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나 입체 주차장처럼 강철에 둘러싸인 장소에서, 두리번거리거나 물끄러미 철기둥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용접공이다!!” 가끔씩 일본만화의 장르적인 다양성에 경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소재의 기발함이라든지, 특화된 상상력이라든지, 섬세함을 넘어서서 세밀함의 영역에까지 도달하는 전문적인 표현방식이라든지, 한국만화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다양한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말랑말랑 철공소” 역시 전문적인 직업을 소재로 다룬 에세이 스타일의 만화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 중 하나인데, 철공소를 무대로 한 ‘용접공’들의 리얼한 일상을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부분 부분 이상하게 햇빛에 탄 자국이 있는 사람, 그건 거의 용접 불꽃에 그을린, 용접공이라고 봐도 된다!! 겨울인데 얼굴 피부가 그을려 부슬부슬 벗겨지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용접공이라 자신할 수 있다!!” 이 만화를 읽기 전에 일단 “용접”에 대하여 정의해보자.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용접(鎔(熔)接, welding)”이란, 같은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금속재료에 열과 압력을 가하여 고체 사이에 직접 결합이 되도록 접합시키는 방법으로 융접법과 압접법이 있다. 그럼 용접공이란? 말 그대로 용접기술을 가진 전문직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을 화이트 컬러와 블루 컬러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용접공이란 직업은 확실히 블루 컬러의 영역에 속하는 직업군이고, 무엇보다도 ‘불’과 ‘쇠(철)’를 다루는 직업이니까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육체적인 고통과 사고의 위험이 뒤따르는 고난이도의 전문직일 것이다. “말랑말랑 철공소”는 바로 이런 “용접공”의 ‘매일 매일이 불꽃 튀는 세계’를 리얼하게 묘사해낸 만화로 생생한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읽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만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를 지닌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철이 녹는 온도는 대략 1550℃, 용접불꽃 중심부는 태양의 표면온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접을 하면 녹은 철이 불꽃처럼 사방으로 튑니다. 이걸 스퍼터라고 하죠. 녹은 쇳물 스퍼터는 뜨거운 상태로 사방팔방 튄다. 뜨겁고 아프고 매일이 화상....” 이 만화를 읽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리얼’한 묘사가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누구나 한번쯤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용접공들의 일상과 철공소의 풍경은 그 곳에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안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이런 ‘전문직’의 영역을 ‘리얼’한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작가인 노무라 무네히로가 실제 ‘용접공’ 출신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자세히 살펴보면 용접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원의 놀이기구, 학교 등의 문, 다리, 플랫폼, 탈 것, 중장비 등은 용접의 보고, 수도고의 발판 용접은 정말 대단했다. 옛날 용접기를 썼을 텐데 아주 깔끔한 것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모 로컬 유원지의 제트코스터 발판 용접은 정말 심각했다. 별일이야 없겠지만 난 그런 스릴은 필요 없어요...” 저자 노무라 무네히로(野村 宗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가 데뷔를 준비하다 중단하고 히로시마의 철공소에 입사해 7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만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2006년 <코치신문(高知新聞)>이 주최한 제18회 쿠로시오만화대상 (「第18回?潮マンガ大賞」)에 <케이블 빙긋(ケ?ブルニヤリ)>이라는 만화로 준대상을 차지하고, 이듬해인 2007년 코단샤 이브닝 신인만화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만화계에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고단샤 편집자의 권유로 7년 동안 일했던 철공소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라는 권유를 받아 2008년 <이브닝> 1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말랑말랑 철공소(とろける?工所)>다. (박인하) [출처] 철공소의 일상에서 발견한 우스개들|작성자 ComiXParK “이 회사의 40대 트리오는 모두 탈장에...고참은 손가락이 없고, 코지마 씨는 몇 년 전 철사 브러시를 단 고속회전 기계에 왼쪽 눈이 실명....철사가 떨어져 나가면서 검은 동자에 박혔던 것, 별로 아프지도 않네 하고 핏, 뽑았는데 나와선 안 될 것 같은 액체가 ‘주륵’하고!...결국 그렇게 실명, 그리고 ‘야마의 유령’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고참들은 뭔가 사연이 있는 표정이다. 뭐, 대기업과 달리 ‘안전제이’에 뭐든 빨리 빨리하니까 사람이 다칠 수밖에...게다가 산재처리도 어려우니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고,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재 신청이 많으면, 공무원이 조사 나오거든, 자중하라고, 알겠지? 라고, 내 생각인데, 하다못해 건강검진만이라도 받게 해주면 좋겠어요.” “말랑말랑 철공소”는 에피소드 하나가 4p정도로 이루어진 짧은 에세이 형태의 만화다. 그림체도 극화와 카툰의 중간 느낌이 강하게 나고, 대사와 지문이 적절하게 섞여진 형태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재수 없는 부잣집 딸’같은 느낌을 팍팍 풍기는 담당편집자의 어이없는 멘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용접공의 ‘하드(hard)한’ 일상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머리 빈 된장녀’ 같은 멘트들이 읽는 이에게 실소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이러니컬하다. 이 만화의 장점은, 일단 읽기가 무척 편하다는 것이다. 짧은 분량 안에 담겨진 여러 가지 주제의 에피소드는 ‘아주 명확하고 진정성 있게’, 읽는 이를 자극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주)노로 철공”과 그 곳에서 일하는 용접공들의 다양한 일상이 때론 애잔하게, 때론 재미있게, 때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도 낡은 작업복이지만, 내가 보기엔 멋진 걸” “말랑말랑 철공소”는 일본 현지에서는 현재(2012.07) 8권까지 출간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런 구성방식으로 8권까지 출간되었다니 좀 놀랍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시리얼(학산문화사)을 통해 한국어판 1권이 발행되어있다. 12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 8000원대의 가격은 조금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진정성’이 무척이나 좋게 느껴져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이렇듯 나 아닌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땀을 흘려준 덕분에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땀’을 흘리는 사람들, 참으로 위대하다. 노동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