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닥터 진 (타임슬립 닥터 JIN)
-1- “내 이름은 미나타카 진, 34살, 토도대학 부속병원 뇌신경외과 국장이다. 그날 밤은 외과 당직이라 병원에 있었다.” 얼마 전 일본만화 “타임슬립 닥터 진”의 한국판 드라마 제작 계획이 발표되고, 주연배우에 송승헌, 영웅재중 등 정상급의 인기를 자...
2012-06-05
김현우
-1- “내 이름은 미나타카 진, 34살, 토도대학 부속병원 뇌신경외과 국장이다. 그날 밤은 외과 당직이라 병원에 있었다.” 얼마 전 일본만화 “타임슬립 닥터 진”의 한국판 드라마 제작 계획이 발표되고, 주연배우에 송승헌, 영웅재중 등 정상급의 인기를 자랑하는 한류스타들이 내정되었다고 보도기사가 나오자 주위의 지인들이 ‘만화애호가’로 알려진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건 도대체 무슨 내용의 만화냐?”, “재미는 있냐?”, “사극이라던데 몇 권짜리냐?” 등등 만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흔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처음엔 원작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려주려고도 노력했고, 원작만화를 읽어보길 권한적도 있었으나, 지인들 대부분의 피드백은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가 재밌으면 한번 읽어 볼게”, 그때 확실히 알았다. 한국에서 만화는 그 가치에 비해 많은 부분이 평가절하 되어있는 장르고, 소수의 지지와 애정을 받아 유지되는 매니악한 문화라는 걸 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문화소비패턴에서 볼 때 드라마와 만화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 대한 소구력이나 영향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 매일매일 텔레비전에서 무료로 소비되는 ‘화려한 볼거리’인 드라마와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들여 발견하고 거기다가 구입비용까지 들여서 소비해야 하는 만화는 인지도와 접근성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요즘 인터넷 무료 웹툰을 통해 만화의 인지도나 접근성이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하지만 만화나 드라마나 모두 ‘스토리 산업’의 일부분이란 점을 감안해보면, 옆 나라 일본의 시장 환경에 비해 한국의 시장 환경이 만화에 대해 매우 가혹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2- “난 이 시대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다.” 잠시 옆길로 빠졌지만, “타임슬립 닥터 진”은, 일본어 제목이 “진(仁)”으로 슈에이사(집영사)가 발행하는 슈퍼점프라는 잡지에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여년간 연재된 무라카미 모토카의 인기작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누계부수가 600만부가 넘어선 매우 유명한 만화고, 이미 드라마로도 두 번이나 만들어져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만화다. (방송사는 TBS, 시즌 1은 2009년 4분기 총 11화, 시즌 2는 2011년 2분기 총 11화로 방영됨, 간토지방 평균 시청률은 19%, 마지막 화는 2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함) 드라마 외에도, 그 유명한 타카라즈카 가극단에서도 공연으로 만들어 상연하며, 소설로도 출간되는 등 미디어믹스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19권(서울문화사)까지 나와 있고 일본에서는 작년에 총 20권(2011.02.04 발행)으로 완결되었다. 2000년에 살고 있던 현대 일본의 유능한 뇌신경외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타임슬립해서 분큐 2년(1862년)의 막부말기 에도시대로 떨어진다는 판타지인데, 역사적 사실과 만화적인 픽션을 아주 적절히 섞어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인 관계로 현대의학기술과 의료현장에 관한 생생한 고증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어떤 부분’을 건드리며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작가인 무라카미 모토카는 “용(龍)”(전 42권, 학산문화사)이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알려졌으며, 전작인 “용(龍)”이나 최근작 “진(仁)”을 볼 때, 시대극 장르에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고난에 휩싸이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내고 있는데, 특히나 “진(仁)”에서는 현대의 발전된 의학기술과 지식을 가진 주인공이 기초적인 의약품인 페니실린이 없어 환자를 살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라든가, 수술시스템을 에도시대에 맞게 구축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모습들에서 ‘잘 만들어진 만화’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점을 깨닫게 된다. -3- “이걸로 홍역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홍역을 내쫓고 싶으면 제 말을 따르십시오!” 발표된 한국판 드라마 제작계획을 살펴보니, 시대배경을 조선시대로 바꾸고 만화의 큰 틀인 설정과 캐릭터, 시놉시스 정도만 원작에서 따올 예정인 것 같다. 송승헌이 주인공인 진으로, 영웅재중이 진이 최초로 구해준 무사인 다치바나 역으로 나올 것 같은데, 에도시대의 일본인으로 설정되어 있던 등장인물들이 조선시대의 중인신분인 의사로, 사무라이가 무관으로 바뀌는 것 같다. 드라마가 2012년 5월 26일부터 방영예정이라니 원작만화는 이미 읽었고, 이미 완결된 일본드라마와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만화와 드라마 장르는, 더 크게 분류하자면 출판산업과 영상산업은 균형 있게 서로 잘만 합쳐지면 엄청난 상업적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실제로 원작만화인 “진(仁)”도 일본에서 2009년 드라마로 방영되기 이전에는 누계부수가 150만부(단행본 14권 발행 기준)정도였다고 한다. 권당 10만부 정도였던 판매부수가 드라마 시즌 1이 완결되던 시점에서 누계부수가 310만부(단행본 16권 발행 기준)로 올라 권당 약 20만부가 판매되며 두 배 이상의 판매고 신장을 기록했고, 원작이 완결되며 드라마 시즌 2가 방영되기 시작하자 누계부수가 680만부(2011년 5월 단행본 20권 발행 기준)까지 오르며 권당 약 34만부가 판매되는 결과를 내면서 세 배 이상 판매고가 신장되는 시너지효과를 누렸다고 한다. 일본만화든 한국만화든 간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누구나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번 “타임슬립 닥터 진”의 리뷰를 쓰면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한국의 만화산업도 일본처럼 자생적인 산업경쟁력을 확보해서 영상화를 통해 발생되는 상업적인 시너지효과를 ‘정당하고 기쁘게’ 향유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얼른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드라마제작사들이 일본만화 판권을 사기 위해 로비를 한다느니, 컨셉만 따와서 표절을 하다가 저작권분쟁소송에 휘말렸느니 하는 너절한 기사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