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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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클레피오스 (절개마)

“유럽의 어느 시대, 교회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교리에 의문을 표한 신학자, 교회가 인정하는 학설에 반론을 제기한 연구자,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단자라는 오명을 쓰고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 시대가 확실히 존재했다....” 만화적 재미의 기초를 이루...

2011-10-31 만화규장각
“유럽의 어느 시대, 교회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교리에 의문을 표한 신학자, 교회가 인정하는 학설에 반론을 제기한 연구자,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단자라는 오명을 쓰고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 시대가 확실히 존재했다....” 만화적 재미의 기초를 이루는 두 기둥이 있다면 스토리와 작화일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 속에서 ‘세계관’이라 불리는 설정과 규칙,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법이 바로 스토리와 작화다. 그래서 스토리가 탄탄할수록,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올수록, 그 작품에 대한 몰입도는 상승된다. 스토리와 그림을 잘 결합하는 연출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초가 단단해야 그것도 가능한 것이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잘 만들어진’ 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제 1급 이단자’라 불리던 천재 외과 의사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재미있게 만화로 풀어낸 일본작품 “아스클레피오스”다. “다들 잘못 알고 있는데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아스클레피오스는 ‘절개마’가 아니라, ‘의사’예요!”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전래한 ‘방랑의사(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각 지역을 떠돌며 의료행위를 하던 의사)’ 가문인 “메딜 가”의 당주 “버즈 메딜 아스클레피오스”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의학판타지’ 만화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외과기술을 가진 메딜 가 일족은 ‘이단자’가 되어 교회에 쫓기면서도 1000년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왔으며, 현 당주인 버즈 역시 ‘제 1급 이단자’로 분류되어 교회가 파견한 성기사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숨긴 채로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이 만화의 뛰어난 점은 설정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의학과 종교, 역사 등 각 분야의 픽션과 논픽션을 제대로 섞어놓은 것도 훌륭하지만, ‘의학’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소재를 중화하듯이 버즈의 조수이자 호위무사인 “로잘리 텔레스포스” 같은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만화적 재미도 적절하게 구색을 맞춰놓았다. “로잘리가 왔으니까 이젠 걱정하실 것 없어요! 호위무술도 확실히 익혔고 수술 보조도 거뜬해요! 자, 이걸 보세요! 아스클레피오스의 증표! 지팡이 ‘바르가’와 혈명록 ‘비블로스’!! 이걸 받아주세요!!” 흔하게들 얘기하는 명작의 기준은 ‘재미와 감동’일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한국어판으로 아직 2권밖에 출간되어있지 않아서 이것이 과연 명작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만화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화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화로서 재미와 감동을 모두 전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은 당연히 명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도달하기 상당히 어려운 일이란 걸 독자도 작가도 편집부도 잘 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오랜만에 만난 ‘명작의 싹수’가 보이는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권수가 쌓여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다채롭게 변화하면서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