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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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문신

“절정의 순간에 생을 마감한다면...최고일거야.” 빨간 바탕에 문신패턴, 커다란 파란 나비 한 마리와 묘한 눈빛으로 그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 교복차림의 여고생, 야마다 카난의 단편집 “나비와 문신(Butterfly & Tattoo)”은 강렬한 표지디자인만으로도 독...

2012-05-15 유호연
“절정의 순간에 생을 마감한다면...최고일거야.” 빨간 바탕에 문신패턴, 커다란 파란 나비 한 마리와 묘한 눈빛으로 그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 교복차림의 여고생, 야마다 카난의 단편집 “나비와 문신(Butterfly & Tattoo)”은 강렬한 표지디자인만으로도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무언가 ‘강렬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그런 표지와 그림은 은근히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오빠...부탁이 있어... 나, 목 좀 졸라 줘.” “나비와 문신”은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방황’이라는 키워드를 내포하고 있는 여자 주인공 쵸우코는 ‘잠이 잘 오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밤거리를 해매며 섹스를 하고 같이 자줄 남자를 찾는 여고생으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외롭고 불안정한 그녀의 영혼에 ‘치유’라는 과정을 덧입혀주며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남자주인공 마코토는 돈을 받고 문신을 새겨주는 문신사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이 단편집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쵸우코와 마코토가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표현수위도 아주 세고 마음에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매우 강하다. “난 과거를, 나를 잘 모른다. 그저 이렇게 매일 밤 배회하다 만난 남자와 관계를 맺을 뿐, 섹스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이러는 편이 잠이 잘 오니까...그날 밤 만난 마코토라는 남자는 달랐다.” 쵸우코와 마코토는 처음 만난 그날 밤 바로 섹스를 하지만, 그간 하룻밤을 보내며 자신의 몸만을 탐했던 남자들과는 무언가 다른 사람이란 걸 쵸우코는 직감한다. 그리고 쵸우코는 드디어 마코토에게 ‘목을 졸리면서’ 처음으로 섹스를 통해 절정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 마코토의 등에 새겨진 강렬한 ‘용(龍)’ 문신을 보면서 쵸우코는 영혼의 강한 끌림을 느끼고 결국 둘 사이의 동거가 시작된다. “마코토 문신으로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나도 새겨줘요.” 여자 주인공인 쵸우코는 일본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엄마의 팔에 새겨진 나비모양문신밖에 없는 쵸우코는 마코토에게 자신의 팔에 나비문신을 새겨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신이 팔에 새겨진 순간 신기하게도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고 잠을 잘 잘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마코토와 지내면서 세상사에 대해 잊고 살던 쵸우코는 오랜만에 들어간 집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장례식을 치룬 후 ‘정말로 혼자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던 순간, 뒤에서 자신을 안아주는 마코토의 온기를 느낀다. 그렇게 강렬했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난다. “내내 이 집이 싫었는데 마코토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즐거워졌어요.”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는 작품의 색깔이 확 바뀐다. 둘의 만남을 그린 강렬했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갑자기 훈훈한 러브 코미디 같은 느낌으로 바뀐달까? (사실 조금 실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쵸우코의 집에서 둘의 동거가 시작되고, 집은 주거기능 뿐만 아니라 마코토의 사무실로도 사용되며 문신을 새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시술을 받는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이후 작품의 색깔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문신을 새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뀌며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쵸우코의 내면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아까 손님한텐 왜 문신을 해줬냐고 했던가? 문신을 넣으려면 각오가 필요해, 아픔도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신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난 웬만하면 어떤 손님이든 새겨주는 편이야, 그 손님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 과거를 지우고 싶은 이유가...문신을 하는 이유가....”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 마코토는 문신을 새기는 전문가로 일을 할 때는 ‘호리 겐신’이라는 예명을 쓴다. 겉으로는 싱글거리는 일도 많고 다소 엉뚱한 일을 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해서만큼은 확실한 원칙이 있는 긍지 높은 ‘스폐셜리스트’다. 문신을 새기던 지우던, 마코토가 일을 맡는 이유는 단순히 돈벌이 때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문신을 새긴 ‘이유’가 있고 그것을 지우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다른 그림을 덧입히려고 하는 사람도, 새로운 문신을 더 새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도 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 마코토의 일은, 그런 사람들의 이유와 사연을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문신을 새겨주면서, 그들의 영혼을 치유하거나, 각오를 다지게 해주는 일이다. 여자 주인공인 쵸우코를 비롯한 에피소드별로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마코토의 ‘일’을 통해 자신의 영혼과 육체에 ‘문신’을 새기며 자신의 ‘길’을 굳건히 나아가게 된다. “그녀에게 문신은 그의 곁에 평생 있겠다는 다짐의 문신, 그러니까 그렇게 아름답고 붉은 꽃이 핀 거겠지.”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 아쉬운 점은, 첫 번째 에피소드의 강렬하고 위험한 느낌의 톤을 전반적으로 계속 유지시켜주었더라면 어떨까하는 점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남자손님이나, 세 번째나 네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여자 손님들 역시, 작가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쵸우코의 에피소드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도 다룰 수 있는 소재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느껴졌던 작품의 팽팽한 긴장감을 어딘가에 던져버리듯이 실종시킨다. 아마도 남자주인공인 마코토의 다양한 면과 ‘문신’이라는 것의 의미에 더 집중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에겐 첫 번째 에피소드의 강렬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강하게 들었다. 일반적인 순정만화처럼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작품의 개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네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유산한 아이의 이름을 다양한 방식으로 온 몸에 새기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강렬했다. 원래 너무 ‘쎈’ 만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만화는 전반적으로 긴장감의 톤을 유지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킬링타임용 단편집처럼 변해버려서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