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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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나는 2009년 겨울에 죽었다. 죽음의 순간은 찰라였으며, 책에서 익히 본대로 내 인생의 주요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꽃에 둘러 쌓여있다. 친척들, 예전 직장 동료들, 불알친구들, 모두들 절을 두 번씩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내가 죽긴 죽었나보다....

2011-11-29 유호연
“나는 2009년 겨울에 죽었다. 죽음의 순간은 찰라였으며, 책에서 익히 본대로 내 인생의 주요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꽃에 둘러 쌓여있다. 친척들, 예전 직장 동료들, 불알친구들, 모두들 절을 두 번씩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내가 죽긴 죽었나보다... 이 사람들은...낯설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죄를 짓는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아 먹어야만 하고, ‘충돌’을 피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말이나 행동으로 끊임없이 남을 속여야 하고, ‘욕심’을 자제하지 못해 다른 존재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인간이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완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지엄한 자연계의 법칙을 냉정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식물이나 동물 같은 순응적인 태도를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삶의 태도로서 ‘편리’를 이야기하고, ‘유희’를 즐기며, 경제적으로는 ‘잉여’의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끝없이 커져만 가는 인간의 욕망은 ‘이성(理性)’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끊임없이 자연계의 법칙을 파괴해왔으며 이제는 환경 자체가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과연 인간에게 자제심이란 없는 것일까? “공존(共存)”이라는 테마의 깊은 뜻을 깨닫고 아주 예전부터 세계의 이치를 깨우친 앞서간 현자(賢者)들은 욕망에 눈이 멀어 자제력을 잃은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설파해왔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고, 그것만이 너희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모든 것은 가혹한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인류의 원죄(原罪)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돌멩이에도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숨어있다고 설파하신 부처님이나, 인(仁)으로써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군자의 기본 도리라고 설파하신 공자님이나 다 근본은 같은 말씀이셨다. 욕심을 자제하고, 쉽게 살려고 노력하지 말고, 다른 존재의 존엄을 인정하고, 어떤 때라도 정도(正道)를 걸으라고 말이다. “앞으로 49일 동안 재판을 받게 될 거예요, 일곱 분의 신께 일주일씩, 그래서 49일이에요” 그러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봐야 고작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에게 그런 거대하고 심오한 진리가 먹힐 수 없었다.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데 유용한 규칙은 자본주의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대전제로 잡은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라는 국부론의 문구가 가장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지옥(地獄)’이라는 개념은 ‘사후(死後)세계’라는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통해 현세의 삶에서 죄를 많이 지은 자일수록 죽어서 처절할 정도의 고통을 끊임없는 받는다는 막연한 공포를 인간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고 있다. 물론 21세기가 된 현재까지 아무도 사후세계와 지옥의 존재를 실제로 증명할 수 없었지만 이 개념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때론 종교로, 때론 도덕의 근원으로, 때론 신화로, 때론 야사로 기록과 구전(口傳)을 통해 대물림되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유일하게 평등한 최대의 공포, ‘죽음’의 개념과 맞물려 완벽한 판타지로서, 묵직한 제어장치로서 인간 사회 속에서 기능해왔다. “모든 영혼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49일간의 재판을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저승시왕(저승의 열 명의 신,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閻羅大王)은 그 중에서 다섯 번째 신이다)이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역사와 전통에 따라 확고하고 흥미진진하게 사후세계와 지옥의 개념이 확립되어있다. ‘49일’동안 저승의 일곱 명의 대왕들에게 받는다는 사후재판제도, 육도(六道,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되는 6가지 세계 또는 경계,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도로 이루어져 있다)의 문(門)이라는 환생개념, 각각의 재판을 담당한 대왕들이 심판하는 죄의 덕목과 그에 따라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 지옥의 모습 등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처럼 한국의 사후세계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모습으로 ‘공포’를 심어준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한, 잘 만들어진 ‘신화’로서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신과 함께-저승편”은 바로 이 한국의 사후세계를 소재로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고,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진리를 풍자와 해학 속에 숨겨놓은, 오랜만에 만난 수작(秀作)이다. “첫 재판이 열리는 곳은 진광대왕의 도산지옥입니다. 칼 도(刀)에 뫼 산(山)...칼로 이루어진 산이란 뜻이죠, 두 번째 재판은 초강대왕의 화탕지옥, 펄펄 끓는 거대한 무쇠 솥이 랜드마크죠, 세 번째는 송제대왕의 한빙지옥, 이 재판에서 패소하면 얼음감옥에 갇힙니다. 주로 불효쪽 전문이죠, 네 번째는 오관대왕의 검수지옥, 잎사귀가 칼인 숲속에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한 죄를 다스리고, 다섯 번째는 염라대왕의 발설지옥, 이 분은 저승시왕의 아이콘인데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죠, 여섯 번째는 변성대왕의 독사지옥, 이 양반은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 전문이죠, 마지막 일곱 번째는 태산대왕의 거해지옥, 거해란 톱으로 썰어서 분해한다는 뜻이죠, 상법전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재판이 끝나면 49일이 됩니다. 이승에선 그동안 자홍씨의 승소를 빌며 49재를 지내겠죠.” “신과 함께-저승편”에서는 현대적으로 아주 재밌게 변환된 저승의 모습이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저승행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저승입구 앞에서 영혼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자신이 변호할 의뢰인을 찾는 저승 변호사들, 인터넷을 배우는 염라대왕, 세련된 양복을 검은 입고 죽은 자의 영혼을 데리러 가는 저승차사들, 삼도천을 건너는 모터보트와 전함 등등 작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구성된 저승의 모습이 아주 재미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후세계 원래의 개념을 훼손했다거나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왜곡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무섭고 잔인할 수도 있는 지옥의 모습들이 유쾌하고 친근하게 다가와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준다. 본편인 의뢰인 김자홍과 변호사 진기한 이야기 외에도 액자식 구성으로 끼워져 있는 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이야기도 읽는 이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훌륭하게 만들어진 스토리다. 작가인 주호민은 “신과 함께-저승편”이 사후세계를 다룬 3부작 중 1부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미 영화판권도 팔렸고, 일본의 만화잡지 ‘영 간간’에서 일본 작가의 손에 의해 그림만 바꾼 정통파 장편 극화로 리메이크된다고도 한다. 현재 이 만화가 연재된 네이버 웹툰 코너에서는 2부에 해당하는 “신과 함께-이승편”의 연재가 완결된 상태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