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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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볼 플래싱 매직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알몸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삼양출판사에서 ‘SC컬렉션’이라는 새로운 ‘프리미엄’ 만화브랜드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작품들이 몇 개 있다. “세키네씨의 사랑”, “하나씨의 간단요리”, “툇마루만찬”, “HER” 등이 그 브랜드...

2012-07-10 유호연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알몸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삼양출판사에서 ‘SC컬렉션’이라는 새로운 ‘프리미엄’ 만화브랜드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작품들이 몇 개 있다. “세키네씨의 사랑”, “하나씨의 간단요리”, “툇마루만찬”, “HER” 등이 그 브랜드에 해당하는 만화들인데, 여기에 소개하는 “미러볼 플래싱 매직”도 ‘SC컬렉션’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이다. 삼양출판사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SC컬렉션’에 대한 정의가 “Special, Sensitive, Stylish를 지향하는 삼양출판사의 프리미엄 코믹스 브랜드”라고 되어있다. 우연하게도 위에 열거한 ‘SC컬렉션’ 작품들은 다 사서 소장하고 있고, 다 읽어보았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위에 열거된 작품들이 ‘SC컬렉션’의 발행의도에 맞는 작품인지는,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프리미엄’이 무엇인지를, 그 차이점을 난 잘 모르겠다. 뭐가 어쨌든 간에, 만화는 재미있으면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감동까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거니까, 그런 의문점이나 고민거리 같은 무거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SC컬렉션’의 신작, “미러볼ㆍ플래싱ㆍ매직”을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제가 잘나가는 화가가 되면 저랑 결혼해주세요, 선생님.” “미러볼ㆍ플래싱ㆍ매직”이란 작품은 원제가 “ミラ?ボ?ル?フラッシング?マジック”으로 일본의 출판사 ‘祥?社 (SHODENSHA PUBLISHING)’에서 발행되었고 작가는 야마시타 토모코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한국에 소개된 만화는 같은 ‘SC컬렉션’시리즈로 출간된 “HER”가 있다. 인간의 욕망을 소재로 심도 있게 다룬 7편의 단편과 한 편의 ‘뒷이야기(보너스 트랙)’가 수록되어있으며,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8년부터 그린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으로 낸 것이라 한다. 전작인 “HER”와 비슷한 구성으로 되어있어 느낌이 많이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성인풍이고 욕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있는 정도랄까? “그때 내가 들은 것은 너와 사귀고 나서 몇 번이나 들어온 아나운스, 21시 3분 전방에 걸레가 포착되었습니다. 오늘 밤이야말로 반드시 헤어져주겠다고 생각한 내 머리를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첫 번째 단편인 “아름다운 숲”에서는 새로 부임한 여자 미술교사에게 온 정신을 다 빼앗긴 남자고등학생 모리구치의 망상과 현실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못생긴 건 아니었지만 왠지 덩치도 있고 딱딱해 보이는데다 눈썹은 두껍고 남자 같은 차림새에 저건 좀 아니다~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부임 온 첫날부터 모리구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야나기 선생은 일반적인 교사들과는 매우 다른 태도와 말투로 더더욱 모리구치를 자극한다. 이 짧고 강렬한 느낌의 강속구 같은 단편은, 타자를 상대로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마무리투수가 던지는 시속 150km대의 직구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이 나이 때의 남자애가 연상의 여교사를 보며 느끼는 욕망의 실체를 여자작가로서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망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점점 더 커지기만 하고, 점점 더 애절해지기만 하는 소년의 욕망을 섬세하고 간결하게 표현해낸 것이 아주 괜찮았다. 질질 끌었다면 이야기의 맥락 자체가 좀 지저분해지고 눅눅해질 수 있었던 경우였는데 매우 깔끔한 마무리여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야 넌, 내가 있는데 왜 그렇게 아무하고나 자는 거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두 번째 단편 “미러볼ㆍ플래싱ㆍ매직”은 캐릭터와 스토리, 구성 및 연출의 삼박자가 ‘딱딱 들어맞는’ 오랜만에 만난 ‘well-made’ 단편이다. 읽는 이가 불안감마저 느낄 정도로 어색하고 위험하고 두근두근한 남녀의 어떤 상황, 그 미묘한 대치의 순간을 맞아 ‘긴장’하고 있는 각각의 세 커플을 마치 작살을 쏘아 한 번에 꿰어버리듯, 한 번의 움직임으로 시원하고 명쾌하게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선사하는 작가의 감각이 매우 놀라웠다. 정말 마술(magic)을 보는 느낌이었다. 제목 그대로 단편의 내용 자체가 “미러볼ㆍ플래싱ㆍ매직(mirror ballㆍflashingㆍmagic)”이며 자세한 느낌은 읽어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만화로서 봐야만 이 단편의 뛰어난 점을 알 수 있고 이 소개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너처럼 젊고 예쁜 남자애였다면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하진 않았을 거야” 이 단편집을 내면서 출판사와 가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3년 전 이라는 게, 부끄러움과 애착의 균형이 미묘한 기간이라서...”라고 이 단편들을 그렸을 때를 회상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앞에 소개한 두 편의 단편 외에 나머지 다섯 편도 이런 ‘미묘한 느낌의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꽤나 인상 깊은 작품들이다. 특히 작가도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네 번째 단편 “언젠가 당신의 신비로운 가슴을”은, 나 개인적으로는 공감하기 힘들었던 소재였지만, 남자의 심리와 여자의 심리가 미묘하게 조금씩 서로 엮어지는 섬세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스토리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고, 나름 파격적인 소재일 뿐이라고 생각은 됐지만) 남자주인공의 생각과 욕망을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힘들어서 내 가슴에는 그리 다가오진 않았고, 여운이 길게 남지도 않았다. “여자란 어찌나 욕심 많은 생물인지”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보너스 트랙으로 엮어놓은 작가의 배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단편의 형식으로 너무 강렬하게 끝나버려서, 그 뒤엔 어떻게 되었을까 슬슬 상상해보던 차에, ‘자, 여기 있어^^’라고 적시에 던져 주는듯한, 작가의 훌륭하신 센스 덕에 아주 상큼한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