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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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深夜食堂)

소박한 요리에 담긴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맛. 은 요리 만화다. 에피소드마다 사연을 품은 요리가 등장한다. 은 드라마다. 각 요리마다 주문한 ‘손님’의 소소한 사연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드라마가 있는 요리. 저마다의 사연을 눈으로 보여주는 의 소박한 음식...

2013-07-10 원은주
소박한 요리에 담긴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맛. <심야식당>은 요리 만화다. 에피소드마다 사연을 품은 요리가 등장한다. <심야식당>은 드라마다. 각 요리마다 주문한 ‘손님’의 소소한 사연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드라마가 있는 요리. 저마다의 사연을 눈으로 보여주는 <심야식당>의 소박한 음식은 화려함과 기름기를 빼고 따뜻함과 아름다운 추억을 맛으로 보여준다. <심야식당>의 경쟁력은 그 ‘따뜻함’과 ‘추억’이다. 화려함 대신 따뜻함으로 마음을 채워주는 요리만화.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 메뉴는 돼지고기국과 술. 메뉴판에 붙은 메뉴는 그것뿐이지만, 가능한 주문일 경우 요리해준다는 것이 마스터의 방침이다. 새벽 장사다 보니 손님은 주로 밤늦게 일을 마친 샐러리맨이나 새벽녘 퇴근하는 스트리퍼, 유흥가의 다른 가게 주인 혹은 야쿠자 등. 평범하지 않지만 대단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주문하는 음식 또한 그리 특별하지 않다. 가끔은 연예인이나 음식 평론가도 찾지만, 그들이 <심야식당>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에게도 주목당하지 않으면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음식을 먹고 싶은 것뿐이다. 요리를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론 방관자처럼 지켜보는 마스터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아저씨다. 도저히 요리사처럼 보이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사실 그는 못하는 요리가 없는, 가정요리의 대가다. 게다가 침묵과 배려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속이 꽉 찬 남자다. 남의 말을 들어주되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요리 한 접시로 위로해줄 줄 아는 남자다. 가게 구조는 간단하다. 썩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주방. 테이블은 따로 없다. 손님들은 카운터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문한 음식을 먹는다. 주문한 음식 또한 평범하다.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각광 받았을 비엔나소시지나 계란말이, 반찬 없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버터라이스. 조개를 자작하게 끓인 찜도 나오고 야채소바나 돈부리도 등장한다. 햄야채 샌드위치와 감자샐러드가 나올 때도 있다. 우리도 한 번씩은 먹어보았음직한 익숙한 음식들이다. 지금도 집에서 별생각 없이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 한마디로 심야식당은 뒷골목 어디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초라한 ‘밥집’이다. 이렇게 평범하고 소박한 음식을 두고 손님들은 ‘이건 정말 세상에 다시없을 맛’이라며 감탄하지 않는다. 그 맛 앞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풀어내지도 않는다. 한 가지 요리의 최고 장인을 찾기 위한 노력이나 요리 경연 대회는 아예 장르가 다르다. 재료의 대단함이나 요리의 특별함을 전문적으로 풀어내 설명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내 앞에 놓여있는 ‘나를 위한 음식’을 먹고 내 이야기를 한다. 마스터는 요리를 만들어주고 그들의 사연을 무심하게 들어줄 뿐이다. 그래서 더 정감 간다. 요리는 사실 우리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심야식당>은 요리만화지만, 요리가 주인공은 아니다. 심야식당을 운영하는 마스터가 주인공도 아니다. <심야식당>의 주인공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과 그들의 추억 혹은 그들의 사연이다. 그 추억과 사연을 풀어내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요리가 사용될 뿐이다. 그렇다고 요리가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소품에 가까운 단역은 아니다. 화려한 주연은 아니지만, ‘요리’가 없다면 <심야식당>은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요리’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마음을 두드리고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웃고 울고 공감한다. <심야식당>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요리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심야식당>에는 권당 14편 정도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에피소드별로 그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추억을 곱씹고 사연을 풀어가기에 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부족함도 없다. 도리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이야기는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 매개체가 되는 요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해준다. 군침이 돌만큼 세밀하고 화려하게 요리를 표현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요리는 ‘맛있겠다’라는 느낌을 충실하게 전달해준다. 그것은 요리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 때문이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버터라이스’였다. 버터라이스. 이 평범한 요리는 특별한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버터 한 조각, 그리고 간장 약간이 재료의 전부다. 그러나 ‘버터라이스’를 읽고 나면 저도 모르게 입에 군침이 돈다. 당장 달려가 따뜻한 밥을 지어 버터에 비벼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에 먹어보았던 버터라이스의 기억이 내게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맛. 익숙한 맛. 기억하고 있는 그 맛에 ‘버터라이스’를 주문한 손님의 사연이 녹아 들어가면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버터라이스’와 약간 센티멘털한 만화 속 사연이 얽혀서 두근두근 거리는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된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강렬한 노스탤지어가 만나는 시너지는 이렇게 대단하다. 치매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감자샐러드’를 먹으며 울던 아들은 도쿄로 돌아와서 다시 AV배우의 길을 걷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먹은 어머니의 ‘감자샐러드’는 옛 맛이 아니다. 그래도 아들의 기억에는 ‘어머니의 맛’으로 남을 것이다. 아들을 버리려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아들과 찾은 바닷가에서 ‘모시조개찜’을 사준다. 그 ‘모시조개찜’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죽기 살기로 노력해보기로 결심한다. ‘모시조개찜’은 어머니에게도 아들에게도 특별한 요리다. 초로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은 여전히 ‘모시조개찜’을 좋아한다. 버려질 마지막 순간, 어머니와 자신을 다시 하나로 묶어준 ‘모시조개찜’은 아들에겐 슬픈 추억이자 가장 행복한 음식이기도 하다. 따뜻한 밥에 가쓰오부시를 잔뜩 얹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고양이맘마’를 즐겨먹던 무명의 엔카 여가수는 심야식당에서 만난 작사가에게 좋은 가사를 받고 그 노래가 대박을 치면서 단박에 스타가 되지만 결국 과로로 병에 걸려 굵고 짧게 불꽃을 태우고 죽음에 이른다. 그 외에도 심야식당에는 어느 한 편 부족함 없는 에피소드가 100편 넘게 그려지고 있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 이 요리 나도 알아!”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그만큼 간단하고 친숙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요리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요리에 담긴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과장되지 않아도 드라마로서 손색없고 더할 나위 없이 맛깔스럽다. 요리만화지만, 요리를 부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요리가 빛나고 이야기는 더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30분짜리 드라마로 훌륭하게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더불어 수많은 사연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통찰력과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내는 연출력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좋은 소재와 훌륭한 연출, 뛰어난 스토리의 삼박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읽는 내내 배고픔을 절로 느끼게 하는 <심야식당>. 당부하자면 다이어트 중이거나 배고픈 밤에는 절대 읽지 말 것. 지나치게 간단한 레시피의 요리가 많아서 자칫했다간 나도 모르게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달려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