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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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늑대

“가랑눈이 내리는 추운 밤이었습니다. 서로를 토라와 오오카미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두 남자와 만난 것은.” 카미오 요코라는 이름은 이젠 일본을 넘어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태국 등등 아시아의 각국을 재패하고 이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도 통용되는, “망가...

2011-12-27 김진수
“가랑눈이 내리는 추운 밤이었습니다. 서로를 토라와 오오카미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두 남자와 만난 것은.” 카미오 요코라는 이름은 이젠 일본을 넘어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태국 등등 아시아의 각국을 재패하고 이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도 통용되는, “망가(manga)”의 대표작가가 되었다. 이제 그녀가 내놓는 신작들은 탄탄해진 그녀의 브랜드에 걸터앉아 나오는 족족 출판, 영상, 전송, 2차 저작권 등등 콘텐츠에 대한 모든 사업권이 알아서 팔리는 경지에 이르렀고, 이 작가가 현존하는 만화작가 중에서 최강의 작가 중 한 명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꽃보다 남자”라는, 한국, 일본, 대만 3국에서 모두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차세대 청춘스타로 발돋움한 전설의 메가 히트작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카미오 요코의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상업성과 흥행성을 갖춘 ‘킬러 콘텐츠’임은 아시아 문화산업계에서 이미 실적으로 증명되었다. “구시렁거리는 건 일단 먹어보고 해!! 당신한테 어떻게 해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버지랑 사이가 좋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댁의 아버지는 오늘 제가 만든 음식을 밟고 더럽다고 했어요. 진짜 최악이야. 하지만 당신도 최악이지. 다른 가게는 몰라요. 하지만 우리 해바라기는 초라해 보일지언정 진심을 담아 만들고 있어요. 요리를 해서 낸다는 건 그런 거니까. 이런 가게라고 말하려면 일단 먹고 나서 하세요!!” 카미오 요코의 작품은 대표작인 “꽃보다 남자”외에도 “캣 스트릿”, “마츠리 스페셜” 등이 한국어판으로 소개되었다. 이 작가 작품의 특성은 일단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성격을 가진 “20세기형 캔디”가 여자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이름인 ‘츠쿠시’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예 “잡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해도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자신의 길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려 하며, 부자도 아니고, 예쁘지도 몸매가 좋지도 않지만, 이들에겐 이렇게 ‘아름다운 의지’가 있다. 그러나 현실도 구질구질한데 만화에서까지 이렇게 예쁘지 않은 캐릭터를 만나야 될까? 물론 카미오 요코는 작품을 그런 어설픈 리얼 스토리로 만들지 않는다. 그녀는 이 “20세기형 캔디”에게 최강의 왕자님을 붙여준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을 말이다.(“꽃보다 남자”에서는 F4 네 명을 비롯,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왕자님들이 츠쿠시와 인연을 맺는다) 이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왕자님들은 조각 같은 꽃미남 얼굴에 모델 같은 몸매는 기본이고,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다. 다만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괴팍한 성격도 있고, 자상한 성격도 있으며, 특이한 성격도 있다. 이제 우리의 “20세기형 캔디” 여주인공은 이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선택’만 하면 된다. 물론 그들과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는 엄청난 장애와 고난이 따르지만 말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신작 “호랑이와 늑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 주인공인 토리사와 미이는 어린 나이에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해바라기 식당이라는 동네 식당을 운영해나가는 씩씩한 여고생이다. 프랑스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천재적인 미각을 갖췄고 식당을 운영하시는 할머니의 지도를 통해 아주 뛰어난 음식솜씨를 익혔다. 말 그대로 타고난 재능 위에 환경이 주는 노력을 더한 훌륭한 요리사인 것이다. 물론 예쁘지도, 성격이 좋지도, 사교성이 원만하지도 않다. 공부도 그저 그렇고 친구도 마땅히 없다. 당연히 돈도 없다. 취미는 오직 인터넷에 “BL소설”을 연재하는 것이다. 잘 하는 것이라곤 그저 요리 뿐이고 믿을 것은 꿋꿋하고 성실한 성격뿐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 갑작스럽게, 야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묘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의 꽃미남이 나타난다. 토라(호랑이)와 오오카미(늑대)라는 이름의 두 명의 꽃미남이 말이다. “난 토리사와 미이, 고등학교 1학년, 할머니와 둘이 살며 정식집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가벼운 BL을 좋아했지만 어떤 두 사람을 만난 후, 망상에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카미오 요코의 이번 신작 제목인 “호랑이와 늑대”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우린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선 작품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사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캣스트릿”에서조차 카미오 요코의 이런 ‘설정의 틀’은 절대 깨지지 않았다.^^) “마츠리 스페셜”의 여자 주인공 마츠리가 천재적인 레슬링 선수였다면, “호랑이와 늑대”의 여자 주인공 토리사와 미이가 뛰어난 재능과 솜씨를 지닌 요리사라는 것이 다른 점 일뿐, 스토리의 방향성은 그간의 카미오 요코 작품들과 거의 유사하다. 일본화를 전공하며 한 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조차 잃어버리는, 아름답고 자상한 미대생 센고쿠 토라지, 일명 ‘토라’와 이공계 대학에 다니며 누구에게나 충돌을 일으키는 모난 성격이지만, 가늠할 수 없는 매력과 예측불허의 자상함을 갖춘 속 깊은 꽃미남 오오카미 켄, 일명 ‘오오카미’가 우리의 여주인공 미이의 가슴을 흔들며 스토리를 이끌어 갈 두 명의 왕자님이다. (마치 F4의 중심, 루이와 츠카사를 다시 보는 것 같지 않은가? ^^) 이런 점들이 카미오 요코의 뛰어난 재능이라고 난 생각하는데, 이 작가의 작품은 아무런 거부감이나 짜증남이 없이 한 번 잡기만 하면 정말 술술 읽힌다. 어떤 이들은 빤한 이야기에 유치한 설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앞서 말한 이런 장점은 구현하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만화가로서의 재능과 경험, 그리고 관록이 합쳐져야 가능한 일이다. 대표작인 “꽃보다 남자”에서도 그랬지만, 카미오 요코의 이런 “자연스러운 연애 이야기”는 사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다. 하지만 바로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하고 왕자님의 비현실성조차도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센고쿠 토라지입니다. 미술 담당입니다. 오오카미 켄입니다. 지학담당, 반갑습니다.” 그간의 작품들과 굳이 다른 점을 더 찾자면, 왕자님과 여주인공간의 관계 설정이 조금 다르다는 건데, 처음엔 식당 주인과 손님, 여고생과 대학생으로 만났지만, 1권 중반부부터 여고생과 선생님이라는 설정으로 관계가 뒤바뀐다는 점이다. 카미오 요코의 계속 되는 승승장구의 행보를 보면서 느끼는 바는, 정말 순정만화의 본질적인 ‘원형’은 “들장미소녀 캔디”라는 것이다. “캔디”의 설정, 스토리, 연출, 캐릭터를 20세기형으로 바꾼 것이 카미오 요코고, 외형은 바뀌었어도 본질은 그대로인 왕자님과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세대를 넘어서서 현재의 소녀들에게도 여전히 어필하고 있지 않는가?^^ 카미오 요코의 신작 “호랑이와 늑대”는 현재 한국어판으로 2권까지 발행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