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의 각 (修羅의 刻)
“무츠 원명류가...그 역사 속에서 맨손으로 쓰러트리지 못했던 남자는 미야모토 무사시...단 한 명뿐, 무승부다....승부는 나지 않았어, 그렇게 전해다오.” ‘이종격투만화의 효시’라 불리는 카와하라 마사토시의 “수라의 문(修羅の門)”에는 “수라의 각(修羅の刻)”...
2012-08-22
석재정
“무츠 원명류가...그 역사 속에서 맨손으로 쓰러트리지 못했던 남자는 미야모토 무사시...단 한 명뿐, 무승부다....승부는 나지 않았어, 그렇게 전해다오.” ‘이종격투만화의 효시’라 불리는 카와하라 마사토시의 “수라의 문(修羅の門)”에는 “수라의 각(修羅の刻)”이라는 외전(外傳)이 있다. 본편의 주인공인 무츠 츠쿠모가 사용하는 고무술(古武術) “무츠 원명류”의 천년에 걸친 불패의 역사를 시대별 에피소드 형태로 다뤄주는 작품인데,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무츠 원명류”라는 판타지와 드라마틱하게 엮어주는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본편보다 외전이 훨씬 재미있었던 ‘진귀한 경험’을 선사해준 작품이다. 외전에 해당하는 “수라의 각”을 소개하기에 앞서 본편인 “수라의 문”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월간 소년매거진에 연재된 작품으로 주인공인 무츠 츠쿠모라는 ‘무츠 원명류’의 계승자가 ‘최강’임을 증명하기위해 격투종목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돌며 강자들과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의 만화다. 4부가 완결되던 시점에서 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연재가 중단되었고, 단행본 31권을 끝으로 무언가 개운치 않은 모양새로 완결되었다. 누계부수로 30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이종격투를 다룬 최초의 만화’라는 의미가 있다는 이 작품은 13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2010년에 “수라의 문, 제 2문”이라는 형태로 원래 기획되어 있었던 5, 6부의 연재가 개재되었다고 한다.(“제 2문”은 한국어판으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수라의 각”은 천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는 살인기(殺人技) “무츠 원명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대로 ‘일자전승(一者傳承)’되는 환상의 무술이다 보니 시대별로 무츠의 이름을 이은 계승자가 역사의 뒤편에서 활약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주인공은 누구라고 정해져있지 않다. (사실 제목부터도 “무츠 원명류 외전, 수라의 각”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해진 주인공이 없다는 사실이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엄청나게 높이는 의외의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 15권까지 출간된 “수라의 각”은 시대별로 주인공과 에피소드가 나누어져있다. 1권인 ‘무츠 야쿠모의 장’은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10년 후를 배경으로 삼아 불패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와 야쿠모가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2, 3권인 ‘무츠 이즈미의 장’은 풍운의 막부말기를 배경으로 삼아 사카모토 료마와 대결을 펼치고 친구가 되는 이즈미의 이야기(2권)와 이즈미와 신선조(그 중에서도 오키다 소우지, 히지카타 토시조)의 비장미 넘치는 대결을 그린 이야기(3권)로 이루어져있다. 4권인 ‘무츠 아즈마의 장’은 우연한 계기로 바다를 건너 신대륙으로 가게 된 아즈마가 인디언의 편에 서서 백인악당들과 기병대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시대 배경이 서부개척시대이다 보니 유명한 건맨 ‘와이어트 어프’와 아즈마의 대결이 펼쳐지기도 한다. 본편의 3부와 연결되는 에피소드이며 젊은 날의 ‘닐치이’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5, 6권인 ‘무츠 다카토의 장’은 도쿠카와 막부의 3대 장군 도쿠카와 이에미츠가 주최한 ‘칸에이 어전 시합’을 무대로 무츠 야쿠모의 아들인 무츠 다카토가 외눈 검객 ‘야규 쥬베’와 대결하는 이야기로 1권과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라 볼 수 있다. 7, 8, 9, 10권인 ‘무츠 키이치의 장’은 시대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에피소드로 12세기 후반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무츠 원명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비운의 영웅 요시츠네와 무츠 원명류의 계승자 키이치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갔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요시츠네의 수호신으로 유명한 벤케이를 비롯한 역사 속의 다양한 실존인물들과 엮여가는 키이치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11, 12, 13권은 ‘전국시대의 마왕’으로 불렸던 오다 노부나가와 무츠 원명류의 인연에 관한 에피소드다. 11권은 ‘무츠 타츠미의 장’, 12, 13권은 ‘토라히코와 코마히코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의 파란만장한 삶에 2대에 걸쳐 엮어지는 무츠 원명류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토라히코와 코마히코의 장’은 무츠 타츠미의 쌍둥이 아들들이 풍운의 역사 속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내용으로 본편의 2부에서 등장한 또 하나의 원명류, “후와 원명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보여준다. 코마히코에게 져서 무츠의 이름을 계승하지 못하고 암살을 생업으로 삼는 후와 원명류의 시조가 되는 토라히코의 이야기가 담긴 ‘또 다른 13권’(13권 裏편, 일본에서는 13권이 두 종류가 나왔다고 한다)은 한국어판으로 발행되지 않았다. (189페이지까지는 한국어판 13권과 똑같으나 190페이지부터 토라히코의 뒷이야기가 50페이지정도 더 추가된 일본에서만 발행된 판본이라고 하는데 한국어판이 없어서 무척이나 아쉽다) 14권은 ‘무츠 텐페이의 장’으로 메이지시대가 배경이며 일본 유도의 총본산인 고도칸(講道館)의 4천왕 중 하나이자 소설 “스가타 산시로”의 실제모델인 ‘사이고 시로’와 텐페이의 대결을 그렸다. (무츠 텐페이는 2, 3권의 주인공 무츠 이즈미의 아들로 등장한다) 본편의 4부와 엮어지는 에피소드라 하는데, 전 세계를 떠돌며 무술대결을 펼치다 최후엔 브라질로 건너가 그레이시 유술(주짓수)의 시조가 된 마에다 미츠요(콘데 코마)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15권은 ‘무츠 사콘의 장’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였다. 1790년부터 1810년까지 20년 동안 “285전 254승 10패 2분 14예 5무승부”로 승률 9할6푼2리라는 경이로운 전적을 기록하고도 요코즈나에 오르지 못한 전설의 스모선수 라이덴 타메에몬과 2대에 걸쳐 대결을 펼치는 무츠 일가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 형태’의 마무리가 너무 좋았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벤케이, 미야모토 무사시, 야규 쥬베, 사카모토 료마, 오키다 소우지와 히지카타 토시죠 등등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전설의 강자’들과 ‘무츠 원명류의 계승자’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는 이 흥미진진한 ‘역사무협판타지’는 26부작의 애니메이션(단행본으로 1, 2, 3, 5, 6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한다)으로도 제작되었다. 현재(2012.07) “수라의 각”은 2006년 3월에 15권(한국어판)이 나온 후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고 있지만 일본에서 2010년부터 본편인 “수라의 문”이 다시 연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