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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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이야기 하나사카 잇큐 ('벨 수 있는 검'과 '벨 수 없는 검')

“옛날 옛날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어딘가 색다른 괴물이 있었다는데, 그 괴물은...선문답을 무척 좋아해서 오가다 만난 이에게 심보 고약한 ‘문제’를 내서 그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을 하면 그 자의 영혼은...그 즉시 잡아먹혔다. 헌데 반대로 재치 넘치는 답변을 하면...

2013-08-16 유호연
“옛날 옛날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어딘가 색다른 괴물이 있었다는데, 그 괴물은...선문답을 무척 좋아해서 오가다 만난 이에게 심보 고약한 ‘문제’를 내서 그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을 하면 그 자의 영혼은...그 즉시 잡아먹혔다. 헌데 반대로 재치 넘치는 답변을 하면...그 녀석은 어떤 소원도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다소 독특한 소재로 만든 일본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어떤 수수께끼든 잘 풀어내는 명석한 꾀보 스님과 그 스님을 따라다니며 수수께끼를 내는 요괴의 이야기, “하나사카 잇큐”다. 책 표지에 조그만 글씨로 “기괴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아마도 그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 때문에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하기위한 작가와 편집부의 노력으로 비춰진다. 책 제목인 “하나사카 잇큐”는 주인공인 꾀보 스님의 이름이다. “자...우선은 이 설명을 하지 않고선 이 이야기도 시작되지 않는다. 스님 가라사대, 그 검은 아무 것도 벨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괴물 가라사대, 그 검은 그 어떤 물건도 벨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이번 문제는 기묘한 검...그것은 기괴한...선문답 이야기” 원래 선문답(禪問答)이란, 불가(佛家)에서 쓰는 수행법의 일환이다.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말을 통하지 않고 통하는 진리 또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즉 문자로 세울 수 없는 진리를 종지(宗旨)로 삼는 선종(禪宗)에서의 화두를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따라서 선문답(禪問答)은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형태를 띠는 것들이 많은데 여기에는 언어기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의 정신이 담겨있다. 불가에서는 해탈의 경지라는 것을 언어를 통해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언어의 소통관계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으로 선문답이 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이익이 따르지 않는 지혜 따윈 아무 의미도 없다. 이게 내 교훈이거든, 문답 하나 풀 바엔 차라리 설법 하나 알려주는 편이 훨씬 낫지...그리 생각지 않냐? 꼬마야” 처음 이 만화의 1화를 읽었을 때는, 그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와 독특한 캐릭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본편에 들어가고부터는 안타깝게도 소재와 캐릭터의 신선함을 탄탄히 받쳐주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매우 부족했다. 작품의 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꾀보스님 잇큐와 수수께끼를 내는 요괴 카르마의 만남이 펼쳐지는 1화는 누가 봐도 훌륭한 구성에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야기였으나, 정작 만화의 본편에 해당하는 “둘만의 선문답 여행”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이것이 요괴가 등장하는 판타지 만화인지, 스님이 곳곳을 떠돌며 깨달음을 얻는 수행만화인지,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와 편집부도 그걸 깨달았는지 2권에서 급하게 서둘러 끝을 내버리는데,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소재라서 그런지 더더욱 안타까움이 남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