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의 왕
“닌자의 세계뿐만 아니라 바깥 세계도 지배할 수 있다는 비술, ‘삼라만상’, 만유의 정점에 서고자 하는 자는 응당 이를 탐하게 된다.” 카마타니 유키의 만화 “닌자의 왕”은, ‘일본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인 “닌자”를 현대적인 이미지로 각색하고, ‘순정만화의 ...
2013-06-20
석재정
“닌자의 세계뿐만 아니라 바깥 세계도 지배할 수 있다는 비술, ‘삼라만상’, 만유의 정점에 서고자 하는 자는 응당 이를 탐하게 된다.” 카마타니 유키의 만화 “닌자의 왕”은, ‘일본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인 “닌자”를 현대적인 이미지로 각색하고, ‘순정만화의 분위기’를 가미해 여성독자들을 노린, 다소 특이한 느낌의 ‘순정무협 판타지’다. 우리나라에도 김혜린의 “비천무” 같은, ‘무협’의 그릇에 담긴 애절한 로맨스가 있지만, “닌자의 왕”은 감히 “비천무”에 비교할 만한 작품까지는 못되고, 구조나 형식은 매우 비슷한, 심심할 때 읽기 딱 좋은 재밌고 가벼운 만화라고 하겠다. “닌자의 왕”은, 분명히 말하지만 ‘판타지’다. 옛날 일본의 전국시대에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첩보집단 “닌자”가 현대에도 그 명맥을 이어 존재하고 있다는 설정 하에, 최고의 비술 ‘삼라만상’을 손에 넣기 위해 각 닌자집단 간에 암투가 벌어진다는 스토리가 이 작품의 기본 뼈대이긴 하다. 그리고 이 ‘뼈대’를 잘 살려냈으면, ‘판타지’가 아니라 매우 그럴듯한 현실성을 지닌 긴장감 넘치는 ‘무협액션활극’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했든, 편집부가 의도했든 간에, “닌자의 왕”은 그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1권 초입부터 작가는 이 작품이 그저 판타지의 영역에만 머물도록 독자들에게 아예 못을 박아버린다. 이 작품이 “판타지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도록 묶어놓은 가장 강력한 설정은, 바로 최고의 비술이라는 “삼라만상”의 존재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와 원리를 밝혀놓았으며, 시공을 초월해 사용할 수 있고,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비술이다. 더군다나 이 비술은 전승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메시아가 재림하듯’이 ‘비술 자체가 자신이 담길 그릇을 찾아 그 육체 안에 깃드는’ 것이어서, ‘삼라만상’이 누구에게로 옮겨 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모든 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삼라만상의 계승자’는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려드는 닌자들에게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녀 같이 가녀린 이미지의 소년 미하루가, 비술 ‘삼라만상’이 몸에 깃든, ‘현세의 계승자’이자 ‘비술의 발동자’이며 따라서 당연히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닌자의 왕”은, 주인공인 미하루를 둘러싸고 “이가, 후마, 벤텐, 코가, 토가쿠시”의 다섯 개 닌자집단이 벌이는 암투와 모략이 스토리의 큰 줄기이며, 각각의 집단 별로 존재하는 ‘가문의 비기’를 구사하는 ‘금기술사’(가령 이가는 ‘기라’, 후마는 ‘전변화’, 토가쿠시는 ‘심안’, 코가는 ‘사약’ 등등)가 작품의 중요한 캐릭터로 활동한다. 닌자들 외에도 닌자들의 동향을 감시하며 ‘바깥 세계’와 ‘숨은 세계’의 ‘균형’을 위해 활동하는 ‘시미즈 가(家)’, 자위대의 첩보부대로 활동하는 국가의 닌자집단 ‘카사’, 술법의 부작용으로 불사신이 되어버린 ‘백택’(원래 부엉이와 고양이였으나 수백 년을 살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등이 등장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엮어낸다. 하지만 “닌자의 왕”이 ‘무협판타지’로서 이런 좋은 재료들과 캐릭터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중점적으로 힘을 쏟는 부분은 정작 다른 지점에 있다. ‘야오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서로에게 끌리는, ‘기라술사’ 요이테와 주인공 미하루의 감정묘사가 전반부의 핵심이며 요이테가 사라진 후 급격한 ‘내적 변화’를 겪는 미하루와 그의 보호자인 벤텐의 수령 쿠모히라의 ‘애증관계’가 후반부의 핵심이다. 총 14권으로 완결되었고, 좀 아쉬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