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를 구사하는 좌완투수 쿠로키 진! 결장한 우에하라 선수 대신에 등판해서 예상외로 호투하고 있습니다! 직구만으로 LG의 타선을 현재까지 완벽하게 봉쇄! 1학년의 몸으로 이번 시합 최고속도인 152km의 스트레이트를 던지다니, 그야말로 초(超)고교 레벨입니다! 자, 9회 초, 오사카 LG 고교는 4번 타자 키요하라 선수부터 타석에 서게 되겠습니다! 9회에도 완벽하게....막아 낼 수 있을까요?” 0대0으로 9회까지 팽팽하게 흘러온 시합, 무대는 모든 고교야구소년들의 꿈의 무대 갑자원, 팀의 에이스가 결장한 탓에 1학년임에도 등판한 투수 쿠로키, 타석에는 상대팀의 4번 타자, 긴장감이 너무 팽팽해서 한 순간의 어긋남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를 상황, 투수인 쿠로키는 자신의 위닝샷을 결정구로 던졌고 상대 타자에게 맞은 공은 우익수 정면으로 날아간다. 투수를 비롯한 수비수 모두가 안도하고 있던 그 상황에서, 우익수 스즈키는 어이없는 실수로 공을 놓쳐버리고 타자주자는 3루까지 달려간다. 드디어 긴 시간 유지되던 게임의 팽팽한 균형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마운드에 모인 수비진은 투수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에러를 한 우익수 스즈키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비웃듯이 ‘미안해’라고 투수 쿠로키에게 사과하는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투수 쿠로키는 우익수 스즈키의 얼굴을 때려버린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건이 경기장을 꽉 채운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벌어져버린 것이다, “오늘 20시경, 카나가와 현 시가미하라 시 사가미 호수에서 사가미하라 시에 거주하는 스즈키 지로 씨(19세)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스즈키 씨의 집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경찰은 스즈키 씨가 자살을 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지 2년 후, 쿠로키의 폭행사건으로 모교인 사카키타 고교 야구부는 여전히 대외시합 출장을 금지당한 상태였고, 당사자인 쿠로키는 학교에 나가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며 꿈도 미래도 없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의 당사자이자 그 사건으로 인해 전학을 갔던 우익수 스즈키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뉴스가 보도되던 날 저녁, 쿠로키의 집에는 피 묻은 편지 한 장이 쿠로키 앞으로 도착해있었다. 보낸 사람은 바로 자살했다는 스즈키였고, 거기에 써있는 내용은 이랬다. “9회 초 노아웃, 실수는 내 탓이 아니야, 난 살해 당할거다. 실수의 비밀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래요, 스즈키 지로가 어제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내가 이 편지를 받았어요. 우팔 선배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살해당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왜 그 사람이 살해당해야만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프로야구다. 물론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에는 고교야구도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지만, 현재 한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프로야구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프로야구다. 그러나 옆 나라 일본에서는 고교야구도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고, ‘갑자원’으로 상징되는 전국고교야구대회는 매년 여름 전 국민을 열광시키는 새로운 야구 영웅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야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고교야구부가 53개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옆 나라 일본은 5000개가 넘는 고교야구부가 있고 이들 중 49개의 팀만이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쳐 갑자원의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사건들과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고교야구를 무대로 벌어지곤 한다는데, 그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기위해 공공연히 뒷돈이 오가는 건 다반사이고, 고교야구 게임만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도박이 성행하고 있으며, 학교입장에서도 학교의 선전수단으로 “갑자원 진출”이란 타이틀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을 저질러 교육이 아닌 승리만을 목표로 삼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즉, 이것은 더 이상 고교생의 취미활동영역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있고, 욕망과 음모가 휘몰아치는 거대한 시장이자, 명확한 시스템이 확립된 사회구조 중의 하나라는 뜻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블랙아웃”은 바로 이 고교야구를 무대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어떤 음모”에 휘말려 버린 어느 고교야구부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면, 그 때 진심으로 화해하자고 우팔 선배가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우팔 선배가 절대로 자살을 했을 리가 없어...그 편지는 나한테 보낸 SOS야! 내가! 다 밝혀주겠어! 그 실수 뒤에 숨겨진 비밀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우리 약속을 망가트린 그 녀석...! 내가 찾아내겠어!” “블랙아웃(Black Out)”이란, 원래는 군사 용어로 본격적인 미사일 공격에 앞서서 한 발 또는 수발의 핵공격으로 적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의미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적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경우 적의 방어체계에 막혀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본격적인 미사일 공격전에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미사일을 발사하여 전파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 정전(停電), (정부, 경찰에 의한)보도통제, 등화관제, 일시적인 의식(시력, 기억)상실 등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인공인 쿠로키가 “스즈키 선배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라는 강한 의문을 품고 야구부로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1권의 말미에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것이 야구 만화인지 추리 만화인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결코 중심에서는 벗어나지 않는 단단한 분위기가 있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화가는 “쿠니미츠의 정치”, “시바토라”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만화가 아사키 마사시이며, 원작자는 키사라기 류라는 작가로 조금은 생소하다. "고교야구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책 소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짜고짜 구입했고,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1권밖에 나와 있지 않지만 이야기 전체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밀하게 짜여있는 극전개가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일본의 고교야구를 둘러싼 수많은 이권들과 학교와 학부모, 소속도시와의 관계가 어떻게 학생들과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유기적인 관계’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이 미묘한 시스템은 주인공인 쿠로키가 사건의 중심에 파고들 때마다 장해물로 나타날 것이고, 이 부분을 작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무척이나 다음 권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