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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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 전자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보다 현실을 택해 지금은 가우스에 다니고 있으며 사는 집은 가우스 아파트, 타는 차는 가우스모터스의 차, 돈쓸 일이 있으면 가우스 카드로 결제하며, 내가 죽는다면 가우스생명에서 보상금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우스의 직원인...

2012-06-26 김진수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보다 현실을 택해 지금은 가우스에 다니고 있으며 사는 집은 가우스 아파트, 타는 차는 가우스모터스의 차, 돈쓸 일이 있으면 가우스 카드로 결제하며, 내가 죽는다면 가우스생명에서 보상금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우스의 직원인가 고객인가, 내가 만일 고객이라면...고객에게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일까?” “트라우마”의 작가 곽백수가 네이버 웹툰 코너에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웹툰’의 진수, “가우스전자”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작품 특유의 ‘쿨~’하고 기발한 개그코드를 상징하듯이 무척이나 깔끔하고 심플한 책 디자인이 구매 욕구를 ‘확!’ 불러일으킨다. ‘다국적 문어발 기업’ 가우스전자 마케팅 3부에 근무하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을 다룬,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사자성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만화 “가우스전자”를 소개한다. “그림자 직장인 나무명씨, 회사 내에서 그의 존재감은 제로, 오늘처럼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조차도 그의 존재를 잊곤 한다. 하지만 덕분에 재작년 있었던 대규모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그래도...회사 보안시스템마저 자신을 인식 못할 땐...” “가우스전자”는 “마음의 소리”, “쌉니다 천리마마트”, “생활의 참견” 등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웃음’코드를 책임지며 ‘인기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기라성 같은 개그만화들 중 한 편으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주 5회의 빡빡한 스케줄로 250회 넘게 연재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독자들이 주는 평균별점이 9.7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 ‘대세’ 중 하나다. “최달봉 이사...입사 직후 같은 ROTC후배라며 키워준다고 했었지, 그래서 궂은 일 마다않고 온몸 바쳐 일했는데, 저번 가우스폰 리콜 때 나한테 모든 책임을 씌우고 자기만 쏙 빠졌지, 지금 내가 그룹 내 대기발령소라고 불리는 마케팅 3부 부장으로 좌천되고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기러기 아빠로 전락해버린 것도 모두 그 때문, 휴...금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잡았는데 썩은 동아줄이었어, 역시 사회생활은 라인을 잘 타야 돼, 라인을 잘 못 타면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게 회사원 팔자, 난 라인을 잘 못 타서...” 예전에 스포츠신문에서 개그만화를 연재하던 시절의 곽백수 작품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인 웃음을 만들려 노력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 즐겨보지 않았었는데, 무대를 온라인으로 옮겨오자마자 마치 제대로 된 물을 만난 것처럼, 작가의 관록이 드디어 빛을 발하듯 자연스럽고 친숙한 웃음을 주고 있다. 직장생활이라는 소재 탓일까? “가우스전자”는 전작인 “트라우마”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자 의견임.^^) “가우스전자”의 매력을 수치로 분석한다면,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이 90%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마케팅 3부의 샐러리맨들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주변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생활 개그’는 거의 ‘업계 최강’수준이다. ‘어리바리’ 이상식, ‘포커페이스’ 성형미, ‘소설가 지망생’ 김문학, ‘그림자 직장인’ 나무명, 진정한 재벌2세 백마탄, 어장관리 빨판녀 모해영, 이상식의 룸메이트이자 리그 최강의 캐릭터 ‘영악한 인도인’ 아지즈 등등 최고의 개성을 자랑하는 등장인물들이 절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1년 전, 나는 마케팅 3부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처음 입사 때 발령받은 총무부, 아무래도 첫 사회생활이다 보니 실수도 많았고, 불명예스럽게도 어리바리 이상식이란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마케팅 3부로 옮기게 되면 완전히 새로 태어나겠어, 초엘리트 사원 이상식, 스마트한 사원 이상식으로 리셋하는 거야!....백업완료!” “웹툰(webtoon)”이라는, 온라인 환경에 최적화된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거대 포털사이트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만화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장악해갈 무렵, “드라마는 다음, 개그는 네이버”라는 누군가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우연히 보게 된 댓글이었는데, 만화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썼을 것 같은, 당시의 한국만화시장에 관해 ‘짧지만 상당히 함축적인 임팩트’가 느껴지는 절묘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강풀, 강도하, 윤태호 등의 작가들이 포진해 있던 ‘다음’의 만화섹션은 장편극화의 형식을 갖춘 드라마틱한 작품들이 많았고 조석, 김규삼, 메가쇼킹 등의 작가들이 포진해있던 ‘네이버’ 웹툰은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기승전결을 따라 이어지진 않지만, 기발하고 개성적인 개그코드로 매일매일 ‘웃음’을 선사하던 작품들이 많았다. ‘강풀’이 ‘다음’에서 화제의 웹툰 ‘순정만화’를 연재하며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이제 그런 구분이나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한때 웹툰 보는 것을 굉장히 즐겨하던 가까운 지인이 있어서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만화는 책으로 봐야 더 좋지 않아? 난 그렇더라구, 모니터로 보고 있으면 눈도 금방 피로해지고, 세로방향으로 읽는 것도 영 적응이 안 되고.” 근데 거기서 그 지인이 해준 답변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대화를 나눈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혀 지지를 않는다. “만화를 너무 진지하게 보는 거 아냐? 어차피 만화일 뿐이잖아, 눈이 아플 정도로 집중을 왜 해? ‘마음의 소리’ 같은 거 보면서 집중할 필요가 있나? 그냥 재미있게 웃으면 되지, 돈 내고 보는 것도 아닌데” 나를 굉장히 특이한 사람인 것처럼 의아하게 쳐다보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던 그 지인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대화를 통해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어차피 만화일 뿐이잖아,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이것이 ‘만화’ 특히 ‘웹툰’을 대하는 일반 대중들의 생각이란 것이다. 어쩌면 ‘일반 대중’들의 이 생각이 ‘상업예술’의 최전방에 위치해 있는 ‘만화’라는 장르의 ‘냉정한 본질’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와 대화를 나눈 그 지인의 말처럼, 드라마던 개그던 간에 만화는 만화일 뿐이다. 어떤 형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만화를 그리는 작가나 그 것을 상품화해야하는 사업자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뿐, 만들어진 결과물만을 읽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의미도 없는 일이다. 출판만화인지, 웹툰인지, 일본건지, 한국건지 구분하는 것도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대다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더 큰 카테고리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구분조차 잘 되지 않는 현 시점에서, 제작형태나 국적의 구분이 단지 ‘만화를 읽을 뿐’인 사람들에게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겠는가. 만화라는 예술장르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생산’하고 누군가는 ‘소비’하는 ‘문화상품’으로 정의된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매체’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현재 한국만화산업의 ‘대세’라 불리는 ‘웹툰’은, 보는데 ‘돈’을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