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석가여래를 죽이러 간다! 너도 따라와!!” 마니아들 사이에서 수입원서나 속칭 ‘빽판’으로만 떠돌던 전설의 명작이 드디어 정식 한국어판으로 발행되었다. ‘페인터’ 붐을 일으키며 수많은 ‘그림쟁이’들을 절망에 빠트린 ‘하드코어 서유기’, 테라다 카츠야의 “서유기전 대원왕” 1권이 1995년 일본에서 출간된 지 무려 17년(“서유기전 대원왕”의 일본어판 1권 출간 시기에 관해서, ‘1998년’이라는 정보와 ‘1995년’이라는 정보가 대립하고 있는데, 한국어판 1권에 명시된 카피라이트<ⓒ 1995 by Katsuya Terada All rights reserved. First published in Japan in 1995 by SHUEISHA lnc. Tokyo.>를 근거로 ‘1995년’으로 하였다.) 만에, 학산문화사를 통해 정식 한국어판으로 만들어져 2012년 겨울, 드디어 국내 서점의 진열대에도 깔렸다. 책 띠지에 적힌 한 마디 홍보문구, “드디어...봉인이 풀린다!”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작품도 아마 없을 것이다. 표정만으로도 박력이 넘치는 근육질의 손오공을 표지로 내세우고,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 딱지를 당당히 붙인 채로 ‘올 컬러 화보집’처럼 출간된 테라다 카츠야의 “서유기전 대원왕” 한국어판 1권은, 사실 일본 현지에서도 1권이 나온 지 15년 만에 2권이 발매된(2010년), ‘완결’은 감히 기대조차 하면 안 될 것 같은, ‘저주받을 걸작’이다. 사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인 테라다 카츠야는 만화가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나 게임 ? 애니메이션의 원화가로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인기 여배우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3국 합작영화 “블러드”의 원작 애니메이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원화를 맡기도 했었고, “버추어 파이터 2”나 “철권 5” 같은 유명 게임의 원화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림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가 가진 독특한 화풍은 테라다 카츠야만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된 강력한 고유함을 지닐 수 있었다.”라는 누군가의 평처럼, ‘오직 그림만으로’ 독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테라다 카츠야는 정말 ‘오직 그림만으로도’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압도적인 작화력(作畵力)을 가진 아티스트다. 실제로 “서유기전 대원왕”만 봐도 대사가 거의 없는데, 대사가 필요 없게 느껴질 만큼, 그림만으로도 모든 에피소드를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대사가 별로 없고 그림 위주로 진행된다고 해서, 스토리가 난해하거나 작품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국의 고전 “서유기”를 테라다 카츠야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창조해 낸, 이 기괴하고 파격적인 “서유기”는, 음울한 느낌의 밀도 높은 그림으로 꽉 차있는 ‘첫 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을 ‘멘붕 상태’에 빠트린다. “삼장, 어둠 속에서 천축을 그리며 오공, 안개 속에서 요괴를 멸하다.” 「요괴가 난무하던 시대. 황량하기 그지없는 황야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는 이상한 모양새의 한 무리가 있었으니, 이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공과 팔계, 그리고 눈을 가리고 입이 막힌 채 구속된 여인은 금각과 은각 형제를 비롯하여 숱하게 나타나는 요괴들을 처치하며 현장 삼장을 서역까지 모시고 간다. 오공은 본디 원숭이들의 왕으로, 두려워하는 것 없이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었지만, 석가여래에게 제압당해 500년간 봉인되었다가 각자(覺者 :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이끄는 자) 현장 삼장에 의해 깨어나 그를 천축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신을 가둔 석가를 죽이기 위해 따라나선 오공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은데…!」(책 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서유기전 대원왕”에서 ‘삼장법사’는,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기괴한 고문도구들로 눈이 가려지고, 입에 재갈이 물려서, 양손을 뒤로 묶인 채로 손오공에게 끌려 다니는, ‘구속된 노예’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성별 역시 남자가 아닌 여자이며, 풍만한 육체를 다 가리지도 못하는, 보기에도 민망한 옷차림을 하고 수시로 손오공이나 요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제대로 된 대사 한 마디 없는 불쌍한 캐릭터다. 사실 ‘삼장법사’가 이런 캐릭터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1권의 맨 마지막 에피소드인 ‘제 13계’에서 펼쳐지는 ‘현장 삼장과 손오공의 인연’을 보면, 요괴들에게 “각자(覺者)”로 불리는 ‘현장 삼장’이 석가여래의 예언대로 손오공을 풀어주러 산에 오른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현장 삼장’이 부처님의 불법을 세상에 펼치려는 신앙심 깊은 불가의 제자가 아니라, ‘원숭이를 풀어주고 부처에게 대적하는 자’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손오공이 봉인된 산 정상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요마의 습격을 받아 두 팔을 잃은 ‘현장 삼장’은 점점 ‘태아(胎兒)’의 형태로 변해 가는데, 손오공에게 말하기를 “그릇이 필요하니 여인을 찾아주시오, 나는 태아가 되면 힘을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태내에 넣어 그 여인의 오감을 막아 힘을 봉인하고 천축으로 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로테스크한 ‘삼장법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기존의 익숙함을 뒤엎은 캐릭터는 “삼장법사”뿐만이 아니다. 포악함과 잔인함의 극치를 달리는 주인공 손오공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탐욕스러운 돼지 요괴”처럼 그려진 저팔계, 손오공에 의해 목이 잘리고 삼장의 ‘마봉안’에 의해 낙인이 찍혀 ‘목만 덩그러니 말 안장기둥에 매달린 채로’ 천축으로 동행하는 사오정의 모습도 매우 파격적이다. “내 이름? 나는 현장 삼장...‘각자(覺者)’이며 ‘대신하는 자’, 그리고 오공 당신은 석가여래를 ‘죽이는 자’입니다.” 올 컬러로 인쇄된 책치고는 가격도 적당하다.(14,000원) 깔끔한 플라스틱 커버를 덧씌운 표지장정도 아주 맘에 든다. 이 작품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거칠고 과격한 ‘마초의 화신’으로서 ‘극단적인 남성미’를 내뿜는 손오공과 난생 처음 보는 파격적인 ‘여자 삼장법사’의 여행기”정도 일까? 혹자는 이 작품을 보고, “오리엔탈 그래픽 노블의 신기원(新紀元)을 이룬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오리엔탈 그래픽 노블의 신기원”이라니, 정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한마디로 함축한, 정확하고 멋진 표현인 것 같다. ‘사지절단’은 기본으로 나오는, ‘과격하고 잔인한 폭력묘사’와 ‘리얼하고 노골적인 성(性)적 코드’가 합쳐진 ‘어른들만 봐야 할 하드코어 서유기’, 테라다 카츠야의 압도적인 그림으로 표현된 환상적인 이야기가 지면 가득히 펼쳐지는 전설의 명작, “서유기전 대원왕”, 꼭 보시라! 안보면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