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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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게임

루머, 악플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등진 연예인 뉴스가 보도된다. 언론과 여론이 각성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런 뉴스가 또 나온다. 또 각성을 한다. 반복의 연속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갈수록 내성마저 생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합동해서 만든 결과물...

2013-07-25 이가온
루머, 악플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등진 연예인 뉴스가 보도된다. 언론과 여론이 각성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런 뉴스가 또 나온다. 또 각성을 한다. 반복의 연속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갈수록 내성마저 생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합동해서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에 ‘설마 내가 쓴 악플 때문이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심각성을 인지하지만 뒤돌아서면 남의 일이 돼버리는 ‘악플’ 문제. 그것을 전면에 끄집어낸 것이 미티 작가의 신작 <악플게임>이다. <악플게임>은 대한민국 최고의 악플러를 뽑는, 말 그대로 “사상 초유의 대회”인 ‘악플게임’을 다룬 웹툰이다.
 

  
  
  
  
  
  
  
  
  
  
  
  
  
   
 
초반에는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기 힘들 정도로 불편한 느낌이 분명 있다. 작가가 악플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인터넷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장 혹은 단어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사망원인,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 사생활에 대해서도 ‘설마 이런 악플을 달겠어?’ 수준의 악플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악플게임>은 그것을 필터링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담아낸다. 고인, 스캔들 등 가장 민감한 주제를 초반에 꺼내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플에 대한 정면돌파. 어설프게 다룰 바에야 아예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뜻인 것이다.
 
‘악플게임’은 예선과 본선으로 나눠진다. 예선에서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제시어가 주어지고, 2명의 참가자가 전반전과 후반전에 교대로 악플과 선플을 단다. 이름 대신 아이디를 사용하며, 누가 선플을 달고 누가 악플을 다는 차례인지 관중들은 모른다. 철저한 익명성 보장 아래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악플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수비 차례일 때는 해당 연예인의 온갖 미담 기사를 수집하던 사람이 공격할 차례가 되자 상상도 못할 욕설과 비방을 쏟아낸다. 제시어의 공격대상이 되는 주인공은 마녀의 화형대에 앉아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플과 선플, 그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관중을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한다. ‘악플게임’의 룰은 인간의 악마 본능을 제대로 건드린다.
 
“악플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케이스”로 꼽히는 고인모욕을 주제로 꺼내든 건, 어설프게 악플 이슈에 기대지 않겠다는 미티 작가의 뚝심으로 보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 수늘품의 영정 사진을 마녀의 화형대에 올리면, 게임은 시작된다. 어리바리하고 순진해보였던 13살 초등학생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고인을 향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인신공격은 물론 자신의 나이, 학력까지 서슴없이 속인다. 같은 연예인이자 고인의 연인이었던 민유린은 보이지 않는 암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덤 속 수늘품의 시체를 물어뜯고” 있다. 그것이 선플이든 악플이든 중요하지 않다. <악플게임>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뭘 쓰고 있는지 본인조차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
 

  
  
  
  
  
  
  
  
  
  
  
  
  
  
   
 
매번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 청년백수 한방만은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는 PC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악플을 다는 초등학생을 욕하는 동시에 자신도 화가 나면 애꿎은 연예인에게 악플을 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처럼 ‘한방’을 노리기 위해 악플게임에 참가한다. 최하위 성적인 100위로 겨우 예선을 통과한 한방만은 처음에는 동정심, 양심 때문에 공격을 주저했다. 그러나 한 번 상금에 눈이 멀자, 스스로 왜곡, 와전, 비방을 일삼으며 야생마처럼 고인의 인격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에게서 더 이상 일말의 죄책감이란 발견할 수 없다. 오로지 게임의 전략을 연구하고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플레이어일 뿐이다.
 
유력한 우승후보 K가 한방만에게 들려주는 성공전략은 악플러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왜 특정 이슈에만 악플러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공감하거나 누구나 화내는 키워드를 건드릴 것”, “가급적 대다수가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분노하고 흥분하게 해라”, “한 사람이 하는 추측과 해석은 개 짖는 소리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하는 추측은 사실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K의 조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K는 악플게임에 대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네티즌의 마음에 드는 댓글을 쓰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감정적인 영역인 것이다. 실제로 뉴스나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면 초반에는 원 텍스트를 가지고 논쟁하지만 갈수록 꼬투리잡기, 인신공격성 댓글이 많아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 어떤 주제로 갑론을박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이면 무조건 공격하고 보는 것이다. 이른바 ‘댓글놀이’다. <악플게임>은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하나의 게임 소재처럼 갖고 노는 악플러들을 꼬집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옳은 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악플게임>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악플게임>은 단순히 이슈에 기대어 쓴 웹툰이 아니다. 왜 악플이 생겨났고 그것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지를 치밀한 게임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또한, 악플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의 특성까지 분석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인터넷에 올리면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한 게시판에 올린 사연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슈화되면서 급기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악플게임>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네티즌들에게 인터넷 공간은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고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악플러들에게 경고하는 교훈적인 웹툰만은 아니다. 대왕그룹이 기획한 ‘악플게임’ 덕분에 몇 몇 국회의원들은 비자금 사건을 덮을 수 있었다. 대왕그룹 회장은 그 국회의원들이 대왕그룹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 말한다. 언론도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사 광고가 언론사를 먹여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플게임>은 사실 확인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루머들, 그 과정에서 망가지는 연예인의 삶, 정치인과 기업인의 유착관계, 진실만을 다뤄야 하는 기자의 사명감 등 다양한 이슈를 함께 다룬다. 악플이라는 소재는 신호탄 일뿐, 파고들수록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들이 고개를 내민다.
 
청년백수, 초등학생, 유명논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악플게임에 참여한다. 기자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세상이 시끄러워야 기자가 먹고 산다”는 대사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악플게임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란을 ‘기사거리’로 여긴다. K가 진실만을 보도하는 기자의 사명감을 일깨워주지만, 기자가 특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연예인, 유명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병원, 장례식장, 자택 할 것 없이 몰려간다. 유가족의 심정, 고인의 인격은 나중 문제다. 일단 다른 매체에 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도 취재진의 카메라에 가로막혀 움직일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 10회 남짓 연재된 웹툰을 놓고 ‘이 웹툰은 이렇다’고 결론짓긴 섣부르다. 분명한 건, 매 회 보면서 끊임없이 질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과연 ‘악플게임’을 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게임 참가자들과 관중 모두 이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언제까지 자각할 수 있을까. 과연 이 대회를 개최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제 겨우 10회 남짓 연재했지만 <악플게임>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무수히 많다. 한방만은 최하위 성적으로 간신히 예선을 통과했으나 최상위 성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이미 영혼을 버린 지 오래된 그는 본선에서 얼마나 무서운 악마 본성을 드러낼까.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