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하우스
“이걸로 세 사람…모였잖아? 직장 잃고 집도 잃고….내일조차 모르는 여자 셋…알아? 인생은 말이지,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는 거야, 어떠한 역경이라도 백기를 들어서는 안 돼!!! 몇 번이라도 기어 올라가면 되잖아!!! 여자는 품격있고, 아름답게, 이상은 항상 Keep...
2012-01-17
석재정
“이걸로 세 사람…모였잖아? 직장 잃고 집도 잃고….내일조차 모르는 여자 셋…알아? 인생은 말이지,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는 거야, 어떠한 역경이라도 백기를 들어서는 안 돼!!! 몇 번이라도 기어 올라가면 되잖아!!! 여자는 품격있고, 아름답게, 이상은 항상 Keep on High라고…. 우리의 부활극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 제로에서 리스타트야!!! 말하자면 여기가…우리의 버진 하우스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엄청난 성공 이후 모든 콘텐츠 앤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장르가 만화로 치면 “레이디스 코믹” 장르다. 예전엔 “OL (Office Lady)물”이라 불리기도 한 이 장르는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작품의 주요한 테마로 삼고, 경쟁 일변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공평과 갈등, 고민 등을 에피소드의 주요 소재로 삼아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 장르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는데 근간의 최고 힛트작을 들자면 얼마 전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성공을 거둔 “호타루의 빛”이나 “리얼 클로즈”같은 작품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경우로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이 장르에서 이렇다 할 힛트작이 출간된 적이 없다는 것이 만화애호가의 한 명으로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곧잘 ‘만약 그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그때, 배구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만약 그때, 회색 코트가 아니라 하얀 코트를 샀다면… 만약 그때, 그 남자랑 헤어지지 않았다면….만약 그때, 사진작가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어쩌면 지금쯤….” “버진 하우스”의 장점은 캐릭터다.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버린 세 명의 여자가 서로간의 필요에 의해 룸쉐어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 작품의 큰 줄거리인 만큼, 작품을 이끌어 가는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이 이야기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 작품의 화자(話者)이자 주인공 중 한 명인 시라이 유키는 학생시절 사진작가가 꿈이었으나 어느 순간 포기해버린 채 인생의 갈 길을 잃고 의미없는 회사생활을 하며 실연과 만남을 반복하던 평범한 직장여성이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실연과 함께 갑작스런 정리해고마저 당해 삶 자체가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버진 하우스”에 입주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히카와 아이코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인정받으며 회사와 사회 양쪽 모두에서 승승장구했으나 너무 독선적이고 전투적인 태도와 오만하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어느 순간 정리해고를 당해버린 여자로 “버진 하우스”라는 룸쉐어 계획의 입안자이다. 세 번째 주인공인 모리노 스미레는 안내 데스크의 파견직원으로 있던 예쁘고 허영심 많은 여자였으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화장을 지우면 순식간에 추녀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제멋대로인 성격에 남자를 밝히는 태도 때문에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사건을 만들거나 트러블 메이커로 활약한다. “시라이 유키, 26세, 지금까지 사귄 남자 - 12명, 그중에 먼저 차서 헤어진 수 - 전원, 섹스까지 간 남자 ? 제로!!, 이유 ? 이 사람이라면 처녀를 줘도 좋아 라고 생각한 남자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이상만을 좇다 정신차리니 재고품인 인생과도 오늘로 작별이야!! 처녀 따위 얼른 버리고 눈부신 새 인생을 시작할 테니까…!!” 작품의 제목인 “버진 하우스”는 세 명의 주인공이 직접 이름을 지은 공동주택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세 명의 여자 주인공 모두가 ‘버진(vergin)’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한 번도 남자와의 섹스 경험이 없는 세 여자가 보여주는, 다난하고 씁쓸한 일상사 속에서 사랑과 섹스의 함수관계부터, ‘섹스’라는 행위 자체가 20대 중반의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 작품은 세심하고 가감없이 보여준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산(産) 레이디스 코믹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도 제작된 힛트작이라고 하니 이런 장르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여성 독자들이라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