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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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일상이 담담한 서른 셋 순정녀가 작성한 ‘연하남 사용설명서’ 는 제목만 보자면 마치 격무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의 구구절절한 애환을 다룬 드라마틱한 만화쯤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서른 세 살 생일에 이르러서야 처녀딱지를 떼어버린 한 순정녀(이 여자, 입사이후 무결근, ...

2013-08-05 황민호
일상이 담담한 서른 셋 순정녀가 작성한 ‘연하남 사용설명서’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는 제목만 보자면 마치 격무에 시달리는 샐러리맨의 구구절절한 애환을 다룬 드라마틱한 만화쯤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서른 세 살 생일에 이르러서야 처녀딱지를 떼어버린 한 순정녀(이 여자, 입사이후 무결근, 무지각의 바른 생활녀이다) 아오이시 하나에의 연애과정을 그린 순정만화이다. 혹시, 오늘은 회사 쉬겠다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의 배경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오늘은...>을 읽기 시작한 경우라면 이 만화는 일찌감치 아주 김빠지고 싱거울 수도 있다. 페이지를 스무 장 쯤 넘기고 나면 <오늘은...>이라고 말한 의미를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를 계속 읽어 나갈 수 있는 명분은 두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작가가 <학급 X 히에라르키>를 거쳐 <소녀소년 학급단>을 이끌고 있는 초딩 로맨스의 대가 후지마루 마리라는 점이다. 초딩들의 사랑과 우정에나 관심을 집중시켰던 작가가 과연 30대 순정녀의 로맨스는 과연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 만화의 이야기 골격이 나이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연상연하 커플의 로맨스라는 점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연상연하 커플이 이 만화를 읽는 명분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지금 연상연하 커플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뜨고 있다는 한 TV 드라마의 성공요인이 연상연하 설정 때문이라는 분석 역시 그래서 설득력있게 들린다. 키스할 때 여자의 허리를 당길 줄 아는 당돌하고 되바라진 고삐리가 누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아무리 누나라도 절대로 반말을 포기하지 않는 연하남의 싸가지가 불쾌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자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30대라도 연하남과 열애중이라면 제때시집 못간 노처녀라고 흉잡히기는 커녕 어린 남자를 거느린 재주 좋은 능력녀로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연하남 사용설명서라는 비상식적 조어가 난무하고 미디어는 연상연하의 대세론을 부추기고 있다. 혼기가 꽉찬 여자연예인들이 연하남과의 결혼하면서 능력녀로 등극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연상연하 커플 대세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남자의 후배와, 혹은 아홉 살이나 어린 제자와의 로맨스에 심취한 연상녀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만화에서도 연상연하 커플은 손꼽기도 번거로울 만큼 숱하게 존재해왔다. 그런데도 <오늘은...>의 연상연하 설정이 돋보인 데는 고지식한 연상녀 주인공과 띠동갑 연하남의 엄청난 나이 차이가 한몫했다. 하나에는 회사에 일등으로 출근하고 유급휴가도 쓸줄 모른채 일만할 뿐 아니라 ‘남자의 마음을 공부하고 계속 관찰하’기만 할뿐 정작 연애도 해보지 못한 답답한 스타일이다. 생기발랄한 연하남과는 전혀 코드가 맞지 않을 것 같은 고지식한 하나에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여자(물론 일본여자)의 평균 첫 경험 나이는 16.77세이다. 그러나 이 여자, 서른 세 살이 되도록 완벽한 처녀로 살아왔는데, 그 서른 세 살 생일에 같은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열두살이나 어린 대학생 타노쿠라와 술자리 이후 생각지도 못한 잠자리를 함께하고 나서 아침에 그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하나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안에서 ‘인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첫 경험을 어땠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끝내’버린 ‘말도 안되는 사실’에 번민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회사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라고 말하게 된다. 이쯤에서 제목의 비밀도 이미 밝혀진 셈이되었고 만화는 루즈해지는 듯 하지만 하나에와 타노쿠라가 연애모드로 돌입하면서 만화는 재미의 급물살을 탄다. 의외로 이 커플,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탄력있는 밀당연애가 제법이다. 최강의 연상연하 커플 만화인 유키조 사쿠의 <백마탄 왕자님>에 나오는 하라와 오즈 커플처럼 진도를 제대로 뽑지못해 독자를 때때로 답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타노쿠라는 어린 나이지만 이미 연애경험이 있는 탓에 연애에 무지한 하나에를 자연스럽게 리드한다. 생일을 맞은 하나에를 위해 폭죽칵테일을 청하거나 하나에의 외모에 대한 호감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도 안다. 한편으론 크리스마스 데이트에서 자신의 호의를 하나에가 배려심으로 마냥 사양하기만 하자 자존심이 상한 모습을 보여 하나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에 역시 타노쿠라의 집에 갔다가 옛여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걸 보고 ‘예전 여자친구 물건은 다 치우’라고 타노쿠라에게 돌직구를 날릴 만큼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데 게으르지 않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하나에의 생활에 큰 변화가 온다. 일등 출근은 고사하고 제 때 출근하기도 힘들고, 술냄새를 풍기고 다니거나 엄마한테 거짓말 하기 등등 연애의 후유증은 심하다. 그래도 하나에는 타노쿠라와의 나이 차이를 의식해서 ‘역시 안되겠지? 나하고는 안돼’ 하면서도 최면에 걸린 것처럼 타노쿠라가 원하는 여자로 변신해 간다. 연애당사자에겐 힘든 일이지만 지켜보는 그 연애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재미있는 것이 삼각관계이다. 이 연상연하 커플에게도 삼각관계의 기회는 찾아온다. 사업가 아사오는 거친 말투로 하나에를 대하고 타노쿠라와의 연애에 대해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주며 쿨한 척 접근하지만 결국은 하나에의 매력에 빠진 남자이다. 아사오는 ‘스무 살 갓 넘긴 남자애랑 결혼하려고 기다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 살 될’거라면서 ‘나랑은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 할 수 있다’며 하나에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하나에의 마음은 요지부동, 오히려 타노쿠라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깊어지고 타노쿠라를 집으로 초대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시키기에 이른다. 의미있게 보아야 할 것은 결혼 적령기를 이미 넘긴 하나에가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생활이 안정된 나이 든 남자보다는 얼마나 기다려야할지도 모르고 미래도 불확실한 연하남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오늘은...>이 연상연하 커플만화로서의 당위성을 갖는 이유이다. 일단 하나에와 타노쿠라와의 연애는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아사오란 인물 결코 만만하게 물러날 위인은 아니어서 앞으로 삼각관계의 향방에 이 만화의 존재가치가 달려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에가 ‘오늘 회사 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꼭 타노쿠라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난 다음 날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침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라고 말하긴 쉽지 않을 듯 싶다. 혹시 하나에와 같은 상황인걸로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일본의 유명한 패션매거진 <앙앙>이 선정한 제4회 앙앙 만화대상을 수상과 일본 오리콘 순정만화차트 2위라는 타이틀이 이 만화의 가치를 보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