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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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버그

“안개 낀 나라...‘엘두라’...사방이 ‘보더’라 불리는 낭떠러지로 에워싸여 세상과 격리된 천공의 비경....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그리고 죽었다. 나도 조상님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살다 결국은 여기서 죽...

2011-11-14 석재정
“안개 낀 나라...‘엘두라’...사방이 ‘보더’라 불리는 낭떠러지로 에워싸여 세상과 격리된 천공의 비경....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그리고 죽었다. 나도 조상님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살다 결국은 여기서 죽을 거라고...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까지는...” 「린드버그 (Lindbergh, Charles Augustus)」: 미국의 비행기 조종사ㆍ군인(1902~1974). 1927년 5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무착륙 단독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31년 북태평양 횡단 비행에도 성공하였다. 이카루스의 신화로 상징되는 인간의 하늘에 대한 끝없는 동경은 결국 ‘비행(飛行)’ 기술을 확립해 여객기로 지구 곳곳을 여행하고, 음속보다 빠른 전투기로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되었으며, 대기권을 뚫고 달에까지 갈 수 있는 우주선마저 개발하였다.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행위, 즉 ‘비행(飛行)’은 오랜 시간동안 인류의 판타지로서 기능해왔고, 실제로 그 꿈이 실현된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하늘을 난다’라는 행위는 꿈과 모험, 어딘가 있을 이상향, 신(神)들이 사는 곳 같은 판타지의 무대로서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린드버그”는 재일교포 작가 안동식의 “비행(飛行) 판타지”로 현재 한국어판으로 2권까지 나와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하게 하는,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인 소년의 모험을 스펙타클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전형적인 판타지 만화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는 새처럼 하늘을 날려는 행위가 금지되어있다. 오르니소스 왕가의 문장인 새의 날개는 신성한 것이라,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은 왕에 대한 불경죄...라고 한다. 하기야...동경한다고 해서 꼭 실현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 메리우스는 작년에 사람들이 ‘보더’라 부르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돌아가셨다.” 주인공인 니트가 살아가는 안개의 도시 ‘엘두라’는 모든 비행 조종사들의 목표이자 꿈인 ‘환상의 도시’지만 정작 엘두라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천공의 성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보더’라 불리는 절벽을 경계로 자욱한 안개 속에 쌓여있고, 보더 바깥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금지된 이 조그맣고 신비스러운 도시는 자신들만의 룰에 따라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엘두라의 바깥세상에서 바라본 그곳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황금의 땅’이자,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천공의 도시’다. 비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엘두라’는 언젠가는 꼭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꿈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엘두라’에 ‘샤크’라 불리는 외지인이 자신의 비행체와 함께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양치기 소년 니트에게 비행기를 타고 엘두라에 도착한 이 낯선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증명이자 ‘비행범의 아들’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핍박받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가 된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아버지가 남겨놓은 ‘날개’를 타고 샤크와 함께 ‘엘두라’를 탈출한 니트는 그동안 몰랐던 엄청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엘두라’가 어마어마하게 큰 비행체의 등위에 조그맣게 기생하는 도시였고, 언제나 하늘 위를 떠다니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에게는 찾아 갈래야 찾아갈 수 없는 환상의 도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엘두라’를 탈출한 직후부터 니트는 정신없는 모험의 세계로 곧장 빠져들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샤크는 ‘샤크 공적단’의 두목으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공적(空賊)’이었던 것이다. 샤크의 모함(母艦)에 올라타자마자 니트는 하늘위에서 상선과의 전투에 휘말리고, 비행기의 원리에 대해 배우고, 비행전투 기술을 습득하는 정신없는 여정을 소화하게 되면서 “린드버그”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잘 들어, 오늘 아침에 왕궁에서 너희가 날았던 건, ‘비행’이라기 보단...정확히는 그냥 ‘점프’에 가까웠어, 린드버그란 신기한 생물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뒷발은 공기를 붙잡을 수 있어, 다시 말해...공기를 박찰 수 있단 말이지, 그럼, ‘점프’를 ‘비행’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날개’야, 새를 봐라, 잘 관찰하면 알 수 있겠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후에는 거의 날개를 움직이지 않지? 날개로 바람을 타기 때문이야, 린드버그도 마찬가지, 하늘로 점프한 후엔...보다 ‘멀리’, 보다 ‘안정되게’ 바람을 타는...그런 ‘날개’가 필요한 거야, ‘사람’과 ‘린드버그’는 둘이서 하나...내가 온 나라에선 다들 그렇게 창공을 날아다녔어.” “린드버그”의 참신함은 설정에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린드버그’란, 새처럼 하늘을 나는 신기한 동물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비행기가 이륙할 때 추진력을 발휘하는 ‘엔진’같은 힘을 지닌 신비한 동물로 이 이야기 속에서는 다양한 종(種)이 있고, 전투용이나 교통수단으로 품종개량을 하기도 하며, 사람들의 손에 의해 농장에서 길러지는 ‘비행용 동물’인 것이다. 기능과 종류에 따라 각각의 생김새가 다른데, 어떤 린드버그는 공룡을 닮았고, 어떤 린드버그는 물고기를 닮았으며, 어떤 린드버그는 거북이를 닮은 것도 있다. 하지만 린드버그의 공통점은 인간이 만든 ‘날개’를 장착하고 비행기의 몸체가 되어, 자신의 발로 공기를 붙잡아 박차서 추진력과 속도를 얻는 신비한 생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안의 ‘비행(飛行)’은, 조종사 개개인이 각자의 린드버그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른 후, 장착된 날개를 조작하여 바람을 타는 행위인 것이다. 주인공인 니트의 린드버그 ‘프라모’는 굉장히 귀엽고 조그만 강아지같이 생긴 린드버그인데, 샤크와 같은 유명한 공적(空賊)도 처음 보는 신기한 능력과 생김새를 지닌 린드버그다. 주인공인 니트와 찰떡궁합으로 붙어 다니는 ‘프라모’는 이 작품의 상징이자 아이콘이며,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쨌든, 아직 2권 밖에 나오지 않아서 딱 부러지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작화도 매우 훌륭하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한 편이며, 무엇보다도 판타지의 생명인 설정이 아주 괜찮은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4권까지 나와 있다고 하니 앞으로를 기대하며 봐도 좋을 작품인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매우 훌륭한 작화가 코믹스 판형에 갇힌 듯이 보여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의 판타지이므로 이런 류를 좋아하시는 독자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