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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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세계

“그 방에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안에서는 열 수 없도록 밖에만 달린 것이, 부동산에서는 전 주인이 달아놓은 거라고 했다. 단지 그뿐.” “BL”장르가 가지는 매력이 있다면,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랑의 형태보다는 파격적이고 거친 사랑의 형태가, ‘더 많이’ 그려...

2013-05-22 김현우
“그 방에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안에서는 열 수 없도록 밖에만 달린 것이, 부동산에서는 전 주인이 달아놓은 거라고 했다. 단지 그뿐.” “BL”장르가 가지는 매력이 있다면,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랑의 형태보다는 파격적이고 거친 사랑의 형태가, ‘더 많이’ 그려지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성애자 남성’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많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장르가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비밀스러운 욕망과 성(性)적인 환상을 해소해 주는, 일종의 탈출구 같은 장르’라는 누군가의 평을 읽었을 때,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은, 남자들이 ‘포르노’를 보는 심리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난, 남자라서 이 장르에 대한 이런 내 생각이 맞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사히나 마사아키라고 한다. 동생인 마사하루랑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 10년 가까이 된 사이다. 그리고 그 만큼의 세월동안 나는 계속 그 사람을 봐왔다. 마치 꽃을 지켜보듯 계속 마음에 품어왔다.” 내가 읽어 본 “BL”장르의 작품은 사실 몇 개 되지 않는다. 주로 지인들의 추천으로 읽은 것들이 많았는데, 어떤 것은 커플이 ‘남자와 남자’라는 것만 빼놓으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사랑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잔잔하고 평온한 작품도 있었고, 어떤 것은 매우 과격하고 날카로워서 읽는 내내 심기가 아주 불편했던 작품도 있었으며, 어떤 것은 낯 뜨거울 정도로 변태적인 성애장면이나 섹슈얼리티에 집착한 작품도 있었다. “연애란 그리 숭고한 게 아니다. 괴로운 건 그가 그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인들이 추천해준 “BL”작품들에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작품에 내재된 “빼어난 문학적 구조”였다. 캐릭터 자체가 가진 비극성이라든가, 비밀스럽고 파격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심오한 심리묘사라든가, 독점욕과 소유욕에 관해서 극단적인 선까지 내달리는 내러티브 구조라든가 하는, ‘평범한 애정관계’에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고, 설령 다루더라도 그 선까지 묘사할 일도 없는, ‘치열한 열정이 느껴지는 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작품들은 장르에 상관없이 읽는 이를 빨아들이게 마련이며, 나 역시 거부감을 느낄 틈도 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양자가 이동하는 순간의 가설에서 소실되는 공간, 그 공간은 아주 찰나에 사라진다고 한다. 사라질 수 있다면 사라져버리고 싶다. 처음부터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남을 수 있게.” 여기에 소개하는 토지츠키 하지메의 “불연속세계” 역시, “치열한 열정이 느껴지는 문학적 감수성”을 갖춘 “BL”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인 “불연속세계”외에도 네 개의 “BL”단편이 더 실려 있다.(다섯 작품 다 문학적으로 훌륭한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불연속세계”가 제일 좋았다. 맨 마지막에 흐르는 군지의 독백, “그의 흥미는 언젠가 식어버리겠지. 그 때까지 이것이 사랑이면 족하다.”라는 마지막 말이 굉장히 애잔하게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