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도시
“그것은 갑자기 분출되었다. 어느 날 일본의 시골구석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릴 뿐이던 작은 마을에 그것은 마치 검은 피처럼 흘러들어와, 빈사상태였던 마을을 다시 소생시켰다. 석유를 손에 넣은 자는 이제 최고의 부와 권력을 얻었고 일본을 뒤흔들 ...
2012-02-15
유호연
“그것은 갑자기 분출되었다. 어느 날 일본의 시골구석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릴 뿐이던 작은 마을에 그것은 마치 검은 피처럼 흘러들어와, 빈사상태였던 마을을 다시 소생시켰다. 석유를 손에 넣은 자는 이제 최고의 부와 권력을 얻었고 일본을 뒤흔들 정도의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 마을을 합법도시라고 불렀다.” 만화를 만드는데 있어 상상력엔 한계가 없다. 그러나 상상력이 너무 과도하면 작품의 재미가 떨어진다. 상업적인 만화를 지향하고 있는 작가라면, 항상 상상력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염두에 두고 그 한계선을 지키며 작품을 만들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본만화가 토조 진(Tojo Jin)은, 창작의 상상력에 있어 아주 적절한 수위조절을 하는 작가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대표작 “무적투혼 커프스”가 한국어판으로 소개되었고, “블러드라인즈”라는 다섯 권짜리 작품도 한국어판으로 소개되었다. 특히나 그의 대표작인 “무적투혼 커프스”는 총 32권에 달하는 장편으로 “싸움”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 이렇게 강렬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왜 이곳이 합법도시라고 불리는지 알아? 이 마을에서 우리 반류석유의 인간들에게 거역하는 자는 없다. 설사 살인을 했다 한들 아무도 우릴 제재할 수 없지, 그게 아무리 위법이라고 해도, 이 사원증 하나로 모든 것이 합법이 된다. 그러니까 합법도시지. 그러나 그런 이 마을에서 딱 한 가지 비합법적인 것이 있어, 그것이, 경관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합법도시”는 토조 진의 신작으로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1권만 출간되어있다. 일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이 발견되고 그 유전을 소유한 ‘반류석유’라는 회사가 그 지역을 주위와는 완벽히 차단한 치외법권지역으로 만들어서 자신들만의 룰로 도시를 다스린다는 설정의 이 신작은 토조 진 특유의 기분 좋은 속도감과 화려한 연출을 느낄 수 있는, 숨 돌릴 틈 없이 흥미진진한 전개로 줄거리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사실 토조 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설정’은 작품의 강점으로 작용해왔다. 대표작인 “무적투혼 커프스”에서도 주인공인 열혈깡패 류지가 총을 맞고 죽어서 환생을 하게 되는데 왕따에 시달리다 자살한 자신의 아들인 유사쿠의 육체를 통해 혼만 돌아온다는 엄청난 설정으로 작품의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냈었다. 육체는 허약체질 유사쿠의 몸이고 정신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싸움꾼이던 류지의 혼이라는 이 황당무계하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은, 32권까지 독자들을 쭉 빠져들게 만든 아주 독특한 상상력이 가미된 설정이었다.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그린 “블러드라인즈”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는데, 토조 진 특유의 황당무계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상상력 넘치는 설정은 작품의 힘을 배가시키면서 동시에 한눈을 팔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아주 만화다운 작화와 시원시원한 컷 나누기를 통해 읽는 이가 굉장히 기분 좋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해놓은 절묘한 연출이 또 하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액션장면도 박진감 넘치지만, 아주 간결하면서도 호흡이 짧은 이야기의 흐름은 읽는 이가 오로지 ‘만화의 재미’에만 빠져들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있다. 다음 권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