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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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가 연주하는 음악

“열 살 때의 여름...나는 마리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 된 지금, 우리의 마지막 1년이 시작되려 한다....” ‘판타지(fantasy)’란,「그리스어의 판타시아(phantasia, , 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으로 환상을 의미하는데, 문학에...

2013-05-09 유호연
“열 살 때의 여름...나는 마리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 된 지금, 우리의 마지막 1년이 시작되려 한다....” ‘판타지(fantasy)’란,「그리스어의 판타시아(phantasia, <영상>, <상상>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으로 환상을 의미하는데, 문학에서는 몽상적인 이야기 전반에 붙은 명칭으로 동화, 요정 이야기, 메르헨 등으로 불리는 종래의 문학 장르에 심층의식이나 심벌리즘 등 현대적 의의가 부가된 것으로, 마술이나 요정 등 초자연의 요소가 실제로 기능하는 세계를 취급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로 정의될 수 있으며,「특히 1960년대 이후, 사회질서나 권위를 지지하는 인식기반에 대한 반항이 세계적으로 성행함에 따라서 젊은 독자층에게 환영받았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에 E. 네즈비트가 현실 중에 문뜩 얼굴을 내민 마술적인 것(요정이나 마녀 등)을 그린 아동문학을 발표, 이들의 주제를 <일상의 마술(everyday magic)>이라고 하고, 이 장르에 판타지아라는 호칭을 붙였다. 명확한 정의로서는 이것이 최초이며, 그 후의 환상문학 전반의 활성화에 의해서 오늘날에는 ①환상문학일반 중 기괴나 공포를 주제로 하지 않는 작품, ②SF 중 과학적 논리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에 의한 작품, ③무대를 현실이 아닌 전혀 가공의 신화적 세계에서 구하고, 그중에서 과거의 영웅모험담을 전개시킨 작품」(네이버 지식백과)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난 위의 지식백과 상의 정의 중에서 판타지를 “일상의 마술(everyday magic)”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들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옆에 존재할 것만 같은 그런, ‘마술 같은 일들’이 판타지의 뜻이라면 이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태양이 대지에게 축복을 내리듯...달이 암흑세계에 희망의 빛을 밝혀주듯...마리는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주면서 천천히 이 세계를 돌고 있다.” 그렇다면 판타지의 조건은 무엇일까? 독특한 세계관? 기상천외한 캐릭터? 신선한 스토리? 앞서 열거한 세 가지 모두 판타지에 꼭 필요한 요소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엇(the something)’을 보는 이에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내러티브(narrative)적인 노력이 판타지라는 장르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작화나 스토리가 이 장르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skill)이겠지만, 그런 2차적인 조건에 앞서는 가장 1차적인 조건이 ‘주제의식’이라는 생각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여기는 공방마을, ‘길’, 피리토 주민의 절반이 이 공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만든 여러 가지 기계는 다름 섬들과의 물물교환 수단이 된다. ‘길’은 세분화된 기술자 집단이자 발명가 집단이기도 했다.” 흔히들 ‘내러티브’를 ‘서사(敍事)’라고 표현하거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라고들 얘기하는데, 사전적으로 내러티브란,「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을 설명하는 것 또는 기술(writing)이라는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적인 성격을 지칭하는 말로,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하며 문학이나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 텍스트에서는 이야기를 조직하고 전개하기 위해 동원되는 다양한 전략, 관습, 코드, 형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네이버 지식백과) 판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을 독자에게 쉽고 재미있게, 때론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을 ‘내러티브’라고 한다면, 여기에 소개하는 판타지 만화, 후루야 우사마루의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내러티브와 심오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일 것이다. “내 귀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잡아낼 수 있다. 나는 이 능력을 이용해서 지하의 수맥이나 광맥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열 살 때 가지지 공방을 그만둔 건, 혼자서 광맥 찾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사실 내 취향의 판타지는 아니다.(앞서 얘기했지만, 내가 선호하는 판타지는 ‘일상의 마술’ 같은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 힘든 지구를 무대로 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품 속에서 ‘구시대의 문명’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세계를 볼 때 미래의 이야기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지구’에서는 ‘마리’라 불리는 거대한 ‘여신(女神) 비행체’가 일정한 규칙과 리듬을 가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상에 음악을 들려주고 있고, 사람들은 ‘성지(聖地)’라 불리는 ‘타드 섬’을 중심으로 각자의 섬에서 그 섬의 자연환경에 맞는 각자의 물건을 만들어내 그것을 물물교환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가령 피리토 섬에서는 기계나 철강, 쟈날 섬은 의류, 루사 섬은 농산물 등)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피리토 섬은 풍부한 철강 자원을 바탕으로 수많은 기술자(또는 발명가)들이 모여 사는 ‘기계의 섬’으로 웬만한 생활은 거의 다 ‘기계를 조립하고 만들어내는 일’이 대부분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카이는 ‘전설의 상징을 지닌 자’로, ‘왼손으로는 문을 열고, 오른손으로는 시간을 움직일 수 있는 소년’이다. 이 작품은 다른 판타지 작품에 비해 주인공의 비중이 매우 큰데, 특히 남자 주인공인 카이와 여자 주인공인 피피가 스토리의 90%이상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전에 의하면 그 옛날 이 세상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죽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땅과 물건을 서로 빼앗으면서, 그 역사는 몇 만 년씩이나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세상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신께서는...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시어 인간과 대지를 바닷속에 가라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인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마리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낸 것입니다. 그건 분명 마리가 연주하는 음악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작품은 ‘인류멸망’이나 ‘대홍수’ 같은 묵시록(?示錄)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깔고, 작가의 ‘이상주의(理想主義)적인 세계관’이 ‘신천지’에서 펼쳐지는, SF적 색체가 매우 강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이 글의 맨 앞에서 정의한 판타지의 정의 중 두 번째, ‘②SF 중 과학적 논리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에 의한 작품’에 해당될 것이다.) 단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스토리의 완결성이 굉장히 높고 읽기에도 편하다.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의식은 ‘공존(共存)’에 관한 것이며, ‘기술의 진보와 환경간의 관계’, ‘인간의 욕망이 가진 양면성’이라는 두 가지의 철학적 문제가 스토리를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축(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놀라운 반전도 숨겨져 있고, 작가의 뛰어난 작화력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된 세세한 ‘설정요소’들이 판타지의 설득력을 높인다.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