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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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튀르

“살짝 무리해가며 살고 있는 아름다운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전문점이 있다. 꽃미남 형제 쇼콜라티에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기까지 약 2개월, 하지만 내 연애상대는 그들이 아니다. 스즈키 후유, 28세.” ‘슬플 때 단 것을 먹으면 행복해져’라는 대사를 박희정 ...

2012-07-16 석재정
“살짝 무리해가며 살고 있는 아름다운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전문점이 있다. 꽃미남 형제 쇼콜라티에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기까지 약 2개월, 하지만 내 연애상대는 그들이 아니다. 스즈키 후유, 28세.” ‘슬플 때 단 것을 먹으면 행복해져’라는 대사를 박희정 작가의 만화에서 보았는지 아니면 아주 청초한 얼굴이 인상 깊었던 여배우가 나오는 어느 청춘영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달콤한 것”이 주는 작은 행복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견도 없다. 과자든 초콜릿이든 입안에 넣었을 때 혀에서 느껴지는 그 달콤한 맛은 사람을 순간적으로 미소 짓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인체(人體)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이자 뇌에서 분비되는 어떤 호르몬의 작용이라던 어느 신문기사가 생각나는데, 이런 현상을 단순히 과학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한다면 등산을 갈 땐 사탕이나 초콜릿을 챙겨가는 일상적인 상식부터, 바둑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대국 중에 단 과자나 초콜릿 같은 것을 무지막지하게 먹어대던 동영상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들은 에너지로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당분’을 제대로 섭취해야 신체가 활발히 기능한다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일 뿐, 그 속에서는 낭만이나 행복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무언가 좋은 기분을 느꼈을 때 가능한 것 아닌가. 이 작품에서 ‘마법’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달콤한 초콜릿’이 주는 행복한 순간은, 과학이 설명하는 기능적인 부분이나 물질적인 부분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사람의 정신적인 부분에 원래부터 내제되어 있는 ‘어떤 본질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것의 정체가 ‘무슨무슨 호르몬’이라는 멋대가리 없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말이다. “아마타츠 스스무(28)는 대학 동아리가 같아서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 대형 건설회사에 취직해서, 올림픽 때마다 무슨 건물을 짓느라 2년마다 다른 나라로 옮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쭈욱 나에게는, 비현실적인 존재다. 1주일에 한 번의 초콜릿처럼....1년에 한 번 만나는 남자애...이제, ‘남자애’는 아니구나.”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만화 “쿠베르튀르(Couverture)”는 “치하야후루”라는 작품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일본작가 스에츠구 유키의 2009년도 작품으로 꽃미남 형제가 경영하는 수제초콜릿 가게를 무대로 한 ‘사랑에 관한 달콤한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제목인 “쿠베르튀르(Couverture)”란 프랑스어로 정확하게는 “쿠베르튀르 쇼콜라(Couverture Chocolate)”를 뜻하는 것이다. 영어식으로 발음할 때는 ‘커버츄어 초콜릿’으로 불리는 이것은 카카오 버터 함유량이 30%이상인 고급 초콜릿을 뜻하며,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는데 보통 2~2.5kg의 대형 판 초콜릿 형태로 판매된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경영하는 수제 초콜릿 카페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그건, 그날 하루만 통하는 마법의 초콜릿이니까요” 이 작품은 현재(2012.06.13) 한국어판으로는 1권만이 출시되어 있는데, 총 네 개의 챕터(겨울의 맛, 봄의 맛, 여름의 맛, 가을의 맛)로 이루어진 단편집 같은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치로(쇼콜라티에)와 지로(접객 및 영업)라는 꽃미남 형제가 경영하는 고급 수제 초콜릿 전문점 “쿠베르튀르”를 무대로 총 4개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없고 모두 다른 느낌의 이야기이지만 이 카페의 초콜릿을 통해서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은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통일성이 느껴져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서 밸런타인 초콜릿을 사면 100%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소문난 초콜릿 전문점이 근처에 있다. 꽃미남 형제 쇼콜라티에도 명물인데, 인기가 엄청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대는 그들이 아니다. 사토미 코하루, 15세” 첫 번째 이야기인 “겨울의 맛”은 오랫동안 짝사랑해오던 남자를 이제 그만 포기하자고 생각한 여자가 그 남자의 ‘놀라운 진심’을 알게 되기까지의 아슬아슬한 과정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이 에피소드의 여자주인공인 ‘스즈키 후유’의 이름이 일본어의 ‘겨울(후유)’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에피소드의 제목이 “겨울의 맛”으로 지어진 것 같다. 실제로 두 번째 에피소드 “봄의 맛”의 주인공은 ‘사토미 코하루’로, 일본어로 봄은 ‘하루’라고 읽는다. 이런 식으로 “여름의 맛”의 주인공은 ‘모리타 나츠미’(일본어로 여름은 ‘나츠’), “가을의 맛”의 주인공은 ‘코가 마사아키’(일본어로 가을은 ‘아키’)다. “실패하면, 다시 원하는 온도까지 녹이면 돼. 초콜릿은 섬세하지만 강해.” 두 번째 이야기인 “봄의 맛” 역시 짝사랑에 빠진 여중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남학생이 자신의 친구를 좋아하는 걸 알고 괴로워하는 부분이라던가,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부터는 헤어져야 하는 남학생에게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수줍은 고백을 하는 부분들이 무척이나 풋풋하고 애잔한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다. “한 개에 250엔이나 내고, 나 같은 게 앞에 나서면 초콜릿 맛을 다 버릴 거라고!” 세 번째 이야기인 “여름의 맛”은 “쿠베르튀르”에서 주방보조로 일하게 된 65세의 할머니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자존감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로 앞에 펼쳐졌던 두 개의 사랑이야기와는 맥락이 조금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안타를 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네 번째 이야기인 “가을의 맛”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로 아홉 살 소년의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동네 야구팀의 코치로 있는 누나를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되어 버린 소년의 첫사랑이 푸근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치누나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점차 성장해가는 소년의 마음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가을의 맛”은 네 개의 에피소드 중 ‘만화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생각된다. ‘사랑’에 관한 달콤한 이야기 “쿠베르튀르”는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무난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