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사 온 오래된 아파트, 옆집에는 이상한 여자아이가 산다. 그 애 이름은 아코니, 나와 동갑, 그 애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괴기 소설가인데 밤에만 일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 애는 한밤중에 종종 혼자서 복도나 계단에서 쥐와 논다. 나는 잠자지 않고 먹지 않고 나이도 안 먹어, 왜냐하면 이미 죽었으니까, 그 애는 그렇게 말한다. 이상하지만 무척이나 귀여운 그 애, 그런 여자애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양의 노래”, “환영박람회”, “흑철”, “모르모트의 시간”, “모모네”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한 일본 작가 토우메 케이의 신작이 출시되었다. 신작의 제목은 “아코니”, 시간이 멈춰 더 이상 늙지 않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는, 열세 살 모습의 아름답고 신비한 소녀가 주인공인 판타지로 제목인 ‘아코니’는 그 소녀의 이름이다. “이 아파트는 자기 의지를 갖고 있어, 일본에는 오래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이 있잖아, 오래된 물건이 요괴로 변하거나 하나의 생물로 확립되는 거야.” 아름답고 환상적인 느낌의 빼어난 작화력,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은근히 건드리는 감수성, 판타지면 판타지, 리얼 스토리면 리얼 스토리 모두 유려하게 잘 뽑아내는 구성력,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토우메 케이는 분명히 ‘천재의 영역’에 속해있는 작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사실 일본에서도 그런 모양이지만) 토우메 케이는 팬들 사이에서 “미완의 작가”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위키백과사전에 올라있는 그의 프로필을 보면,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프로필을 살펴보면, “제로”(1995, 1권 완간), “우리들의 변박자”(1995, 1권 완간), “흑철”(1996~, 5권까지 발매), “양의 노래”(1995-2002, 7권 완간),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1999~, 6권까지 발매), “루노”(2002~, 1권 발매), “문차관내방기”(2004, 국내 미간행), “환영박람회”(2004~, 2권까지 발매), “모르모트의 시간”(2004-2008, 4권 완간), “아코니”(2004~2010, 3권 완간), “모모네”(2010, 1권 완간)이며, 토우메 케이는 총 11개의 타이틀로 30권의 단행본을 그렸다. 그 중에서 완간된 것이 6개의 타이틀로 총 17권이며, 나머지 5개의 타이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1개의 타이틀 중에서 6개의 타이틀을 완결 지었다는 것은 결코 “미완의 작가”라고 불릴 만큼의 나쁜 성적은 아니다. 그런데 왜 토우메 케이에게는 상업 만화작가로서 치명적인 이런 닉네임이 붙었을까? 그건 바로 “시간”과 “주기” 때문이다. 주간잡지에 연재하는 만화작가들의 경우, 4개월에 한 권정도의 단행본이 출간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이클이다. 그런데 토우메 케이는 1권을 만드는데 업계의 눈으로 볼 때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심지어 아직 완결이 안 된 작품도 많다. “양의 노래”같은 경우 7권을 만드는데 7년이 걸렸고, “모르모트의 시간”같은 경우 4권을 만드는데 4년이 걸렸다. 대표작인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같은 경우는 1999년에 시작한 작품이 2011년인 지금 현재 7권까지 나와 있다.(2011년에 7권이 출시되었다. “환영박람회” 같은 경우에도 2011년 현재 한국어판으로는 3권, 일본에서는 4권까지 출시되었다. 위키백과사전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런 패턴은 상업 만화작가로서 결코 좋은 패턴은 아니다. 작가 개인에게 어떤 사정이 있겠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결하고 다른 작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토우메 케이는 그 때 그 때 무언가가 떠오르면 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타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1995년에 3개의 타이틀이 시작되었고, 1996년에 한 타이틀, 1999년에 한 타이틀, 2002년에 한 타이틀, 2004년에 무려 4개의 타이틀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런 행보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결코 쉽게 사거나 읽어선 안 된다고, 기다리는 시간도 짜증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대표작인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같은 경우는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다음 권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토우메 케이가 “미완의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얻게 된 원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에도 불구하고 토우메 케이는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더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아주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가다. 토우메 케이만이 내뿜는 특유의 분위기,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실력의 작화, 사람들의 정서에 미묘하게 다가오는 잔잔한 이야기와 깔끔하고 세련된 연출력 등등, 칭찬을 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작가다. 1970년생의 여자 작가로 다마 미술대학 유화과를 나온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무한의 주인”의 작가 시무라 히로아키와 대학동아리 선후배사이이며(토우메 케이가 선배라고 한다) 그에게 연필화 기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전설이다. “몰라...어디에 있는지...일본에 온 것은 엄마를 찾기 위해서야....아빠는 10년이나 엄마를 찾고 있어, 하지만 엄마의 행방은 알아내지 못했어...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엄마를 기다리기로 한 거야, 여기에 있으면 언젠가 꼭 엄마가 올 거라고 믿어, 왜냐하면, 여기는 엄마가 태어난 곳이니까.” 어찌됐든,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 “아코니”는 영어로는 “ACONY”, 말 그대로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며,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신비한 공간이자 스스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쇼와 초기에 지어진 80년도 더 된 ‘살아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신비한 주민들의 이야기다. 아파트 관리인인 요시오카는 긴장하면 실체가 사라지는 ‘유령’이며, 프리랜서 편집자이며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 미소노는 뱀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요괴’다. 아파트와 혼연일체가 되어 상주하며 아코니의 좋은 친구인 귀여운 ‘정령’ 자시키와라시도 있고, 저주에 걸려 개구리의 모습으로 변한 에도시대의 무사도 있다. 남자 주인공인 13세의 소년 우츠키 모토미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이런 이상한 존재들을 받아들이는데 선입견이나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자 메인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비밀을 지닌 신비한 소녀 ‘아코니’와 이사 온 첫 날부터 친구가 된다. 주인공인 ‘아코니’는 10년 전에, 지금은 실종된 엄마의 미국연구실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을 때, 이미 한 번 ‘죽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망판정을 받은 다음날 새벽 아코니는 다시 살아났고 그 이후부터 그녀는 13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렇게 분명히 정상은 아닌 아코니이지만, 엄마를 찾기 위해 괴기소설가인 아빠와 일본으로 건너온 후 이 ‘기괴한 아파트’ 안에서 ‘이형(異形)의 존재’들과 나름 잘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모토미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를 둘러싼 주위의 환경이 서서히 변해가고 멈춰있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그녀를 둘러싼 사건도 진행되어가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코니”는 3권으로 완결되었다. 한국어판으로는 현재 2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 기괴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의 완결을 볼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