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DienBienPhu
“1973년 1월 27일에 맺어진 파리 휴전 협정으로, 3월 29일 베트남 전 영토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끝과 시작,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1965년으로” 『대부분의 경우, 진짜 전쟁 이야기라는 것은 잘 믿으려고 하지...
2011-10-25
유호연
“1973년 1월 27일에 맺어진 파리 휴전 협정으로, 3월 29일 베트남 전 영토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끝과 시작,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1965년으로” 『대부분의 경우, 진짜 전쟁 이야기라는 것은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쉽사리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진실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때때로 바보 같은 이야기가 진실이고, 정상적인 이야기가 거짓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믿기 힘들 정도의 광기를 믿게 하려면 정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팀 오브라이언 지음/무라카미 하루키 번역 <진짜 전쟁 이야기를 하자> (*한국판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에서 인용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디엔비엔푸”라는 것은 북베트남의 지명이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대패한 격전지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주님”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작화부터 소재까지 일본 만화치고는 다소 낯선 작품인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매우 독특하고, 잔인하면서, 재미도 있는 이야기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숨막힐 듯한 느억 맘 냄새도, 맛없는 야전 식량도, 신선 같은 호치민도, 거짓말쟁이 웨스트모얼랜드도, 베트남이 북과 남으로 분단된 이유도, 미국이 설마 졌다는 것도, 인생의 의미와 우정과 사랑, 필사적으로 사는 것과 훌쩍 죽어버리는 것도, 나 자신의 일도, 그녀의 일도, 1965년 1월,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모른다.” “디엔비엔푸”는 한 마디로 ‘신선하다’. 귀여운 캐릭터 상품들을 연상시키는 깜찍한 등장인물들이 펼쳐내는, 잔인하다 못해 처절한 이야기가 너무도 부조화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작품의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과 만화다운 상상력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화풍이 매우 독특한 이 작품은 겉표지만 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벼운 만화같지만, 이야기 자체는 어른들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하드코어한 스토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이었다는 베트남 전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손발이 잘려나가고 내장이 터져버리는 장면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데, 잔인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중화시키기 위해 이런 귀여운 느낌의 그림으로 표현했나 싶을 정도로,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가 에피소드의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만화이기 때문에, 무협지의 주인공 같은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 신비한 무술 솜씨를 발휘하며 미군들을 도륙하기도 하고,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특수능력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된 ‘그린베레’ 특수부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종군기자 히카루 미나미의 눈으로 보여지는 베트남 전쟁의 리얼한 이면이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스토리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자체가 매우 재미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현재 한국어 판으로 2권까지 출간되어 있는데 신선한 느낌의 만화를 읽어보고 싶은 독자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