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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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토 룰

“기본적으로 인생이란 건 시간 때우기잖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뭐...목표? 희망? 그런 건 있겠지...아무 것도 없으면...그 왜, 마음이 썩어가니까, 뭔가 이렇게....화악~하고 울렁울렁 두근거릴 법한 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

2012-07-27 김진수
“기본적으로 인생이란 건 시간 때우기잖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뭐...목표? 희망? 그런 건 있겠지...아무 것도 없으면...그 왜, 마음이 썩어가니까, 뭔가 이렇게....화악~하고 울렁울렁 두근거릴 법한 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인생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고통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으며, 누군가는 보람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그저 막막하게 주어진 시간 일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이 준 최고의 혜택이라고도 했다. 이 지구 위에 50억 명의 인간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것도 50억 개가 존재할 것이고, 50억 개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인류가 고민하는 가장 큰 두 가지의 테마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난 어떻게(왜) 태어났는가?” 라는 존재에 관한 고민과 “난 어떻게(왜)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다. 그 어떤 질문도 이 두 가지의 범주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나 철학, 과학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것들도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모두 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고, 이 문제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성찰과 해답을 구해서 움직인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 인류가 걸어온 ‘역사’다. 하지만 자신이 발견한 해답을 아무리 거창하게 포장해보아도, 아무리 그것이 진리라고 우겨도 어차피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저 자기가 고민 끝에 발견한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곧 ‘삶’이며 거기에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절대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자신만의 ‘지도(地圖)’를 완성해 가는 것”이라고, 거기에 정해진 답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그 불확실성 때문에 인생이란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넌 왕이 될 그릇을 가진 남자야!! 그러나 가는 길은 정도(正道)가 아니라 마도(魔道)! 수라도를 걸을 숙명이니라~!!”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도모토 룰(DOMOTO RULE)”은, “엘리트 건달”로 유명한 작가 아베 슈지의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작품의 주인공인 “도모토의 룰”에 관한 재미있고 철학적인 이야기다. ‘PC방 난민’이라 불리는, 일정한 주거도 직장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21세의 청년 도모토 칸지가 “난 왕이 될 거야”라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고 어찌 보면 기상천외한 자신의 결심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이야기가 이 만화의 스토리이자 뼈대라 하겠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도모토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왕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한 남자’가 이 작품의 테마라고 하지만, 이 만화는 결코 판타지나 SF 장르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상은 우리가 현재 발을 딛고 살아가는 21세기의 ‘리얼한 현실’이며, 작가의 눈으로 묘사된 이 세상의 ‘룰’은 차갑고, 무섭고, 가혹하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며 그 누구도 나 아닌 남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틈만 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의 뒤통수를 치고, 기회가 생기면 남을 죽여서라도 그 기회를 잡으려한다. 주인공인 도모토 칸지는 이런 냉혹한 세상의 룰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룰(도모토 룰)로 세상에 접근한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섬뜩하다 못해 신선하게 느껴지는 도모토만의 독특한 룰들이 등장한다. “자, 자, 진정해. 그리고 이건 정말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야. 사람은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 결정을 내리는 스트레스에 말이야! 취직, 결혼, 이혼, 그 외에도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지? 그걸 대신 결정해 주는 거야, 그리고 그 결정이란 게 때로는 실패로 끝나잖아? 그 실패의 책임은 누가 지면 좋을까? 자기가 지는 건 절대로 싫은데. 그래, 그 책임은 악령이 지게 하면 되는 거야! 자, 자, 깊게 생각하지 마...인생은 시간 때우기라고 했지? 이건 게임이야...그리고 룰(RULE)은 우리 두 사람과 선년님이 한 달 안에 월 100만엔 이상 버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이기는 거지!!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장황한 인생 게임이 시작됐다.” 이 작품을 읽을 때 가장 핵심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주인공인 도모토의 인생관이다. 도모토 칸지에게 인생은 어차피 “시간 때우기”일 뿐이며, 그 시간을 가장 재미있게 때우는 방법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때우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게임의 틀을 정하고, 클리어해야 할 그 게임의 목표를 정하고, 그 게임의 규칙을 정한 후 실행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이 게임은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게임이기 때문에 ‘세이브’도 ‘리셋’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어판으로 3권까지 나와 있는 “도모토 룰”에는 이처럼 도모토만의 인생게임이 여러 가지 등장하고 그것이 곧 이 만화의 에피소드가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 점성술사를 데리고 한 달 안에 월 100만엔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 두 번째 에피소드는 도시계획이 잡힌 지방의 도시를 무대로 야쿠자를 움직여 반 년만에 도시를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세 번째 에피소드는 재개발이 필요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한 달 안에 그 지역의 불량배들을 부하로 만드는 것 등이다. 중요한 것은 도모토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그의 머리가 아주 똑똑하고 아이디어가 참신하다고 해서, 게임에 임하는 자세가 ‘목숨을 걸 정도’로 남다르다 해서, 그 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도모토는 자신이 생각한 게임의 룰에 맞춰 충실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곳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온다. 친구의 배신, 예상치 못한 도움, 때론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발생해 도모토의 룰을 망가뜨린다. 그러나 도모토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졌다면 다른 게임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도모토에게 게임의 판돈은 ‘자신의 목숨’이기 때문에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발견한, 흥미진진한 재미와 철학적인 깊이가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다음 권이 얼른 나와 줬으면 좋겠다.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