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세 여자, 미라 여름 정아의 소소하고 평범한, 울고 웃는 사랑 이야기.
<아는 사람 이야기>는 세 여자와 그녀들을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보통 남녀의 평범하고 흔해서 지루하지만, 생각보다는 또 나에겐 잘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이게 뭐야, 싶으면서도 묘하게 고개 끄덕여지는 설명에 기대를 하고 읽어보았다.
너, 나. 만남의 순간
25세 동갑내기 친구 미라와 여름, 정아는 각각 애인이 없거나 달달한 연애 중이거나 오래돼 설레지 않는 연애 중이다.
큰 키가 콤플렉스인 장미라는 대기업의 능력 있는 경리사원으로 고교 때 잠깐 감흥 없이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애의 경험이다. 한때 잠시 마음을 주었던 남자가 있었지만, 그 남자는 미라의 친구와 현재 so sweet 중이다.
아르바이트만 한 줄기차게 하는 백수 한여름은 미라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김상훈과 달콤한 연애 중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지금의 백수 생활에 큰 불만이 없던 여름은 우연히 집 근처에서 카페를 발견하게 되고 단지 유니폼이 멋질 것 같아서 덜컥 오전파트 아르바이트 자리를 덥석 물어버린다. 그녀가 근무할 카페 Nothing에는 정직원인 남선오와 오후 알바생인 20살 임수능이 있다.
5년 된 남자친구와 동거 중인 이정아는 편집 디자이너. 남자친구 최정상은 작가 지망생이다. 꿈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고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정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오래된 연인은 마치 가족처럼 상대에 대한 두근거림이 아닌 신뢰와 편안함으로 서로 지탱하고 위안받는 것이 익숙하다. 그녀는 정상 또한 자신과 같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여름과 정아는 각각 연애 중이다. 그래서 미라도 애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소개팅에 나간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소개팅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라는 소개팅을 가던 중에 지하철역에서 연하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만화 같은 만남. 그 섬광 같은 만남이 그녀의 마음에 남아 도저히 그 남자가 잊히지 않는다. 소개팅남은 이미 잊었지만, 소개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애프터를 나가는데 우연히 지하철의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시작부터 첩첩산중으로 꼬여가지만, 사랑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실수에서부터 솔솔 찾아온다. 미녀의 주정이나 헐렁한 모습은 진상이 아니라 의외의 귀여움으로 보인다는 만고의 진리는 이들 사이에서도 오케이.
세 여자에게 사랑은 각각 다른 색깔이다.
<아는 사람 이야기>에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여자와 한참 사랑이 달콤한 여자 그리고 아주 오래된 사랑의 끝을 잡고 있는 여자. 이렇게 세 여자의 각각 다른 사랑이 그려진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커플은 미라와 연하의 지하철남 평화 커플이다. 반복되는 우연 속에서 서로 기회를 만들어가고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해 초조하고 불안한 가운데 한 걸음씩 나가고. 그러면서도 정작 마지막 용기는 내지 못한 채 서로의 곁을 빙빙 맴돌던 두 사람은 ‘너희 둘만 빼고 우린 다 아는’ 감정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마음을 서로에게 터트린다. 그리고 서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 나뿐 아니라 너도 용기 내기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사실 무한한 용기가 필요하고 단순히 아는 사이가 되기까지도 누군가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걸. 좋아도 좋다고 말할 용기를 내기란 여자든 남자든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라는 걸. 아직 졸업도 하지 못한 어린 남자에게는 ‘좋아한다.’는 말을 연상의 그녀에게 한다는 사실조차 지나친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라는 깨달았고. 욕심으로 보일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녀의 마음을 떠보기에 급급했던 평화는 연상의 어른일지라도 ‘사랑’은 쉽게 용??? 낼 수 없는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이 차분하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그려져 두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이야기 전체에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바이러스를 뿌린 듯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반면 오래된 정아와 정상 커플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조마조마 아슬아슬하더니 결국은 정상의 사고를 계기로 덤덤하면서도 슬픈 이별을 맞이한다. 두 남녀 사이의 이별을 다루는 동안 작가는 정상이 키우고 싶어 했던 새끼 고양이의 죽음과 정아의 무의식 속 정상의 환영을 통해서 두 사람의 이별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될 거라고 누구나 예상한 이별. 이별조차 일상처럼 평범하게 마주하는 정상과 정아의 마지막에서 가장 슬펐던 건, 정상이 사주었지만, 자신의 평소 옷차림과 너무나 달라서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빨간 원피스를 입고 떠나는 그를 향해 달려간 정아의 모습이었다. “나를 좋아했어?”라고 묻는 정아는 슬펐고 그녀에게 안녕을 고하는 정상은 더 슬퍼 보였다. 덤덤하지만, 사실은 더할 수 없이 슬펐던 이별. 그 두 사람 곁에는 ‘현실’이 떠돌고 있었다.
현실적인, 그러나 다분히 환상 같은
사랑은 일상의 판타스틱이다. 대단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도 이미 사랑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이야기>에는 바로 그런 판타지가 가득하다.
비록 애인과 헤어졌어도 정아에게 그 사랑은 지난 5년간의 행복이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미라는 말할 것 없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훈남 슈퍼맨 남자친구를 둔 여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름은 지금 슬슬 같은 카페의 선오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 감정이 어떻게 될지, 어디로 튀고 어디로 흐를지는 그녀도 모른다. 아직 연재 중인 이 만화가 끝날 때쯤엔 여름과 상훈은 헤어질지도 모른다. 모두의 바람을 산산이 찢고 미라와 평화도 헤어질지 모른다. 이 사랑의 결말은 누구도 모른다. 사랑은 개개인의 판타지이자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이야기>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 벼락같은 만남도 있지만, 연합 동아리에서 만나기도 하고 또 친구에게 소개받기도 하고. 그렇게 너나 나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만남에서 시작해서 사??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혹은 너의 또는 행인 1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정해진 몇 가지 매뉴얼로 진행할 수 없는 개개인의 판타지다. 누구도 결말을 알 수 없는 이 달콤하고도 씁쓸한 이야기가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 두근거리며 지켜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세상에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고, 그만큼 재미있는 게 남의 연애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