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항 메리로즈
“어머니의 먼 친척으로 지리 가정교사가 되어 준 에드거는 종종 이국의 항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진짜 바다를 건너갔다.” “군청 시네마”, “순환백마선 차장 하나부사씨”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일본 작가 릿츠 미야코의 신작 “등항 메리로즈” ...
2012-05-21
석재정
“어머니의 먼 친척으로 지리 가정교사가 되어 준 에드거는 종종 이국의 항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진짜 바다를 건너갔다.” “군청 시네마”, “순환백마선 차장 하나부사씨”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일본 작가 릿츠 미야코의 신작 “등항 메리로즈” 한국어판 1권이 발간되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편안한 이야기 전개방식은 여전하지만, 이번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 그간 작가가 보여주었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어서 기대가 된다. “동서의 문화와 사람들이 왕래하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동양의 항구야, 아무 것도 아닌 곳에 별 게 다 모여 있는 꿈의 도시...가보고 싶어, ‘등항’으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등항 메리로즈”는 작품의 주요 무대이기도 한 20세기 초의 동남아시아 어딘가로 보이는 항구도시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문물이 기묘하면서도 적절하게 뒤섞여있고 백인, 흑인, 동양인 등등 갖가지 인종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로 욕망과 의지를 불태우는 흥미진진한 도시, 인도양과 태평양의 경계에 생긴 이 활기차고 이국적인 항구에 대차고 씩씩한 귀족 아가씨 아젤리아가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항, 뜨거운 바람, 동양식의 신비한 건물, 인도양과 태평양의 경계에 생긴 무역항, 강한 햇살이 모든 것을 산뜻하게 만든다. 에드거도 이곳에 있어, 동서양의 문화와 사람들이 교류하는 꿈의 도시.” 주인공인 아젤리아는 어릴 적 자신의 지리교사였던 에드거의 편지 한 장을 받고 답답했던 자신의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아무 생각 없이 이국의 항구도시로 떠나는 여객선에 하녀인 도로시와 함께 몸을 싣는다. 너무도 이국적인 활기찬 항구에 발을 딛고 여행의 설렘을 맛보던 것도 잠시, 에드거의 집주소로 찾아가보니 그는 이미 작년 겨울에 죽고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죽은 에드거를 대신해 자신에게 편지를 쓴 것일까? 이야기는 이때부터 철없는 귀족 아가씨의 도피여행에서 어둠의 미스터리를 쫓는 심리드라마로 탈피하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의 항구도시에서 곤경에 빠진 우리의 씩씩한 여주인공,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이마에 흉터가 있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미스터리한 남자 어거스트 칼라일, 그는 아젤리아에게 말한다. “오랜 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아마 기억 못 하겠죠. 당신은 어렸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위험한 남자 어거스트와 씩씩한 아젤리아의 색다른 ‘추적 여행’이 시작된다. “그럼 저도 당신에게 목숨을 걸겠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 같으면 이걸로 절 쏘세요. 당신이 지금 나를 신용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신용해선 안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달리 신용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반드시 이기는 내기는 당신에겐 안 겁니다. 제게 걸어보지 않겠어요?” 제목의 “등항”은 한자로 쓰면 “燈港”이다. 무슨 의미인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