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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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부탁이야, 아무도 숨을 쉬지 말아 줘.” 소재도, 형식도, 내용도 모두 낯설어서 일일이 첨부된 주석을 읽으면서 봐야할 정도로 어렵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흡입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한 번 잡으면 계속 보게 되는, 독특한 느낌의 순정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

2012-07-23 석재정
“부탁이야, 아무도 숨을 쉬지 말아 줘.” 소재도, 형식도, 내용도 모두 낯설어서 일일이 첨부된 주석을 읽으면서 봐야할 정도로 어렵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흡입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한 번 잡으면 계속 보게 되는, 독특한 느낌의 순정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에츠구 유키의 “치하야후루”다. “카루타는 다른 나라에선 많이 안 하제...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말이다. 일본에서 최고가 되면, 세계 최고란 뜻 아이겄나? 카루타에서 명인이 되는 기, 내 꿈이다.” 현재 한국어판으로 15권까지 출간되어 있는 “치하야후루”는 “카루타”라는 일본의 카드게임을 소재로 한 일종의 ‘청춘만화’다. 1권의 첫 시작부터 등장하는 “카루타”라는 이 독특한 게임은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하기도 어렵고 규칙조차 이해하기 힘든 카드게임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윷놀이처럼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아주 대중적으로 보급된 카드게임인 것 같은데, 일종의 ‘짝 맞추기’ 카드 게임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이 게임의 규칙을 모두 다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할 줄도 안다면, 이 작품을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겠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이 만화는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카루타”라는 것을 모른다고 걱정하거나 “카루타”에 대한 기초 상식을 미리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오구라 백인일수는 가마쿠라 시대의 가인 후지와라노 테이카가 텐치 천황에서 쥬토쿠인에 이르는 100인의 가인이 지은 뛰어난 와카(和歌)를 연대순으로 한 수씩 엄선한 거예요.” 이 작품의 제목인 “치하야후루”는 “카루타”경기에서 쓰이는 100개의 카드 중 하나이자, 유명한 ‘와카’의 한 구절이며, 주인공인 아야세 치하야와 연관이 깊은 중요한 카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매우 독특하다’고 느낀 것은, “카루타”라는 게임에 전혀 지식이나 정보가 없었던 상태로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청춘남녀의 삼각관계에 포인트를 맞춘 순정만화라고 생각했던 스토리가 2권이 끝나갈 무렵부터 “경기 카루타”에 모든 정열과 노력을 바치는 “미즈사와 고교 카루타부”의 이야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H2”같은 야구를 소재로 한 러브스토리인 줄 알았던 것이 “슬램덩크”같은 본격 스포츠 만화로 진행방식이 점차 바뀌어나가면서 기존의 순정만화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생소하고 기묘한 감각에 빠지게 되었다. “아라타하고 다시, 카루타를 하고 싶어.” 이 작품은 고단샤의 잡지 “BEㆍLOVE”에서 연재되고 있으며, 판매누계부수가 500만부가 넘은 인기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1기 25부작이 방영되었다. 매우 일본적인 소재라서 낯설기도 하지만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수작(秀作)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경기 카루타”에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았는데 실제 경기영상을 보니 매우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격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독특한 느낌의 ‘스포츠’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경기장면들이 결코 과장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