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ㅇ난감
“파리에선 이미 순전히 논리적인 설득만으로 광인을 치료하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실험이 행해진 모양입니다. 최근에 작고하신 어느 권위 있는 교수가 그러한 치료방법을 생각해냈더군요. 그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해서 착상했던 거죠. 즉, 광인이라 해도 신체조직에 특별...
2011-12-21
유호연
“파리에선 이미 순전히 논리적인 설득만으로 광인을 치료하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실험이 행해진 모양입니다. 최근에 작고하신 어느 권위 있는 교수가 그러한 치료방법을 생각해냈더군요. 그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해서 착상했던 거죠. 즉, 광인이라 해도 신체조직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광이라 함은 소위 논리적인 오류이며, 판단의 잘못이고, 사물에 대한...그릇된 견해라는 것입니다. 그 교수는 환자를 하나하나 모조리 설득하여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다만 교수는 그 치료법에 있어서 샤워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치료의 결과에 의심할 여지가 남아있었던...모양이더군요.” 네이버 웹툰 코너에서 연재되며 최고의 평점9.9를 받은 2011년 최고의 화제작 웹툰 꼬마비노마비의 “살인자ㅇ난감”이 애니북스를 통해 3권의 책으로 묶여져 독자들에게 선사되었다. 온라인 매체인 웹진에서 지면이 아닌 모니터를 통해 보는 만화 ‘웹툰’은 이제 완전히 하나의 새로운 문화장르로 자리를 잡았고 매년 이런 신선한 신인작가들과 완성도 높은 훌륭한 작품들을 배출하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니터 앞에 고정시켜놓고 있다. “아저씨, 뭔가 죽어 마땅한 짓 한 적 있지 않아요? 분명 있을 거예요, 물론 말하기가 쉽진 않을 거예요,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자나요. 그게... 죽어 마땅한 범죄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듣고 싶은 건 그거예요, 그리고 아저씨는 분명 그런 일이 있었을 거예요.” 이 센세이셔널하고 충격적인 작품에 언론과 평단을 비롯한 많은 네티즌들은 최고의 관심과 찬사를 보냈고, 결국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며, 2011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면서 이 작품의 긴 여정은 끝을 맺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전하고 싶다. 흔히 대화 몇 마디를 해놓고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고 여기는 게 있지 않나. 그런 오해에서 빚어지는 공포가 있을 것이다. 실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도 내가 사람들에게 저질렀거나, 저지를지 모르는 실수에서 오는 공포다.”(씨네21 인터뷰 중에서 발췌) 작가의 말로는 “죽음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며, 이 작가가 그리는 일상적인 공포는 당분간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 묘사될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의 블로그에 “죽음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인 “S-line”에 대한 연재예고 글이 12월부터 시작된다고 공지되었다.) “무난, 어중간, 평범, 나를 표현하는 한 마디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 사이엔 큰 차이가 없다. 적당히 매너 있고, 적당히 음흉하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평범이란 단어는 평범 이하의 그 어떤 경계를 칭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 평범이 싫었던 나는 상상 속에서나마 외제차를 몰았고 연봉은 대한민국 상위1%에 감당하기 힘들만큼 인기가 있었지만, ‘로또도 긁는 놈이 된다’는 말처럼 노력 없는 기대 외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으니 변하는 것도 없었다. 그날까지는” “살인자ㅇ난감”에는 두 명의 핵심인물과 두 명의 중요한 조연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먼저 작품의 주인공이자 ‘살인자’ 역의 “이탕”은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능력의 소유자다. 우연히 실수로 시작된 살인으로 벌벌 떨며 죄의식에 시달리던 평범한 청년 “이탕”은 자신의 이 불가사의한 능력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살인”이라는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행위를 중범죄인 “살인”이 아닌 “죄에 대한 징벌”, 또는 “사회 정화” 차원의 어떤 숭고한 임무로 받아들여 마치 헐리웃 영화의 슈퍼히어로인양 행동하게 된다. 이런 “이탕”과 대척점에 서있는 형사 “장난감”은 무척이나 시니컬한 성격에 아픈 과거를 지닌, “아주 감이 좋은” 능력 있는 형사다. 경험과 재능을 동시에 갖춘 이 뛰어난 민완 형사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연쇄살인들이 무언가 하나의 거대하고 치밀한 룰에 따라 자행되는 것임을 어느 순간 확신하게 되고 서서히 사건의 중심인 “이탕”의 존재에 다다르게 된다. 작품은 이 두 명의 대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조연인 “전직 경찰 송촌”과 “범죄 오타쿠 노빈”이 등장해 이야기의 구성을 풍부하게 하면서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고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피해자’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가해자’가 돼, 그만큼 바뀌기 쉽지.”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이 탄탄한 스토리의 정통파 하드보일드 스릴러가 4컷 만화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신문 한 구석에서 조그맣게 그날그날 시사에 관한 풍자를 날리는 목적으로 구성되어지는 4컷 카툰의 “형식”을 이런 어둡고 무거운 장편 극화의 표현 형식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이 작가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잔인하고 묵직한 연쇄살인의 이야기를 아주 귀여운 팬시 캐릭터 모양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4컷의 형식으로 풀어나감에 있어,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전혀 어색하지 않게, “쭈욱~”하고 이어져나가는 매끄러움에 있다. “이야기의 성격상 처음 구상한 그림체는 지금과 달랐다. 원래는 프롤로그에 나온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사실적인 그림이 점점 어려워지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미묘한 표현들이 오히려 살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무기를 찾는 한편, 귀여운 그림으로 센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씨네 21 작가인터뷰 기사에서 발췌) 어느 매체와 행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한 이 말은 이런 새로운 시도가 온라인 매체에서 모니터로 만화를 보는 독자들에게 “딱 맞게” 받아들여지며, “레알 몰입도 쩌ㄹ어”라며 열광하는 이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보지도 못했지만...봤다한들 말하겠습니까? 매일 밤 꿈에 딸아이가 나와서 울었어요...돌로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제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딸한테 미안할 뿐입니다....형사님들한테는 범인일지 몰라도...저한테는 은인입니다.” 이 독특하면서도 절묘한 웹툰은 책으로 출간되면서 또 다른 매력을 얻게 되었다. 모니터에서 바라본 세로로 “스크롤 내리기”의 긴장감과는 또 다른, “콘텐츠 가로 읽기”의 배치에서 느껴지는 깊이 있는 무게감이 추가된 것이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당신의 일상에 아주 색다른 자극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