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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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란 말도 없이

“언제나 둘이 함께 있자. 언제나 둘이서 함께 하기로 했던 마음을 잊지 맙시다. 매일을 둘이서 엮어나가 벌써 이만큼이나 길어졌구나, 라고 확인하는 길목의 하루가 바로 오늘이로군요.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1994. 4. 18. 월요일.” 『우에노...

2012-03-09 김현우
“언제나 둘이 함께 있자. 언제나 둘이서 함께 하기로 했던 마음을 잊지 맙시다. 매일을 둘이서 엮어나가 벌써 이만큼이나 길어졌구나, 라고 확인하는 길목의 하루가 바로 오늘이로군요.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1994. 4. 18. 월요일.” 『우에노 켄타로 : 1963년 4월 18일 도쿄도 메구로구 출생, 1984년 ‘주간 소년 챔피언’에서 “담배 박멸 위원회”로 데뷔, 주로 개그만화를 작업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모자남은 잠들지 않는다”를 비롯한 “모자남”시리즈, “게임 인간”,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시리즈, “우리가 좋아하는 것”등이 있다.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집필한 “안녕이란 말도 없이”로 ‘2011년 일본 만화대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2011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에서 3위를 수상하였다. - 책머리에서 발췌』 사람이나 동물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은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한다. 이 과학적 결과를 놓고 ‘왜 그럴까?’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원인을 찾으려 하는 학자들도 물론 있겠지만, 결혼을 한 사람이거나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굳이 과학적인 연구결과나 연구과정을 접하지 않아도 그냥 직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술이나 한 잔 하러 갈까?’라는 말이 나오거나, 우울한 표정으로 조용히 담배 하나 태우면서 허공을 향해 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아실현 행위나 구체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것 같은 일이 아니라, ‘고독과 싸우는 일’일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죽음’이라는 공평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인생의 시간이라면,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차례대로 냉철히 소거하다보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유의미한 곳(‘존재’ 또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절대적인 고독의 진리이자 ‘최소의 실존(實存)상태’가 인생의 공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누구나 ‘나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은 이성이나 감성의 영역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며, 누구나 자신의 외로움을 소멸시켜줄 ‘누군가’를 끝없이 찾아다닌다. 사실 생(生)의 대부분은 거의 그 일에 시간을 보내게 되며, 끝끝내 이루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존재가 꼭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 동물이나 식물일수도 있고, 생명이 없는 물체일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위 대부분의 목적은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상식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물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일에 꼭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배우자가 죽었다’는 인생에 있어서의 엄청난 사건은, 홀로 살아남은 상대에게 다시금 절대 고독의 시간이 찾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며, 충만해 있던 그 ‘무언가’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는 엄청난 상실의 고통이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일인 것 같다. “이것은 한 남자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슬픈 사건과 그 후의 1년을 그린 이야기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안녕이란 말도 없이”는, 우에노 켄타로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일본의 만화가가 자신이 실제로 겪은 ‘아내의 죽음’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만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작가는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 일을 만화로 그려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데, 실제로는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작품으로 구체화된 것을 보면, 역시 이런 정도의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은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야만 자신의 안에서 단단하게 정리되는 것인가 보다. “「임종하셨습니다.」 그 순간, 세상은...의미를 잃었다.” 이 작품을 담담히 읽어가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슬펐던 장면은,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주인공이 집에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 대고 “다녀왔어”를 반복하다가 침대에 엎어져 혼자서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속담에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듯이,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 특히나 가족의 경우는 항상 내 곁에 있는 평상시엔 그들의 고마움도, 소중함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내 곁에서 사라졌을 때 그 사실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의 온기가 갑자기 사라진, 엄청난 부재감에서 오는,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모를 그 끝없는 두려움과 상실감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키호가 만든 마지막 카레가 냄비에 남아있었다. 용기에 옮겨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12월 9일과 10일, 불과 하루의 차이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불과 하루가 나와 키호를...영원히 갈라놓았다.” 이 작품의 무서운 점은, 주인공의 마음속에 굉장히 깊숙이 박혀있는 슬프고도 우울한 감정을 매우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담담하고 리얼하게 펼쳐놓는 점이다. 마치 남의 장례식을 옆에서 지켜보고, 살아남은 다른 이들의 그 후의 일상을 훔쳐보듯이 이야기가 진행되어 간다. 전문적 용어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 분명한데, 마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은 주인공이 작가와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죽을 수는 없다...그럼 언제라면 괜찮을까...? 딸이 자립할 때까지? 결혼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에? 밤의 자작은 계속되었다. 소량이긴 하지만 잘 못 마시는 위스키를 마시고...컵라면이나 즉석요리를 3시 넘어서 야식으로 먹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제 죽음은 예전보다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천천히 죽어 가면 된다고...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두려우면서도 인상 깊었던 지문(또는 독백)은, “키호가 없는 나날의 시작이었다.”라는 문구였다. 이 문구만큼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엄청나게 두려운 사건을 명확하면서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는 글은 없을 것이다. “둘이서 견디던 일상을 앞으로는 혼자서 견뎌야한다.”라는 이 잔인하고 명확한 “사실”, 자신의 고독을 채워줄 누군가를 만난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닥쳐올 이 두려운 ‘사건’을 난,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책은, 혼자 지내는 이에게든 누군가와 같이 지내는 이에게든, 누구에게나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무겁고도 차가운, 깊고도 진한 슬픔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또는 자신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