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가 무어더냐? 사람(人)은 두 발로 서있다. 사람들의 운수를 짚어주어 일어날 일을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卜). 이렇게 사람 팔(八)자를 짚어주는 것을 점(占)이라고 한다. 점쟁이, 이들은 타인의 팔자를 짚음으로 갓 쓴 이(大)처럼 살려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다. 밑바닥(下)이라는 소리다. 타인의 불안감(不)을 떨쳐주지만 자신이 떠안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마음(心)에 상처를 입고 이를 알아챌 무렵, 그들은 선택을 한다. 산으로 들어가(入) 신선(仙)처럼 사느냐, 욕심 큰(大) 놈들에 붙어 갸이(犬)처럼 사느냐, 아니면...나처럼 갓 비뚜루 쓰고 재주(才)껏 살든가, 차암 사는 게 똥(便) 같다고? 어쩔 수 있간디. 점쟁이도 사주팔자에 묶여있는(束) 사람이니. 점쟁이도 사람이니...“ 한국 만화시장에 ‘웹툰(webtoon)’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난 지도 어언 10여년이 되어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무섭게 체감될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통신환경 속에서 ‘무료 콘텐츠’라는 양날의 검을 무기로 삼아 웹툰 장르는 수많은 대중들의 댓글과 조회수를 양분삼아 가공할 속도로 성장을 계속해왔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성장하려면, 기존의 낡은 것들은 공격을 받아 상처입고 부서지며 쇠락해가고, 성장의 속도에 비례하여 수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나며, 성장한 크기만큼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어 먹이사슬 같은 조직도가 그려지고 그 룰에 따라 토대가 만들어진다. 웹툰이라는 장르가 생겨난 이후, 기존의 출판만화계는 웹툰의 속도와 위력을 감당하지 못해 패주하며 쇠락을 거듭해 왔고, 무료와 유료, 저작권과 상품권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법적충돌이 벌어졌으며,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절대강자들을 중심으로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양대 포털사이트가 ‘웹툰’ 매체를 운영하며 만화산업계의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마츠모토 군, 이시경이란 자를 아는가? 점술사일세, 그것도 몇 백 년 전의, 운현궁을 수색하던 중 예언서를 찾았다네, 이시경은 그 서책의 글쓴이고, 규장각에서 부용지 절경을 내려보며 술잔을 기울인 자, 총구를 올려보며 절명하리, 이 책이 쓰여진 당시 조선엔 총이 없었다고 알고 있었기에 위서거니 했건만...군부대신이 말하길 ‘총통’이란 게 있었다더군, 이시경이란 자가 짚어낸 건 ‘총구’가 아니라 규장각일세, 이 책이 쓰여지고 이백년 뒤에야 규장각이 세워졌더군.” 위에서 간단히 짚었듯이, 웹툰의 사회적 의미나 산업전망 같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웹툰은 그 장르가 사회에 끼친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딱 하나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재능들”의 ‘열린 발굴’이다. 예전에 한국의 만화잡지들을 3개의 출판사가 독점하여 출간하던 시절, 만화가가 되려면, 기성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몇 년간 기초를 쌓은 후 편집자를 소개받아 연재를 따내어 작가로 데뷔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고, 소위 말하는 ‘공장 만화’를 만드는 대본소용 상품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독립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 당시에 만화가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고, 설령 된다하더라도 ‘지면(誌面)’의 한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작품을 발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많은 재능들이 이름조차 걸어보지 못한 채 사라져 간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지면이 펼쳐진 이후, 수많은 재능들이 대중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만화 잡지라는 유료매체는 아니었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대중을 매료시키는 이야기꾼들과 모니터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정비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작화가들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마치 막혀있던 둑이 무너지며 홍수가 나는 것처럼 한국 만화계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수많은 ‘새로운 재능’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대중들은 ‘무료’로 이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맛난 과실을 맛볼 수 있었다. “음...스무 해가 지나고 말야, 이곳에 전쟁이 일어날 걸세, 오랑캐...왜구라네, 동래성이 함락되고 한양이 불타오를 걸세, 이곳도 무사할 리 없지, 권씨 성을 가진 장군이 병마를 끌고 와 이 근방에 진칠 곳을 찾을 진데...만에 하나 목숨을 연명하여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이곳으로 뫼시게.”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포천”은,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이시경이라는 점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정사와 야사를 뒤섞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엮어낸 웹툰이다. 이시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이 작품의 포인트로 점술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이용,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를 ‘점’이라는 기술로 시공을 초월해 엮어냄으로써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배해놓은 것이 이 작품의 특장점이다. 흥선대원군, 김정호,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박정희, 권율, 이이, 이황, 서경덕 등등 실제 인물들과 전우치, 홍길동, 정여립 같은 가상의 인물들이 이시경의 여행 속에서 뒤섞여 재미있는 사극 한 편을 만들어내는데, 가상과 실제, 허구와 현실을 유려하게 믹스하는 작가의 기술이 실로 절묘(絶妙)하다. “백운학이란 이름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관상가 박유붕, 고종의 즉위를 예언한 대가로 흥선 대원군에게 현감 벼슬을 받아내고 후일 정3품 수사함까지 올랐다. 하지만 권력 싸움에 휘말릴 것을 예견한 그는, 더 이상 관상을 보지 않으려 남은 한쪽 눈을 지져 봉한다. 그리고 얼마 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작품은 유승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작품으로 주목받는 웹툰으로서는 드물게 네이버와 다음이 아닌 ‘스포츠동아’라는 언론사 사이트에서 무료로 연재되고 있다. 현재 애니북스를 통해 단행본으로도 3권까지 나와 있으며, 책에서는 모니터와 다르게 또 다른 편집방식을 써서 매체에 따라 읽는 이를 편하게 해주려는 작가와 편집부의 기분 좋은 배려가 돋보인다. 특히나 눈에 띠게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은 주인공 이시경이 애꾸눈이 된 사연과 그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화담 서경덕의 이야기, 서경덕에게 도술 대결에서 패해 아우가 되었다는 도사 전우치, 서경덕의 제자이자 ‘토정비결’을 저술한 토정 이지함 등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뚜렷한 메인 스토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넘나들며 너무 많은 야사와 정보들이 넘쳐나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점이었다. 그러나 재미있고 유익한 만화임에 틀림없으니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