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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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도감

“그 사람은 정말이지 유니폼을 빈틈없이 소화해낸다. 파고들 틈이 없다고 할까.”“Kiss”라는 작품으로 ‘러브스토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토모의 단편집 “제복 도감”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니폼’을 소재로 잡...

2013-05-25 김진수
“그 사람은 정말이지 유니폼을 빈틈없이 소화해낸다. 파고들 틈이 없다고 할까.”
“Kiss”라는 작품으로 ‘러브스토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토모의 단편집 “제복 도감”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니폼’을 소재로 잡아 다양한 느낌의 ‘관능적인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단편집으로 마츠모토 토모의 ‘특기’가 잘 발휘될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 매우 기대가 크다.

 

“빈틈없이 꽉 조인 유니폼이 흐트러져 가는 이 모습. 허물어져 가는 이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이 사람의 넥타이를 꽈악 조이게 된다.”

 

“페티시즘(fetishism)”이란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특정 신체 부위 등에서 성(性)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자연적, 인공적 물건’을 가리킨다. ‘원시종교의 우상숭배’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이 개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에로티시즘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되는데,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성적인 대상을 물건으로 대체하면서 숭배 욕구와 성적 욕구를 동시에 추구하는 행위’로 변화한다. 따라서 페티시즘은 ‘변태적인 에로티시즘’같은 것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태고 적부터 인간의 본성에 존재하는 “자신의 취향에 관한 도착(倒錯)증세의 일종”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성향이 매우 뚜렷한 이들을 가리켜 ‘물신주의자(fetishist)’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얘기가 좀 거창해졌지만, 이 작품을 소개하는데 앞서 ‘페티시즘’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제복(制服)’ 때문이다. (마츠모토 토모의 성적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유니폼들이 ‘타인에 대해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어떤 계기’로서 작용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Kiss”에서도 보여주었듯이, 마츠모토 토모는, 특정한 어느 지점, 어느 순간에 캐릭터가 보여주는 간단한 제스처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이 내포하고 있는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을 극대화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기 때문에, 이렇게 아예 대놓고 ‘유니폼에 대한 페티시’를 드러내면, “어떤 장면이 나올지” 정말 팬으로서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매우 짧은 단편들이 순차적으로 나열되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으며 경찰관, 호텔리어, 간호사 등 다양한 제복으로 몸을 감싼,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의 목차는 ‘제복도감 1,2,3’, ‘교복’, ‘그의 뒷모습’, ‘제복도감 EX’, ‘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마츠모토 토모가 그리는 ‘어른들의 섹시한 옴니버스 러브스토리’일 것이다.

 

“그의 뒷모습” 정도를 빼면, 워낙에 짧은 이야기들로만 이루어진 책이라 에피소드마다 일일이 리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매력이 없다거나 재미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전반적으로 마츠모토 토모의 ‘특기’는 아주 잘 발휘된 작품집인 것 같고, 표현수위가 좀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야하진 않다. 인상적인 컷이 남도록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예고편을 보는 것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