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
“부두목 백룡이라는 녀석이 수완가에 꽤 무섭다나봐, 실제로 구로스 파를 움직이는 건 그 백룡이라는 것 같아, 백룡이라는 건 물론 통칭이고 본명은 시라카와 타츠야(白川?也), 줄여서 백룡이라는 거지.” 일본의 만화잡지 ‘주간만화 고라쿠(週刊漫?ゴラク)’에 연재되고 ...
2012-05-23
김진수
“부두목 백룡이라는 녀석이 수완가에 꽤 무섭다나봐, 실제로 구로스 파를 움직이는 건 그 백룡이라는 것 같아, 백룡이라는 건 물론 통칭이고 본명은 시라카와 타츠야(白川?也), 줄여서 백룡이라는 거지.” 일본의 만화잡지 ‘주간만화 고라쿠(週刊漫?ゴラク)’에 연재되고 있는 ‘정통파 야쿠자’ 만화 “백룡 레전드”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런 계통의 일본만화나 일본영화에 관심이 많은 남성독자들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 본 느낌의 책표지가 눈에 익숙할 것이다. 19금딱지를 당당히 붙이고서 서점진열대 한구석에 놓여있던 이 작품의 한국어판을 발견하고 ‘이거 그 유명한 야쿠자만화 아닌가?’하는 생각에 무척이나 반가웠고 즉시 구입해서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 작품이어서 또 한 번 기뻤다. 그러나 하나 아쉬웠던 점은 이 한국어판은 ‘속편’의 1권이었다. 즉 새로운 시리즈의 1권이었던 것이다.(하긴 이거라도 어디냐...‘야쿠자 만화’의 전설을 한국어판으로 보게 된 것에 감사해야지^^) 여기에 소개하는 “백룡 레전드”는 텐노지 다이가 원작을 쓰고 와타나베 미치오가 작화를 맡은 동명의 작품 “백룡”시리즈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일본에서 1부에 해당하는 “백룡”은 총21권의 단행본으로 연재를 마쳤고 2008년부터 “백룡 LEGEND”라는 제목의 새로운 시리즈로 다시 연재중이다.(일본문예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 ‘레전드’ 시리즈도 2012년 3월 현재, 21권까지 단행본이 출시되어있었다) 1부에 해당하는 원시리즈를 보질 못해서 자세한 리뷰를 쓰긴 힘들지만, ‘레전드’시리즈는 시부야를 무대로 활동하던 백룡의 구로스 파가 롯폰기로 활동무대를 옮겨 새로운 사업들을 펼쳐가는 이야기로 1권에서는 롯폰기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광역 폭력단 왕도회와 백룡의 구로스 파간의 항쟁을 그렸고, 2권에서는 거대기업 세이토 철도의 약점을 잡고 기업을 협박하는 백룡의 모습을 그렸다. “백룡”시리즈가 야쿠자 만화의 전설로 불리며 유명세를 탄 건 야쿠자 세계의 모습을 리얼하고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부분도 있겠지만, 일본사회에 만연해있는 비리들, 즉 거대 기업이나 정치인, 관료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를 먹이삼아 그들을 상대로 야쿠자의 방식으로 ‘돈’이라는 목적을 완수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인공인 백룡은 비록 야쿠자지만, 기득권세력의 부정부패와 거대한 권력형 비리에 정면으로 메스를 가하는, 용기 있고 배짱 좋은 남자로 그려지면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 이 작품의 명성을 이룬 원인인 셈이다. 이 작품에 관해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백룡 레전드”는 작년 2월2일부터 원전의 비리를 파헤치는 ‘원전 마피아’편을 7주째 연재하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인 3월18일 돌연 중단했다고 한다. ‘원전 마피아’편의 스토리는 원전의 하청작업원이 엉터리 배관과 눈속임 검사 때문에 대량 피폭을 당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폭력단 간부들이 그 사실을 이용해 원전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회사인 ‘동도전력’(누가 봐도 ‘도쿄전력’을 빗댄 것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원전의 진실을 추적해 가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출판사 측은 “원전을 소재로 한 내용을 오락거리로 즐길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작가와 상의한 끝에 중단했다”고 말했지만, 여기저기서 ‘압력설’도 흘러나왔으며, 독자들의 항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참으로 무섭고도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