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메가 히트’ 판타지, “원피스”나 “나루토”, “블리치” 같은 작품들처럼 쉽고, 재밌고,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 구조를 “하이가쿠라”는 아예 처음부터 배제한다. 일본과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신선(神仙)들이 사는 세계와 인간들이 사는 세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펼쳐내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는 솔직히 좀 읽기가 매우 지친다. 굳이 분류하자면 메이저라기보다는 마이너한 느낌의 작품이랄까? 작품 설정 초기부터 다분히 오타쿠들을 겨냥한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애당초 가사관이라는 직업은 ‘타국에 흘러 들어간 신을 도로 데려오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런 거, 좀처럼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현재 다른 나라의 지령이나 정령 등을 끌어 모아 데려오는 게 주된 일이잖아? 가사관은 자신의 염주에 그것들을 담아 지배하지. ‘신’이라 불리는 존재와 달리 녀석들은 거의 짐승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상하관계가 탄생해. 종족에 따라 성격이나 충성도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주인에게 위축되고 복종하는 법이라고. 만약 주인이 ‘죽어’라고 말하면...그야말로 콱 죽어버릴 정도로.” “하이가쿠라”의 주인공은 ‘가사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신선세계의 주민 이치요다. 그가 사는 세계는 인간들의 세상과는 몇 개의 통로만으로 이어진, 말 그대로 ‘신선들이 사는 곳’이고 실제의 지명도 봉래산, 곤륜산이다. 주인공인 이치요는 계약에 의해 자신에게 복종하고 있는 신수(神獸)들을 이끌고 인간세계로 도망친 강력한 령(靈)이나 악귀, 또는 신(神)들을 다시 잡아오는 ‘가사관’이다. “하이가쿠라”는 이치요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서 보여주는 스토리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매우 난해한 작품이 되었다. 그냥 쉽고 재미있는 판타지를 보려한다면 이 작품은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가뜩이나 작가가 어렵게 꼬아놓은 스토리를 이해하기도 힘이 드는데, 등장인물도 엄청나게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한국어판으로는 현재(2013.07) 3권까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