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면
면을 통해 발견하는 남자들의 집착과 열정, 그리고 추억과 아집 은 과 을 통해 꾸준히 한국독자들과 만나온 요리만화의 거장 츠치야마 시게루의 최근작이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만화는 요리의 세계를 다루되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향이 아니라 거칠고 우악스런 남성향이 특징이다...
2013-06-10
황민호
면을 통해 발견하는 남자들의 집착과 열정, 그리고 추억과 아집 <남면-남자의 면>은 <신장개업>과 <대결 궁극의 맛>을 통해 꾸준히 한국독자들과 만나온 요리만화의 거장 츠치야마 시게루의 최근작이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만화는 요리의 세계를 다루되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향이 아니라 거칠고 우악스런 남성향이 특징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 그대로 <남면> 역시 음식, 특히 면류에 관련된 남자들의 집착과 열정, 추억과 아집을 투박하지만 박진감 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싱겁고 밋밋한 사랑의 감정도 전혀 맛깔스럽지 않은 고명처럼 따라 나온다. <남면>은 <신장개업> 처럼 요리를 만드는 요리인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대신 교도소안의 맛자랑 배틀을 다루었던 <대결 궁극의 맛> 처럼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가의 기쁨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신장개업>에서 위선과 오만, 모순과 혼란이 지배하는 요식업계에서 독야청청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던 음식점 업그레이더 키타카타 토시조의 기백이 <남면>에서는 엄청난 면 애호가인 이케다 멘타로(통칭 이케멘)를 통해 오롯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이케멘은 면을 좋아하는 왕성한 식성만큼 일에 대한 열정도,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관심도 의욕적이다. 그러나 이케멘은 다른 음식만화의 여느 주인공들 처럼 음식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거나 도전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면을 언제나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먹고 즐기는 담백한 품성이다. 그러다 보니 일도 사랑도 계산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이케멘은 하루 한그릇은 반드시 서서 먹는 소바를 즐긴다. 역구내 가게든, 상가의 가게든 가리지 않고 서서 먹는 소바를 즐기지만 자주 찾는 가게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의 평가를 블로그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격식없이, 의도없이 순수하게 소바를 즐길 뿐이다. 굳이 서서 먹는 소바를 즐기는 것도 그가 바쁜 직장인이기 때문일테지만 무엇보다 그가 음식에 구애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음식을 즐기는 진정한 식도락가라는 반증이다. 이케멘은 면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 면에 미친 사나이다. 나고야로 출장을 가는 첫날부터 맛 볼 면의 종류를 미리 체크하여 리스트업 해두는 구르메(gourmet)이기도 하지만 4시간 동안 다섯 종류의 면을 모두 먹어 치우는 구르망(gourmand)이기도 하다. 이케멘의 면 욕심은 어디든 면이 있는 자리가 생기면 마다 않고 쫒아 다닌다. 일요일마다 자신이 만든 소바를 부하직원들에게 강요하는 총무부장의 소바에 대한 집착때문에 직원들은 진저리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곤란을 겪는다. 이른바 소바희롱. 소문을 들은 이케멘은 다른 부서지만 총무부장의 소바를 맛보기를 자청하여 찾아간다. 총무부장은 자신의 맛없는 소바를 힘들게 먹고 있는 직원들에게 오히려 깨작깨작 먹지마라, 향기를 즐겨라, 후루룩하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격분한 이케멘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무리 최고의 식재료를 사용해도 점잔떠는 매너를 강요당하면서 먹는 식사가 맛이 있을리 없’다고 항변하며 차라리 역에서 서서 먹는 소바를 먹겠다고 말한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아는 남자의 기백을 보여준다. <남면>이 담아내고 있는 또 하나의 코드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다. 츠카모토회장의 우동스키 에피소드는 남자들에게 음식에 대한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좋은 재료로 만든 관서풍 우동스키가 나오자 츠카모토회장은 뜻밖에도 좋은 재료들을 모두 건져내고 국물에 우동사리만 넣어 먹는다. 그가 원했던 우동스키는 넉넉지 못했던 어린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우동스키였다. 간장과 설탕만으로 맛을 낸 국물에 우동과 채소찌꺼기만 들어있는 엉터리 우동스키였지만 츠카모토 회장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우동스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츠카모토회장은 말한다. ‘여러 가지 우동을 먹어봤고 전부 다 맛있었지만 제일 맛있었다고 생각한 건 어머님이 해주셨던 우동’이라고. 그러나 <남면>이 반드시 남자들의 긍정적인 정서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면야’의 주인은 국물을 마시기 전에 후추를 넣지 말라는 룰을 만들어 놓고 손님에게 강요하며, ‘라면도장 검(劍)’의 주인은 식사중엔 잡담금지, 국물도 요리 전부 마실것 같은 벽보를 붙여 놓고 손님들에게 강요할만큼 독선적이다. 이를 따르지 않는 손님을 내쫒기까지 한다. 이케멘이 라면과 진검승부하는 주인의 자세에 대해 모호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나나는 과감하게 주인의 강요를 부정하고 그 가게를 나오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눈치볼 필요도 없고 활기넘치는 가게라야 이것 저것 먹고 싶어’ 진다고 라면가게 주인들의 독선을 묵인하는 이케멘의 우유부단함에 일침을 가한다. <남면>은 등장인물들의 음식에 관련된 다양한 일화를 통해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음식문화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던 카미야가 좌천당한 경우를 두고 진지한 것도 좋지만 자기 취향을 강요하는 건 적당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든지, ‘라면도장 검’의 주인이 좋은 재료로 라면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만드는 이가 진지하면 먹는 사람도 진지하다’는 ‘생각을 한다든지, 야키소바도 비즈니스도 시기를 놓치면 맛이 없어진다’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들이 그렇다. <남면>이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만화로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후루룩’이라는 청각적 요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케멘이 마치 식신의 형용으로 갖가지 면을 먹을 때 마다 ‘후루룩’거리며 흡입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만화 속에서도 이케멘이 ‘후루룩’ 거리며 면 먹는 모습을 본 옆 자리 사람들이 거기에 동화되어 같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을 먹는 모습은 자극적이다. 만화를 읽으면서 저렇게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을 먹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케멘이 모든 면을 ‘후루룩’ 하고 먹는 것은 아니다. 면의 특성에 따라 나고야의 녹말소스 스파게티는 ‘우물 우물’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다. 이 만화는 면 애호가인 이케멘을 통해 음식에 대한 남자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성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