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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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사 골목 전말기

“이치카와 후미요가 세를 놓고 있는 연립주택에는 다소 수상한 사정이 있다. 주민은 음양사에 엑소시스트 등 특이한 이들뿐,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을, ‘기도사 골목’이라 불렀다.” 음양사, 엑소시스트, 퇴마사 등등 요괴나 유령이 등장하는 판타지 만화에서 빼먹지 않...

2012-08-10 김현우
“이치카와 후미요가 세를 놓고 있는 연립주택에는 다소 수상한 사정이 있다. 주민은 음양사에 엑소시스트 등 특이한 이들뿐,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을, ‘기도사 골목’이라 불렀다.” 음양사, 엑소시스트, 퇴마사 등등 요괴나 유령이 등장하는 판타지 만화에서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직업, 그런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만화 “기도사 골목 전말기”는 이런 콘셉트로 제작된 만화다. “네 덕분에, 실체화해서 돌아왔어.” “기도사 골목 전말기”는 코미디 만화다. 요괴나 유령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는다. 성불하지 못한 유령들이건 주술을 써서 만든 영체건 간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영적인 존재들은 등장인물들의 ‘애완동물’ 수준의 존재라고 보면 된다. ‘애완동물’이라고 굳이 정의내리는 이유는, 어떤 일을 벌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설령 일을 벌이더라도 나쁜 뜻이나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벌이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은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데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사람들 역시 그들을 그런 꺼림칙한 존재나 퇴치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도사 골목 전말기”라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고 모든 에피소드는 등장인물들과 영적인 존재들의 이런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저 남자는 제령을 해주길 원하고 있어, 그렇다면 해주는 게 기도사의 길, 저 남자는 자신의 불운을 빙의하지도 않은 영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고, 거꾸로 뭔가를 붙여주면, 저 남자의 인생이 바뀔 것 같지 않나?” “기도사 골목 전말기”의 주인공을 굳이 꼽자면 골목의 천방지축 기도사 주민들을 강력한 힘으로 통제하는 ‘관리인’ 이치카와와 ‘영감(靈感)’이 전혀 없어서 강력한 영이 들러붙어도 본인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이치카와의 조카 쇼타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매회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엮어가지만, 아무래도 이들 둘을 중심에 놓고 풀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이 동네에 오래 살면 알게 될 일이지만, 볼일이 없는 한 기도사 골목에는 접근하지 마라, 이게 암묵적인 룰이야.” “기도사 골목 전말기”는 가볍고 유쾌하게 시간을 때우고 싶다면 한번쯤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유령과 인간들이 복작복작 어울려 살아가는 특이한 골목길을 무대로 한, 전혀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아 매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고 따뜻한 코미디 만화다. 작가인 미야모토 후쿠스케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단편집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