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해파리 공주

“엄마, 츠키미는 아름다운 공주님은 되지 못했지만, 도쿄에서 매일 즐겁게 살고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이 공동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3개월, 입주자 여러분들 모두 상냥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고맙게도 입주자 전원이 나와 같은...

2012-09-03 유호연
“엄마, 츠키미는 아름다운 공주님은 되지 못했지만, 도쿄에서 매일 즐겁게 살고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이 공동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3개월, 입주자 여러분들 모두 상냥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고맙게도 입주자 전원이 나와 같은 동인녀예요!! 각자 전문장르는 달라요. 다들 한 가닥 하는 오타쿠녀들이죠. 물론 모두 독신이에요. 남친도 없어요. 우리는 그런 우리 자신을 이렇게 부른답니다. ‘아마(尼)~즈’라고.” “해바라기 켄이치 전설”, “패션걸 유카”, “엄마는 텐파리스트”등의 작품이 한국에도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팬을 확보한 일본 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해파리 공주”는 현재(2012.07) 한국어판으로 8권까지 나와 있으며 ‘오타쿠’라는 특이한 소재와 ‘도시 재개발’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엮어서 아주 독특한 재미를 끌어내는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사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생” 도쿄에서도 오래된 거리에 해당되는 JR아마미즈역 주변거리는 재개발 프로젝트 ‘액티브시티 아마미즈’가 시작된 이후로 개발 찬성파와 반대파로 주민들이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고, 이권을 노린 부동산 개발회사와 그에 관련된 업자들이 꼬여들기 시작했으며, 정치가들은 주민들의 추이가 어느 쪽으로 쏠릴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개발사업의 진행을 가로막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독특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철거대상 중 하나인 ‘아마미즈칸’에 모여 사는 ‘동인녀’들이 개발을 반대하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1955년에 지어진 복고풍 건물 ‘아마미즈칸’은 자신들 스스로를 ‘아마(尼)즈’(비구니들)라고 부르는 삼국지 오타쿠, 미중년 오타쿠, 철도 오타쿠, 기모노 오타쿠, 해파리 오타쿠 등 ‘사회적응력 제로’의 여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며 그래서 일명 ‘아마데라(尼寺)’라고도 불린다.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자신들의 ‘서식처’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무언가 반대의 시도를 해보려 하지만 평상시 꾀죄죄한 자신들의 모습이나 무기력한 태도, 빈약한 행동력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무렵 우연한 계기로 ‘아마미즈칸’과 인연을 맺게 되는 엄청난 능력의 ‘여장남자’가 나타나면서부터 이 심각한 이야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재밌고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엄마, 세상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있군요. 키도 크고, 피부도 뽀얗고, 눈도 크고, 마치 바비 인형 같아. 그런 아름다움을 무기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와는 정반대의 여자아이, 공주님 같은 여자 아이.” 작품의 첫 소개를 ‘도시재개발사업과 그에 대립하는 오타쿠녀’라고 한 탓에 아직 이 작품을 안 읽어보신 분들은 자칫 심각하고 갑갑한 이야기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어 미리 밝힌다. “해파리 공주”는 ‘전혀’ 그런, 심각한 ‘본격파 드라마’가 아니다. 유쾌하고 발랄하며 때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웃긴, 굳이 분류하자면 코미디장르에 속한 ‘독특한’ 순정만화다. “해파리 공주”는 “노다메 칸타빌레”나 “호타루의 빛”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기 순정 만화들이 연재되는 고단샤의 만화잡지 “Kiss”에 연재되는 작품으로 그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 있다.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쿠라노스케가 ‘드레스를 사랑하는 아름답고 당당한 여장 남자’로 등장, 아마미즈칸의 오타쿠녀들에게서 숨겨진 매력과 재능을 발견해 마법 같은 변신을 이뤄내고, ‘패션계’라는 화려한 세계로 그들을 이끌어간다는 이 작품의 컨셉은 히가시무라 아키코 특유의 ‘황당하면서도 절묘한 융합’을 통해 탄탄한 스토리 구조를 갖춘 웰메이드 만화로 탄생되었다. 특히 총리대신의 조카이자 엄청난 파워를 지닌 정치인의 차남이면서도 자신의 여장 취미를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남자 주인공 쿠라노스케의 위풍당당 캐릭터는, 해파리 오타쿠로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리는 여자 주인공 츠키미의 캐릭터와 신선하게 대립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인다. “이제 알겠어? 사람은 입는 옷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고.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 옷 입는 취향을 당장 바꾸라는 건 아니야. 멋쟁이가 되라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런 차림으로는 적과 싸울 수 없다는 것만 알아 줘. 서글프지만 세상엔,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녀석들이 아주 많아. 물론 적도 그런 녀석들이니까.... 갑옷을 입으란 말이야!!” “해파리 공주”는 해파리 오타쿠이던 츠키미가 쿠라노스케의 도움을 받아 자신도 몰랐던 디자인에 관한 재능을 발견,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이며 ‘화장’을 통해 후줄근한 외모의 동인녀에서 청초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신할 수 있다는 일종의 ‘변신공주’ 컨셉이 작품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다. (이 ‘변신공주’ 컨셉은 여자 주인공인 츠키미 뿐만 아니라 아마미즈칸의 동인녀 모두에게 해당되는데 예를 들자면 삼국지 오타쿠인 마야야가 중성적이고 세련된 ‘아시안 쿨 뷰티’ 느낌의 훤칠한 모델로 변신한다. 이러한 컨셉은 독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첫 번째로,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을 바로 곁에 두고 여자 주인공인 츠키미가 다른 남자를 짝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츠키미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쿠라노스케의 배다른 형이자 정치가인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는 스마트한 인상의 인텔리 ‘슈’다. 슈는 이복형제인 쿠라노스케와는 너무나 다른 인물로 단정하고 침착하며 경거망동 하지 않는 사려 깊은 남자다. 좀 안타까운 것은 쿠라노스케의 말처럼 ‘꽉 막힌 범생이 과’에 ‘3대7 가르마 안경잡이’라는 외모에서 드러나듯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여성’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어서 아직 ‘동정’이라는 점이다. 매력적인 자신이 아니라 ‘소심 동정남’인 형을 좋아하는 츠키미를 보면서 쿠라노스케는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멘붕상태’에 빠지고 생애 최초로 질투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야기에 잔재미가 쌓여가기 시작한다. 어쨌든 너무도 다른 양극단의 스타일을 소유한 두 남자(그것도 이복형제)사이에서 로맨스를 만들어가는 여자 주인공의 삼각관계 라인은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첫 번째 요소가 된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두 번째로, 개성 넘치는 독특한 조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최고의 조연은 물론 아마미즈칸의 오타쿠들(삼국지 오타쿠 마야야, 철도 오타쿠 밤바, 미중년 오타쿠 지지, 기모노 오타쿠 치에코 등)이고, 코이부치가의 운전기사이자 벤츠 오타쿠인 하나모리, 쿠라노스케와 슈의 아버지인 코이부치 의원, 삼촌인 네기시 총리대신, 재개발사업 담당자 이나리 등 작품을 풍성하게 해주는 빛나는 조연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작품의 재미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강력 추천할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