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류혈
“매일 반복되는 음습한 집단 괴롭힘...날 비웃는 불량 그룹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동급생들...격투에 눈을 뜨기 전까진, 죽는 것 외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격투에 눈을 뜨기 전까진...주먹을 움켜쥘 때마다, 격하게 뛰기 시작하는 고동, 상대의 움직임을 잘 보고,...
2012-06-01
유호연
“매일 반복되는 음습한 집단 괴롭힘...날 비웃는 불량 그룹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동급생들...격투에 눈을 뜨기 전까진, 죽는 것 외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격투에 눈을 뜨기 전까진...주먹을 움켜쥘 때마다, 격하게 뛰기 시작하는 고동, 상대의 움직임을 잘 보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펀치를 넣는다. 아키라...싸움이란 정말 즐거워!!” 한국의 만화시장이 너무 어려워져서인지 몰라도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이 요즘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윤인환, 양경일 콤비의 “신암행어사”나 임달영, 박성우의 “흑신”같은 성공작들이 국내에 역수입되고 있고 고진호, 박무직, 임석남(도해) 등등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중견 작가들도 일본의 잡지사와 연결되어 연재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만화라는 문화상품을 만드는데 있어 국적을 따지거나 민족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별로 옳지 않은 일인 것 같고, 국내 작가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돈’때문이라면 조금 씁쓸하기도 할 것 같고, 작가들이 바다건너 타국에까지 나가서 활동해야할 정도로 한국의 만화시장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바닥에 떨어진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아무튼 좀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격류혈” 역시 한국의 작가들이 일본의 편집진과 손잡고 제작한 일본잡지 연재작이자 단행본이 한국으로 역수입된 경우다. 작화가는 “단구”라는 작품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박중기가, 스토리는 “미스터 부”로 유명한 전상영이 맡았다. 연재 잡지는 스쿼어에닉스에서 발간하는 ‘영 간간’이다.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1권이 나왔다. “그 ‘격류혈’이라는 사이트에서 아키라를 봤어...화질이 너무 안 좋은 영상이긴 했지만....눈이...그 눈은 틀림없이 아키라였어...” 매일매일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괴로워하던 주인공 케이, 아키라라는 어릴 적 친구와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자신은 구조되어 살아남고 ‘같이 죽어줄 수 있었던’ 친구 아키라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행방불명된다. 자살 미수 사건 후로 1년이 지나고 여전히 케이는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아키라의 일까지 더해져 매일을 자책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케이는 또 한 명의 죽마고우 코우타가 알려준 ‘격류혈’이라는 사이트에서 ‘무념’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최강의 스트리트 파이터가 싸움을 하는 영상을 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무념’이라는 파이터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키라였던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케이는 코우타에게 알리지만 코우타는 믿지 않고 결국 둘은 ‘무념’에게 도전장을 보내는 방법으로 진실을 확인해보려 한다. 그러나 약속장소에 나와 있던 것은 ‘무념’이 아니라 그를 꺾어서 이름을 높이고 싶었던 또 다른 스트리트 파이터였고 그로 인해 케이는 난생 처음으로 싸움이란 것을 해보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은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홀리랜드”라는 일본만화와 너무 닮아있다는 점이다. 설정이나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흡사해서 ‘리메이크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독자적인 오리지널리티를 갖추어가지만 암튼 그런 찝찝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작화를 맡은 박중기의 그림은 ‘단구’때보다 훨씬 더 발전한 것 같지만 스토리가 너무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이어서 많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