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신부
인간 소녀를 사랑하게 된 악마의 인간 본성 까발리기+으스스한 호러의 절묘한 만남. 끝나지 않을 명작으로 손꼽히는 만화 는 한 마디로 매력적인 악마 데이모스가 보여주는 치사한 음모와 그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거기에 더해서 지...
2013-05-20
원은주
인간 소녀를 사랑하게 된 악마의 인간 본성 까발리기+으스스한 호러의 절묘한 만남. 끝나지 않을 명작으로 손꼽히는 만화 <악마의 신부>는 한 마디로 매력적인 악마 데이모스가 보여주는 치사한 음모와 그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거기에 더해서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흐지부지한 삼각관계와 강력한 상상력이 빛나는 으스스한 내용이 가히 순정 호러 판타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명작이다. 악마의 사랑은 잔인하다 악마 데이모스는 원래 천상의 신. 하지만 아름다운 쌍둥이 여동생 비너스와 금기의 사랑에 빠지고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사 악마가 되고 만다. 게다가 그가 사랑하는 여동생 비너스는 얼굴 한쪽이 썩어 문드러진 채 지옥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에 처한다. (일명 죽음의 늪에 매달린 좀비인 셈이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데이모스는 그녀의 환생을 찾아 수천 년을 헤맨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내는 인간 여고생 미나코! 그녀를 죽여 시체로 썩어가는 비너스의 영혼을 담아 환생시키려는 속셈으로 데이모스는 미나코에게 ‘너는 나의 신부’ 운운하며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때로는 협박, 때로는 감언이설, 때로는 감정에 호소….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데이모스이지만, 그의 노력은 단행본 17권이 될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미나코를 죽여서 지옥으로 끌고 가야 하건만, 데이모스의 마음은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불쌍한 내 쌍둥이 여동생의 환생. 그러니까, 죽어줘야 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나코의 몸에 미나코의 마음이 깃들어야 내가 사랑하는 미나코….’ 라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 갈대 같은 남자 데이모스는 이후 미나코를 죽이지도 못하면서 주변의 애먼 인간들만 괴롭히고 지옥으로 보내가며 온갖 쪼잔한 짓을 반복하더니 권을 거듭할수록 초기의 치사하고 잔인해서 더욱 매력적인 악마의 모습을 벗고 시니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변해간다.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심지어 악마성마저 극복해내게 되는 셈이지만,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데이모스의 악마적 매력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악마의 신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비너스를 시작으로 탄생한 이 판타지 호러는 데이모스가 현실의 인간세계로 내려오면서 일본은 물론이고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 전설, 괴담 등을 에피소드마다 오싹하면서도 절묘하게 녹여내곤 한다. 특히 유혹에 약한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면서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탐욕이 악마의 속삭임에 부딪혔을 때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오는지 각각의 에피소드에 충실하게 담겨있다. 그 과정에서 미나코가 만나는 것은 인간 본성의 추악함, 인간의 나약함이고 데이모스가 만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일지라도 끝내 지키고자 하는 사랑의 숭고함이다. 그러한 사랑의 숭고함은 회를 거듭할수록 데이모스의 마음에서 사랑하는 비너스의 환생이자 그녀를 대신할 미나코에 대한 독립된 사랑으로 자라나 그녀를 지옥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 앞에서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악마의 신부>가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 주제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스토리의 뛰어남이다. 악마가 자신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 인간 신부를 구한다는 단순명료한 모티프로 시작한 이 만화는 인간 신부를 사랑하게 된 악마의 고뇌에서 캐릭터의 진화와 변종을 가져왔고 또 단순히 악의 힘으로 인간을 조종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대신, 이미 내재해 있는 각자의 욕망, 미움, 분노, 탐욕, 질투 등등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을 끄집어내 해당 인물을 파멸로 이끈다. 결국,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야기되는 비극적 결말은 인간의 선택이며 욕망의 결과다. 데이모스는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추악함을 살짝 건드리는 정도로, 악마의 속삭임을 접한 인간은 기어이 내면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몰락한다. 탐미주의 혹은 악마적인 아름다움 1975년 잡지 [프린세스]에서 시작, 총 102화까지 연재된 이 만화는 벌써 수년째 휴재 중이다. 긴 시간 연재되는 동안 처음의 그림체와 후반의 그림체에도 큰 변화가 보이고 특히 작품 최고의 히어로라 할 수 있는 데이모스는 초기 지극히 악마적인 느낌의 그림체에서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전형적 흑발 냉미남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라도 여전히 데이모스는 매력적이며 탐미적 작가의 특성은 여전히 그 안에 녹아있다. 까만 깃털, 까만 머리, 쭉 찢어진 눈매와 뾰족한 귀와 발.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는 여성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아름다운 악마 데이모스는 아시베 유우호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시대를 지나오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대표적 흑발 냉미남의 한 전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데이모스의 매력에 비해 그 존재감이나 매력이 흐릿한 미나코 캐릭터와 짧은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옴니버스 만화이다 보니 가끔 이야기의 결말이 엉성하게 끝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매 회 똑같은 공력을 발휘하기는 누구라도 힘에 부친 일이지만, 잘 뜬 옷의 한구석에 코가 튄 자국을 발견할 때처럼, 이야기가 서둘러 마무리 지어진 느낌이나 여주인공의 무매력과 무활약이 주는 김빠짐은 몰입하던 만화의 흐름을 깨기에 충분하다. 또한, 무려 17권까지 이르는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는 무한 도돌이표의 삼각관계는 -데이모스와 미나코, 비너스- 식상함을 넘어서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치 아무도 끈을 자르지 않으려는 듯한 이 변함없는 패턴은 권을 거듭할수록 이야기의 주축을 데이모스로 옮겨가며 안 그래도 만화의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절대 매력남 데이모스에게 작품이 의지하는 비중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두 여자, 비너스와 미나코 사이에서 흔들리고 갈등하는 이 약한 악마의 마음에 조금씩 인간적인 면모가 스며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잘생긴 흑발냉미남 악마씨가 어디까지 변모해갈지, 그는 과연 미나코를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끝내 결말은 알 수 없을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섬뜩하고 아름다운 호러 판타지가 다시 숨 가쁘게 흘러가지 않는 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