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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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메이드홈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뭔가를 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개를 주웠고 중학교 때에는 고양이였다. 얼마 전에는 닭을 주워와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비오는 날은 조심해야 한다. 당치도 않은 것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본작가 MARU NAGA...

2012-05-25 유호연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뭔가를 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개를 주웠고 중학교 때에는 고양이였다. 얼마 전에는 닭을 주워와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비오는 날은 조심해야 한다. 당치도 않은 것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본작가 MARU NAGAO의 초기작 “홈메이드 홈”의 한국어판이 대원씨아이를 통해서 발간되었다. 2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다른 이에게 권하기도 좋다.^^ 작가 후기에도 밝히고 있지만, 원래 동인지에서 연재하던 작품을 작가의 첫 담당편집자가 건져 올려 정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이 작품 외에도 딱 한 작품이 있는데 “고양이 화가 주베의 기묘한 이야기”란 타이틀로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4권까지 발행되어 있다. 이 작품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슴 따뜻해지는 판타지로 잔잔하고 심심한 이야기 속에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 하나’를 건지게 되는 식의 만화다. 이 작품을 먼저 읽고 여기에 소개하는 “홈메이드 홈”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작가의 기본은 자신만의 색깔, 즉 “개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훈훈하고 인정 넘치는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스토리에 강점을 보이는 작가다. “그 집 이상해, 아버지는 애인이랑 산다는 것 같고, 어머니는 놀러 다니느라 집에 안 붙어있어, 마주쳐도 남 대하듯 얘기하도 사치오한테 웃어주지도 않아, 가족인데 사치오를 방치하고 모두 딴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이 작품의 스토리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시내 한 가운데 초고층의 펜트하우스에 사는 부잣집 도련님 사치오(초등학교 6학년)가 비오는 날 우연히 만난 타케루(고등학교 1학년)의 북적북적, 시끌시끌한 집에서 ‘사랑’과 ‘치유’를 받으며 성장해간다는 이야기다. 타케루의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큰 형, 작은 형, 누나, 개, 고양이가 다 같이 어울려 따뜻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이상적인 대가족이고, 사치오의 집은 엄청난 부자에 명문가 소리를 듣는 집안이지만 아버지는 사업을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어머니는 자신이외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마음이 메마른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사치오는 그 나이 또래 애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있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다. 그렇지만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빈틈없이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아주 일찍’ 몸에 익힌 아이다. 그런 사치오가 타케루네 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다 훈훈하고 인정 넘치는 ‘칸나비 1번지’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점차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아이로 변해간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사치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임신으로 인해 배가 산만큼 커졌던 타케루네 엄마가 귀여운 딸을 출산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되는데, 계속 연재를 이어갔어도 괜찮치 않았을까 하는 불만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다. 2권의 맨 끝에 타케루의 어린 시절을 다룬 외전 한 편과 작가의 초기작 단편으로 보이는 유령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고양이 화가 주베의 기묘한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