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어떻게 보십니까? ‘폭탄 틀’ 최초의 여자인 셈인데....” 여러 명의 회사임원들이 모여 신입사원 한 명의 채용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응시자가 성별이 여자라는 것 외에는 다른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그녀가 ‘폭탄’이냐 아니냐 하는 것, 여기에서 말하는 ‘폭탄’, 또는 ‘폭탄 틀’은 ‘기업 측에서 획일적인 인재들만 모이는 것에 대한 경각 차원에서 엉뚱하고 뭔가 번뜩이는 구석이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임원들의 갑론을박을 인자해 보이는 사장님의 한 마디가 종결시킨다. “뭐, 괜찮지 않겠나?”, 일본의 천재 만화가^^ 사사키 노리코가 새롭게 창조한 강렬한 캐릭터 유키마루 하나코가 홋카이도 방송국 HHTV에 신입사원으로 채용되는 순간이다. “전체적으로는 박력이 좀 떨어져도 임팩트 있는 영상을 클로즈업해 넣어주면 나름 땜빵이 되는 게 TV야, 단, 인물이나 5백 엔짜리 동전 같은 걸로 비교하지 않으면 크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도 TV지, 서있을 때는 상징적인 배경을 골라야 돼.” 사사키 노리코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작가다. 그녀의 대표작 “동물의사 닥터 스크루”를 비롯해 기상천외한 레스토랑을 무대로 한 “헤븐”, 철도 오타쿠들을 등장시켜 엉뚱하다 못해 발랄해져버리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월관의 살인”, 간호사들의 리얼한 업무 상황들을 특유의 코믹함으로 풀어낸 “못말리는 간호사” 등 그녀의 작품은 그녀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강렬한 개성으로 특유의 개그코드를 만들어내고 독자들을 중독 시킨다. 한 번 사사키 노리코의 월드에 빠져들면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든, ‘엄청난 마성’을 지닌 무섭고도 두려운^^ 작가라 하겠다. 일반적인 ‘만화’의 정석적인 개그코드와는 전혀 다른,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식”, 이 강렬하고도 창조적인 개성을 지닌 만화가 사사키 노리코는 분명 ‘천재’다. “뉴스가 완성되기까지(HHTV의 경우) : 취재(기자, 카메라맨, 조수 셋이서 한 팀이 됨) ? 방송국으로 돌아가 구성을 짜고 원고쓰기 ? 원고 데스크 체크 ? VTR편집, 그와 병행하며 자막 작성 ? 방송을 대비한 준비, 확인 ? 방송” 여기에 소개하는 사사키 노리코의 신작 “채널고정!”(서울문화사, 현재 한국어판으로 2권까지 발행 중)은, 엉뚱하다 못해 기상천외한 발랄함을 지닌 신입사원, 보도기자 유키마루 하나코의 좌충우돌, 엉망진창 방송국 생활 이야기다. 사사키 노리코의 여자 주인공들은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행동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마구 저지르는 무대책의 민폐형 캐릭터지만, 항상 직업만큼은 수의사, 간호사, 작가 등 확실한 전문직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나 확실한 마이 페이스 스타일의 여자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무언가를 달성하기위해 무대책의 민폐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마구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하던 스타일대로 행동해버리면 그런 결과들이 뒤따라온다는 것이 더더욱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났으면 다시는 상종하기 싫을 정도의 여자 주인공들의 이러한 패턴이 회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확실한 개성으로 독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녀의 성격과 패턴에 중독되어가기 시작하면서 ‘다음 회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준다는 것이 사사키 노리코가 창조해낸 독특한 구성법이라 하겠다. 이러한 민폐형 여자 주인공들을 백업하는 역할로 “능력 있는 바른 생활 사나이”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항상 그녀들이 저지른 무대책의 민폐들을 수습하는 건 거의 대부분 이 이 남자들이며, 이 남자 주인공이 없다면 여자 주인공의 개성이 부각되지 못할 정도로, 작품 자체의 틀에서 밸런스를 유지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구성법이라 하겠다. 사사키 노리코만이 할 수 있는 그녀만의 독특한 개그 코드나 만화적 재미는 대부분 이 두 가지 구성패턴이 합쳐져서 벌어지며, 만화의 정석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는, 남용하다보면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이 패턴을 또 다른 조연들, 그것도 주인공들 못지않은 아주 강렬한 개성을 지닌 다수의 인물들을 매회 등장시킴으로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고 만화적 재미를 극대화 시킨다. 결국 사사키 노리코 만화의 특징은 “강렬한 캐릭터”라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여자 주인공의 강렬함이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발 늦었다, 낙종, 중대한 뉴스를 입수하지 못한 것, 한 곳만 그러면 특히 더 망신스럽다, 반대말은 특종” “채널 고정!”은 그간 보아온 사사키 노리코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높은 만족도를 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 중 가장 최근작이라는 것도 이유의 한 가지가 될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방송국”이라는 작품의 주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 때문일 것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방송의 세계(물론 일본의 지역 민방을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사정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를 자신만의 민폐형 개성으로 휘저어놓는 유키마루의 기상천외함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유발되고는 하는데, 그 이야기는 곧 사사키 노리코가 방송국이라는 무대를 아주 세밀하고 다양하게 주무르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유키마루의 좌충우돌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올곧은 모범생 남자 주인공 야마네를 만나 보도기자의 업무나 뉴스 만들기의 정석을 알 수 있게 되고, ‘방송국의 두뇌’라 불리는 편성국의 업무를 키타가미를 통해 볼 수 있게 되며, “방송의 꽃”이라는 여자 아나운서의 실상을 하나에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세밀함과 다양성이 정석적으로 작품 안에 녹아있고, 매 회마다 이 잘 정돈된 정상인들의 업무 공간을 우리의 여자 주인공 유키마루가 마구 흔들고, 부수고, 혼란스럽게 만들다가 결국 자신도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하지만 특유의 엉뚱함, 타고난 밝은 천성과 단순한 성격을 무기로 정면 돌파 하다보면 주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의도치 않은 도움도 주게 되고, 기적적인 운이 발동하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해피 앤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사키 노리코의 신작 “채널고정!”, 우울한 분들에게 적극, 강력, 필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